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것은 당시 용산 참사에 대해 쓰인 여러 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내용의 부드러운 이해를 위해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수준에서 일부 토씨를 수정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또한 일부 내용에서 필자의 추측으로 전개된 부분이 있음을 고려하여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댓글을 통해 잊혀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좀 더 많은 팩트를 모아 주셨으면 합니다.
용산 참사에 대해 저는, 이 모든 사건들이 무슨 ‘탐욕’이나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그것이 근본 ‘평범한 이슈’들임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 계약서에 대해서 논할 때, 저는 이것 자체는 그냥 임대인에게 엉기지 말라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아니냐, 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질문은 남는 것 같습니다. ‘이 문구를 넣거나 넣지 않거나 하면 바뀌는 게 있나요?’ 글쎄요. 확정은 못 하겠지만,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세입자는 그 문구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임대자도 자신의 권리를 제외한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겠지요. 아마도, 다른 임대차 계약이랑 별다른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꽤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자료가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이상림씨 가족입니다. 다양한 투쟁과 사망, 그리고 계약서 까기까지,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자료가 공개된 사람들은 그분들이지요.
그런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일단, 이상림씨 가족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사람들입니다. 30년이냐 17년이냐의 차이는 있어도, 이 사람들은 2003년 이후에 입주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Fact는 이상림씨가 철거 개시 2개월 전에 집을 뜯어고쳐서 호프집을 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봅시다. 2개월 뒤에 할 것을 집주인이 알았다면 그걸 말 안 해줬을까요? 조합에서 2개월 뒤에 하겠다고 했다면 우리의 ‘나쁜’ 집주인님께서는 조합의 비밀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저는 집주인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조합인인 집주인도 별로 아는 건 없었겠죠. 실제 용산 4구역의 경우 재개발의 속도가 빨라졌는바, 집주인이 나쁜 놈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이상 2개월 전엔 그 ‘집주인’ 조차도 아마 이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연체된 세도 있다는데, 집주인이 그 세를 굳이 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못 받게 될 상황을 강화하는, 2개월 뒤에 날릴 호프를 눈감는 행위를 굳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사이에 빠르게 진행이 되었겠지요. 집주인들도 잘 예측을 못 할 만큼. 상가 주인이 말렸다고 하는데, 정말로 2개월 이내에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상가주인도 좀 더 쎄게 말했겠죠. (더군다나 이 증언은 사태가 터진 다음에 나온 증언이라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그것을 전부 알았다고 하더라도, 철거민들은 당장 스토리가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듯 합니다. 실제 이분들이 예측한 기간은 3~4년 정도였다고 합니다. 꽤 안일하다고 봐야 하지요. 거기에 제가 보기에는 시기 자체를 자기들 마음에 편한 대로 생각한 흔적도 있군요. 어쨌든, 서울시 재개발 사업인가에서 관리처분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38.5개월. 용산 4구역은 25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13개월 정도의 오차는 있지요. 이 정도면,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관대함’을 생각해 볼 때, 적게 잡아도 2년 이상은 시간이 있을 거라고 철거민들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2008년에 이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이 되었는데 왜 미리 알지를 못 했냐고 하는 것은 무립니다. 2006~2007초 사이에 이런 일이 진행되었거든요. 2007년 3월에 호프를 시작해서 2007년 5~6월쯤에 통보를 받았군요. 이명박 정부와는 별 관련이 없는 듯 합니다. 일이 이렇게 빨라진 건 오세훈 시장의 당선(2006년 5월? 6월?) 및 그가 주창한 ‘디자인 서울’과 관련된 것이겠죠. 그리고 오세훈 시장은 다음 서울 시장을 다시 한번 노리고 있었던 관계로, 그의 임기 안에 무언가 가시적 성과가 나야 했지요. 그런데 인가만 3~4년 걸린다고 하면^^;;;
그리고, 최소 2~3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정할건 인정하자‘란 글에서 RNarsis님이 계산한 걸 보면, 2~3년이면 아마도 스스로 생각할 때 대략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법하지요. 2년이면 2억, 3년이면 3억은 벌 테니까요. 물론 그 상황이 되어서도 아마 이분들은 1억 정도의 보상금으로는 못 나간다고 말했을 거라는데 5000원 정도는 걸 수 있습니다. 호프 만드는데 3억이 들었다고 하니, 아마도 저 2~3억 정도의 수익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1억의 보상금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진짜 2~3억을 정말로 벌었다면(본인들 말로도 장사는 잘되었다고 하니까요) 이상림씨 가족은 진작에 나갈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비극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되었겠지만…
그렇지만 일정은 빨랐고, 이분들의 안일한(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은) 예측을 과감하게 빗겨갑니다. 이렇게 빨라진 이유를 꼽는다면, 위에 든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구역과 5구역을 담당한 조합장님은, 고 이상림 씨와 같은 교회를 다니시던 분이더군요. 5구역에서 추진을 하시다가(아니면 끝나고) 4구역으로 오셨는바, 4구역의 경우 일을 빠르게 추진하지 못하면 철거업체가 돈을 토해내야 할 처지이니만큼 나름 스카웃(?) 되어 왔을 가망성도 있어 보이는군요. 사실 조합장 일이 얼마나 더러운 일인데 그걸 두 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꽤나 그 일이 즐거우셨던 모양;;; 거기에 사장님이 건물 주인 중 하나시라는 철거용역업체가 결합하면,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에 발맞춰 속도가 빠르게 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그리하여 이상림 씨 본인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속도로 일이 진행되어 갑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체감권리금에 보면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문점도 약간 비슷한데요, 그렇게 영악한 (-어떤 사람들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런 하이리스크를 감수하려고 들까? 하는 거죠.
