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itle=”편집자의 말”]당신은 어떤 철학자인가 퀴즈 (링크) 에 대해 갑오징어 선생님께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선생님을 숭배합시다. 은근 뭔가 빵꾸가 나 보이지만 저 퀴즈를 제대로 분석하면 논문 하나가 나와야 하니 적당히 넘어갑시다(…)[/box]
3. 아무도 없는 숲 속에 나무가 한 그루 쓰러졌어. 소리가 날까?
– 아니.
– 응.
– 질문이 타당하지 않은데?
해설 : <소리> 같은 존재자가 마음과 무관하게 실재하느냐, 아니냐는 질문임. 실재한다고 보면 실재론자라고 부르고, 없다고 보면 관념론자라고 부름. 근데 <그게 무슨 주장이냐>고 되묻는게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자의 종특이라서.
4. ‘진리’와 관련해서, 과학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해?
– 과학은 세상의 진리를 알려줘.
– 과학은 세상의 진리를 변화시켜.
– 진리와 관련해서, 과학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 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올바른 방식이야.
해설 : 과학이 어떤 가치를 가지냐는 질문. 4-1 세계를 베껴 그림. 4-2 세계를 바꿈. 4-3 과학=헛소리. 4-4 우리의 지각이 수렴해 갈 방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 4-1과 4-2가 꼭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고, 강조하는 포인트가 좀 다른 정도. 4-4는 진화론적 인식론 비슷한 냄새를 풍김. 세계와 지각이 서로에게 맞춰 조율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됨(진화는 핵심 메커니즘). 이거 택하면 콰인에 보너스 있을듯.
5. 진리는 상대적인 거야?
– 응.
– 아니, 진리는 절대적인 거야.
– 그건 증명할 수 없는 문제야.
해설 : 진리가 변하지 않느냐, 변하느냐, 아니면 두 입장 모두 일종의 독단이냐는 질문. 전형적인 철학적 주장이라면 주장을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모든, 어떤> 같은 양화사를 활용하여 주장할 것. <모든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변한다> <어떤 진리는 변한다>이런 식으로. 양화사 <모든>이 쓰인 문장은 단 하나의 반례만으로 거짓이 되지만 <어떤>이 쓰인 문장은 모든 사례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야 거짓.
6. 진리는 초월적인 거야?
– 응, 진리는 실증적 세계와는 분리된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거야.
– 아니, 진리는 (내 마음 바깥에 있는) 실증적 세계에 존재하는 거야.
– 아니, 진리는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마음은 실증적 세계의 일부야.
해설 : 6-1은 플라톤이나 예수 믿는자들 말고는 그리 진지하게 여길 거 같지 않은 주장. 6-2와 6-3은 괄호 안이 중요한 차이임. 6-2는 마음 밖에 있는 진리를 마음이 추적해가는 모형. 6-3은 마음이 진리 구성에 역할을 한다고 보는 모형. 6-3은 아무래도 콰인같은 자연주의자들의 모형에 가깝고(괄호 안의 내용이), 칸트 정통 모형은 선택지에 없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진리는 판단의 특정 유형임. 진리가 마음 속에 따로 존재한다고 말하기보단, 어떤 판단을 참이라고 판정한다고 말하겠지.
또 칸트가 판단기준 곧 범주가 자연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볼 근거도 불충분함. 6-4 <진리는 마음에 주어진 잡다에 대해 마음이 경험 독립적 기준에 의해 내린 판단이 지닌 모종의 지위>이라는 선택지가 있어야 칸트 정통 모형이 선택지에 있음. 여하간 진리가 세계의 상태를 지시하냐(한국어 일상 용어로는 ‘진실’이 이를 지시하는 말로 따로 있음), 어떤 판단에 대한 재 판단이냐(업계의 대세)를 구분하지 못한 덕에 별로 좋지 못하다.
7. 예술이란?
– 모방과 조화를 향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거야.
– 진리를 묘사하지 않는다면, 해롭고 그릇된 거야.
– 그 자체로 영원하고 초월적인 거야.
–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목표야.
– 사실들을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거야.
해설 : 7-1이 아리스, 7-2가 플라톤이라는 것 말고는 정확한 전거를 찾기는 힘듬. 7-3~5가 누구의 주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음. 무책임
8. 삶이란?
– 예술이지, 잘만 산다면.
– 내가 만들어내는 거야.
– 진리를 속여서 알지 못하게 하는 거야.
– 삶은 으스스한 것이며, 또 삶은 빛나는 거야. 삶은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이 나머지 대부분을 만들게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이야. 우리의 아주 작은 부분이 대부분에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삶은 시간 낭비 속에서 희미하게 존재하던 본원적 충동을 성장시키고 되살리는 거야.
