최근 나타나는 여러가지 현상,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들의 코멘트를 곱씹어 보면 정말 우리가 엄청난 전환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최근 접한 몇 가지 사실과 아이디어를 정리하면서 금융업에 대해 좀 생각해보았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그것도 시작의 시작에 있을 뿐입니다. 아직 미래에 일어날 무수한 일이 남아 있고, 우린 그것을 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 케빈 켈리, 2014년 3월 조선BIZ 인터뷰
1. 자본
생각해보세요. 애플과 구글처럼 이 시대를 선도하는 IT 기업들이 스스로 현금 다발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많은 현금으로 향후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을요.
또, 왓츠앱(Whatsapp 메신저, 지난 2월 페이스북이 20조원에 인수)은 거의 아무런 자본 투자도 없이 Sony보다 더 큰 시장 가치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과거에는 의미있는 벤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달러가 필요했지만, 오늘날의 정보 기술 시대에는 이러한 벤처 사업들이 수십만 달러의 종자돈만을 가지고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자율의 균형점이 이동하면서 투자(자본)에 대한 수요가 감소됐다는 사실입니다.
Ponder for example that the leading technological companies of this age, I think for example of Apple and Google, find themselves swimming in cash and facing the challenge of what to do with a very large cash hoard.
Ponder the fact that WhatsApp has a greater market value than Sony with next to no capital investment required to achieve it.
Ponder the fact that it used to require tens of millions of dollars to start a significant new venture. Significance new ventures today are seeded with hundreds of thousands of dollars in the information technology era. All of this means reduced demand for investment with consequences for the flow of – with consequences for equilibrium levels of interest rates.
– 래리 서머스(前 美재무장관), 2014년 2월 NABE 컨퍼런스
2. 노동
이제는 잘 알려진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는 자동차 업계에서 주로 사용했던 딜러 영업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차를 판매한다. 이러한 판매방식이 성공을 거두자 밥그릇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딜러 업계가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일부 지역에서는 테슬라의 판매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복잡한 내연기관과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를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대규모 공장과 협력업체들, 수많은 직원들과 딜러 네트워크가 필요했지만, 배터리, 모터, 차체, 운영시스템만으로 굴러가는 전기 자동차는 생산 및 판매의 방식과 산업의 구조를 매우 단순하게 만들었다.
테슬라는 시가총액 측면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GM의 1/2 수준이지만, 직원 수는 1/30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향후 자동차 산업의 고용 효과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기정사실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과 노동. 모든 생산 활동은 이 두 가지 투입 요소를 전제로 한다. 경제학의 거의 모든 논의는 이들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좀 단순화하자면 금융시장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경제 시스템은 이 자본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자본과 노동의 희소성이 감소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자본과 노동의 위상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질 투입 요소는 무엇일까? 이러한 모든 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대가들이 이야기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1.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와 주식시장의 역할 축소
로저 마틴 교수는 상장 기업이 비상장 기업에 비해 바람직한 기업의 형태라는 ‘주주 자본주의’의 통념을 부정하고,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향후 기업 지배구조의 미래는 비상장 기업에 있다고 주장한다.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 자본의 특성상, 공개 기업은 장기적 관점의 지속가능성보다는 단기 실적과 배당, 주가 부양에 경도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금융위기 이후 성장이 멈추자 공개 기업의 모델이 여러가지 부작용을 드러내며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자본 조달이 용이하다는 공개 기업의 장점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저금리 시대, 투자처를 찾는 자본이 여기저기 넘쳐나면서 벤처 캐피탈, 크라우드 펀딩, PEF[1] 등 기업의 자본 조달을 위한 대안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대출의 문턱도 낮아지면서 주식 공개를 통한 자본 조달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2009년 무려 440억 달러를 투자해 벌링턴 노던을 사유화(privatization)했고, 2013년에는 280억 달러에 H.J. 하인즈의 사유화를 감행했으며, 곧이어 마이클 델은 250억 달러로 델(Dell)을 사유화했다. 워렌버핏과 마이클델은 이 회사들을 다시 공개시장에 내놓을 계획이 없다고 한다.
앞으로는 기업 공개를 통해 빠른 성장과 단기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보다는 비공개기업으로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2. 복제할 수 없는 것, 서비스를 팔아라.
앞으로 모든 산업은, 제조업이든 무엇이든, 기술 발전에 따라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인터넷 관련 회사 사장이 아니라 해도 언젠가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될 것이니까요. 따라서 모든 CEO는 하이테크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자질은 유연성입니다. 앞으로 CEO들이 유연성과 효율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유연성을 택해야 합니다. 또 중앙 집중화와 분권화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분권화를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려 있어야 합니다.
복제한 것은 무료로 나눠 주세요. 그 대신 개인의 시간, 즉시성, 신용을 팔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제품에서 서비스로 초점을 바꿔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서비스에 있습니다.
(중략) 시간은 서비스입니다. 시간은 창출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시간을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기업은, 자사 제품이 복제될 확률이 높은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팔지 않는 것이 나을 겁니다.
-케빈 켈리, 2014년 3월 조선BIZ 인터뷰
3. 그러면, 금융은 어떻게 될까?
금융시장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전통적인 주식시장의 역할은 다소 축소될 수도 있다. 대신 벤처캐피탈, 크라우드펀딩, PEF 등 대안적인 투자 방식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대출의 경우, 담보와 현금흐름에 기반한 전통적인 심사 방식에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면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금융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위협받는 일자리 중 항상 상위권에 드는 직종이 은행원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금융업은 고도의 서비스업이며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업종인지라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모습의 금융업은 좀 문제가 있다. 신뢰와 서비스를 파는 업이 아니라 상품을 팔아 마진을 남기는 판매업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품은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고, 오프라인 네트워크는 비대면 채널이나 모집인 등 Agent 채널에 조금씩 잠식되면서 예전의 힘을 잃고 있다.
어느 기사에선가 고객의 금융 이용행태 변화에 대해 ‘어떤 금융상품이든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3일만 공부하면 어느 은행원 못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서 ‘사람들이 금융상품에 대해 은행원에게 물어보는 대신 스스로 공부해서 선택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그 말 자체가 틀려서라기보다는, 다른 바쁜 일들 다 제치고 3일이나 공부할 필요성을 느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서비스업의 본질인데, 그런 논리라면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고객들이 은행원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획득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현재 금융업의 성격이 고객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단순 판매업에 가깝고, 그 결과로 고객들은 금융회사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상담 내용을 깊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만한 고객들은 금융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은행 창구에 가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지인들 중에 금융인들을 찾아 물어본다. 없으면 한 다리 건너 소개라도 받는다. 은행원 입장에서 보면 상담 창구에 앉아있을 때 보다 사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금융에 대한 진지한 상담을 요구받는 경우가 더 많다. 신뢰를 파는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 수준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것 아닌가?
판매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 고객의 진정한 신뢰 확보,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수취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모델의 구축. 앞으로 금융회사들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원문: 변화와 혁신, 금융의 미래
- 사모투자펀드. 특정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
- ‘공개기업모델, 결국 쇠퇴의 길을 걷나’, HBR Korea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