그게 말이 되려면 이전에 하이리스크를 감수해서 하이리턴을 얻은 전례가 있거나, 혹은 그게 가능할 것이라는 어떤 심적인 보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예는 적어도 언론에는 노출된 경우가 없는 것 같거든요.
옙. 그렇죠. 실제 이 싸움에서 이겨(?)서 이상림 씨가 보상을 더 받았다고 칩시다. 그럼 권리금 명목으로 얼마를 더 받게 될까요? 많이 더 받으면 3천? 4천? 좀 더 받으면 5천? 극단적으로 쳐줘서 8천 정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호프를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3억? 호프 차리는데 드는 비용 3억을 고스란히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총 수익은 3.8억. 호프 차리는데 3억. 수익률 26.7%. 투쟁 기간이 최소 1~2년은 될 거라고 생각해 보면, 연 수익률로 13~27% 사이인데, 이게 그렇게 하이 리스크 – 3억을 통째로 떼일 수 있다. – 를 지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으로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죠. 여기에 그 사이의 투쟁비용을 – 꼭 전철연이 아니라도 –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림 씨 가족은 어느 정도는 안일함, 어느 정도는 외부상황의 변화 때문에 투자비를 전혀 건질 수 없게 되었지요. 조합도 이 점을 인정해서 1억이 넘는 돈을 제시한 듯한데, 이 가족의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이 가게를 운영하는 막내 부부와 이상림 씨에게는 이 가게 하나를 하기 위해서 이상림 씨는 평생을 바쳤고, 막내 부부는 노점상을 하면서 전전긍긍했지요. 이 내용을 100% 수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분들이 3억이나 되는 비용을 ‘자기 돈’으로 가지고 시작한 건 절대 아닐 겁니다. 자식이 3형제라는데, 3형제의 골수를 다 뽑았을 가망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체감권리금‘이란 글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권리금’ 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계자산에 어떤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예 이해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 라고 milln님이 말씀하신 건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권리금은, 어떤 의미로든, 집안 그 자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겠죠.
저는 이분들이 ‘탐욕’을 부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22인의 세입자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파악할 수 있는 그 사람, 이상림 씨 가족에 대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왜 그렇게 쉽게 생각하셨어요 T.T’ 정도일 뿐, ‘탐욕’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맞아요. 그분들은 안일하게 사태를 파악했지요. 2~3년, 아니 3~4년은 장사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때쯤 되면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투쟁하고’ 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오세훈 시장은 그들의 생각을 넘었으며,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것을 방어해줄 그 어떤 권리도 없지요. 그분들이 조합을 벗겨 먹으려고 호프로 바꿨다? 글쎄요… 저 분들이 잘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저 정도의 안일함이 나타나는 게 그렇게 ‘특별’한 케이스 들일까요? 차라리 ‘내가 다 책임진다’고 이상림 씨가 이야기했다는 것에서는 ‘꼬장한 노친네’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저는 나머지 22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미 그런 사례가 있으니까요.
“박모(여·48) 씨는 작년 10월쯤 도심 한 지하도 상가 점포를 권리금 1억 5000만원을 주고 임차했다. 서울시와의 계약기간이 두 달밖에 안 남았지만, 수의계약을 통해 임차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옙.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죠. 작년 4월에 서울시가 공고를 냈는데, 작년 10월에 저걸 사는 사람들이 실제 있습니다;;; 저 행위가 ‘멍청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특별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탐욕’을 부려서 저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탐욕이라고 부르면 못 부르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지만 저분들이 남들보다 ‘더’ 탐욕적이어서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같은 내용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하는 게 사람이니, 제가 정리한 내용에서도 또 다른 해석을 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탐욕인 거 아니냐’는 분도 계실 거고, ‘보라,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이며, ‘사실은 오세훈 ㅆㅂㄹㅁ…’ 같은 걸 속으로 되뇌실 분도 있고, ‘역시 교회는 안 돼’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많지요. 어느 쪽으로 생각하시든 제가 정리한 내용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상상한 부분이 적지 않으니, 제 상상이 꼭 맞으라는 법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로써 제 글은 이걸로 마칠까 합니다. 사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람들은 다들 너무 안일했지요. 철거민들은 철거에 대한 상황에 대해서 안일했고 어두웠으며, 경찰은 ‘설마 지들이 죽는데 시너를 뿌리고 있지는 않겠지!‘, 전철연은 ‘설마 경찰이 이렇게 쎄게 나오겠어‘, 라고 생각하지요. 옙. 그리고 전철연과 철거민들은 죽음으로서 그 안일함을 보상받았고, 경찰은 뭘로 보상받게 될지 – 김석기 청장은 사퇴했지요 –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경찰이 보상받을 것은 이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 또 다른 화약고 서울시 지하도 상가.
P.S. 자료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RNarsis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RNarsis님이 성실하게 조사해 놓으신 게 없었다면 저는 이 글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습니다.
P.S.2. 그래도 왜 하필이면 전철연이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http://capcold.net/blog/2991 를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기린아 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