– 사실들의 집합체.
해설 : 8-1이 8-2와 다른 주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8-2는 상식적인 답임. 8-3은 <국가>에서 나오는 플라톤의 동굴 모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고. 8-4는 콰인이 어디 인터뷰에서 한 말인데, 콰인은 원래 단어왕으로 유명함. 콰인은 쓸데없이 어려운 단어를 쓴다는 의미에서 단어왕. 단어왕 갑바 걷어내고 보면 마지막 문장이 제일 중요한 듯. 잡다구리한 상황 속에서도 본원적 충동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는 건데, 본원적 충동이라는 걸 설정했다는 점에서 선택지 가운데 이채롭긴 함.
그러니까 8-2는 <노력한대로 산다>라면 8-4는 <태어난대로 산다>인데, 뭐 답을 하기에는 모호한 대립이라서. ㅇㅇ8-5는 삶을 주관하는 어떤 원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사르트르 식의 답이 아닐까 추정.
9. 신은?
– 죽었다.
–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불변하는 통로.
– 진실과 정의.
– 하나만 있지 않고 더 많이 있다.
– 삶의 부조리함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
해설 : 니체를 피하려면 9-1을 선택하면 당근 안되고. 9-2는 신이 인식의 근원이라는 건데 이건 목사 버클리도 좋아한 주장.. 9-3은 좋은 가치의 근원이라는 주장이고, 9-4는 신이 다수라는 주장인데 아마도 고대의 이교도들을 상정한 질문이 아닐까 싶음. 9-5는 잘은 모르겠으나 주장의 결이 사르트르 같은데.
9-6으로 칸트가 있어야 할텐데, 요약하자면 <신은 이성이 경험적 입력 없이 “완전성, 존재” 따위의 관념을 가지고 스스로 작동하다가 만들어낸 일종의 이상적 존재자> 정도. 사실 예수 믿는 사람 아니면 신이 진지한 질문의 대상이 아닌 게 한국 문화라서, 9번 질문은 제거해야 한국인에게 알맞은 설문이 될 듯함.
10.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해?
– 삶의 부조리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 진리에 도달하는 사람.
– 선과 악의 구분을 넘어서는 사람.
– 완벽하게 중용을 이루는 도덕적인 개인.
– 선의지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윤리적 인격.
해설 : 10-1은 단어로 보아 아마도 사르트르. 10-2는 진리를 삶의 목적으로 두는 것은 고대에 공통됨. 10-3은 니체의 초인. 10-4는 아리스. 10-5는 칸트.
11. 수학이란?
–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영역 (과학과는 다르게).
– 의미없는 진실들의 나열.
– 우리 신념체계의 일부.
– 질서와 균형에 대한 추구.
– 전적으로 분석적인 것. (분석과 종합의 구분의 관점에서)
해설 : 11-1은 수학이 확실성을 보증한다고 믿었던 사람의 주장. 11-2는 <수학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참을 줄 뿐>이라는 주장으로 세계랑 수학이 별 관련이 없다고 보는 사람의 주장. 후자의 대표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11-3에서 등장하는 ‘web of belief’는 콰인 인식론 책 제목임. 전체 믿음체계의 일부로, 다른 지식과 조율된다는 주장을 함. 11-4는 수학이 아폴론적 이상 즉 균형과 조화를 향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폴론 언급을 보면 니체식 표현.
11-5는 프레게 주장인데, 괄호는 분석/종합 구분을 인정했을 때 이 주장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임. 칸트 말대로 하면 분석문장은 주어 개념에 술어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종합문장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경험의 도움을 받아 참이라고 판단할 수 있음.
칸트의 주장은 수학의 명제는 <선험적 종합판단>으로서 참이라는 야릇한 주장인데 그게.. 선험적 기준에 의해 참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나(그래서 확실) 주어를 아무리 개념적으로 분석해도 술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주장.
12. 언어란?
– 인식체계에서 독립되어 있는 것.
– 인식체계에 구속되어 있는 것.
–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
–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것.
해설 : 12-1, 2는 지각과 언어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주장. 언어에 지각 경험과 독립된 부분이 있다 vs 그렇지 않다는 주장인데, 판정하려면 복잡한 문제가 있고. 12-3은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어딘가에서 한 말일텐데, 언어가 상상력의 한계를 결정한다는 주장. 언어 배후의 개념적 장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망한 주장.
12-4는 언어가 개량될 수 있다는 주장인데 그 기준이 나오질 않아서 어떤 함축을 가진 선택지인지 불명확하다. 경험을 기준으로 개선되어 나간다면 전형적인 콰인의 주장이고, 경험 독립적 기준을 상정한다면 그렇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