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블로그 ‘멍부’가 조직을 망친다에 꽤 많은 반응이 있었다. 원래 잘 알려진 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2*2 매트릭스를 써서 분석을 하고, 어이없지만 실존하는 멍부를 등장시키니까 관념적인 얘기가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본인의 상사는 거의 다 멍부라고 한탄을 하지만, 본인은 대부분 똑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걸 가볍게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은 꽤 중대한 이슈가 숨어있다.
‘전지적 자기효능감’을 가진 최악의 멍부
Efficacy 라는 까다로운 영어 단어가 있다. 약에 쓰면 효능이라는 뜻인데, 사람에게 쓰면서 self를 붙이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생소한 뜻이 되면서 뉘앙스가 약간 야릇해 진다. 자기 스스로 유능하다, 난 잘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좋은 뜻이다. 실제로는 멍부인데 스스로를 똑부나 똑게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Self-efficacy syndrome에 빠졌다고 보면 된다. (다른 데서 사용하지 마시라.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라 내가 그냥 만든 것이다…)
이 앞에 Omni-potential 이란 단어를 붙이면 매우 중증의 착각 증세를 말한다. (역시 내가 만든 표현이니 사용에 주의하시길…) 이른바 ‘전지적 자기효능감’이라는 병인데, 웬만큼 큰 조직에는 꼭 한 명 이상은 있다.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온갖 일에 끼어들고 아는 척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부류다. 실제로 모든 걸 다 아는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게 존재하기 때문에, 전지적 자기효능감을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또라이’ 취급받는 사람일 뿐이다.
아프리카 땅을 딱 2번 밟은 사람이 (아프리카 땅에 발 디딘 지가 올해로 20년째인 내게) 아프리카 시장의 진면목을 알려주겠다고 거품을 문다거나, 신입사원 때부터 쭈욱 다른 회사에만 근무한 사람이 (내가 11년간 근무한) 삼성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조목조목 갈파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병역 면제자가 (햇수로 7년을 장교로 복무한 내게) 군생활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매사 분석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기는 했는데, 결론적으로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정신상태를 장악하여 무슨 일에서든지 자기가 유능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일종의 ‘환자’인 것으로 정리를 했다. 물론, 이런 사람은 멍부다. 똑게는 진정한 자신감이 내재되어 있어서, 또 일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하기도 하므로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상사 – 부하의 궁합
지난 블로그는 개인적인 특성을, 주로 상사를 대상으로 삼아, 얘기해 보았다. 이번에는 그 확장판으로 상사와 부하를 모두 분석대상으로 하여 생각해 본다.
오늘 등장하는 그림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던 것으로, 누군가 창의력 넘치는 분(아마도 진정한 똑게?)이 2*2 매트릭스를 2개 겹쳐서 (2*2)2 그러니까 4*4 매트릭스로 만들어 상사-부하 사이의 궁합을 표현한 것이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그 창의성과 분석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 매트릭스 하나에서 여러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상사일 때와 부하일 때, 최악과 최선인 자질이 다르다. 상사로서는 멍부가 최악이고 똑게가 최선이지만, 부하로서는 똑게가 최악이고 똑부가 최선이다.
그러니까 부하일 때는 똑-멍을 떠나서 일단 게으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게으를 때는 똑똑한 것이 더 나쁘다. 부하에 대해 ‘자세’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문화가 반영된 듯 하다.
상사의 자질에 대해 이 매트릭스의 원작자는 나와 견해가 약간 다르다. 원작자는 상사의 경우 부하에게 적용했던 게-부 순서를 뒤집어 부-게 순으로 배열했다. 상사가 부지런하면 무조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일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배운다거나 조직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은 다음으로 돌리고, 상사-부하 사이의 ‘케미’만을 고려한 것 같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상사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똑-멍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과나 역량 키우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사 멍청한 것은 정말 참기 어렵다. 그러니까 위 매트릭스에서 상사의 최악-최선 순위는 멍부→멍게→똑부→똑게 순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멍게끼리는 평화, 멍부끼리는 절친
정리하면, 직급이 낮을 때는 ‘빠릿함’으로 귀여움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고, 점점 역량을 쌓아서 높은 직급이 되면 ‘현명함’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장-단기적으로 취해야 할 포지셔닝이 좀 다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입사할 때 현명했던 친구들이 시간이 갈수록 멍해 지면서 나이가 들어서는 빠릿함을 무기로 살아가지 않는가? 슬픈 얘기다.
똑부끼리, 똑게끼리 만나면 궁합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런데, 멍부끼리, 멍게끼리 만나면 궁합이 딱딱 맞는다. 매트릭스 원작자는 멍부끼리 만나면 ‘절친궁합’, 멍게끼리 만나면 ‘평화’라고 분석했다. 대략 동의한다.
멍게끼리 만나면 조직이 전체적으로 나른한 분위기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분위기를 ‘평화’라고 분석한 모양이다. 멍게끼리의 평화는 상대적으로 덜 나쁜 모양새다. 그들은 최소한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그냥 자기 월급 정도 되는 기회비용을 회사에 물릴 뿐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멍부끼리다. 멍부끼리 만나면 ‘이유없이’ 활기가 느껴진다. 매일 매일이 바쁘고 뭔가 곧 이뤄질 것 같다. 그러나, 착각이다. 그냥 멍부끼리 죽이 맞아 그럴 뿐이고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피곤과 짜증에 죽어 나간다.
신임 팀장이 ‘난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순으로 고과를 주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상상이 되는가? 이 소리를 직접 들은 팀원들이 실제로 꽤 있다. “그런데, 팀장님 우리는 영업팀인데요…” 라며 반문하는 사람은 개념이 없는 것이다. 그 팀장도 자기가 영업팀 맡는 줄 모르고 온 것이 아니다. 오래 앉아있는 것 말고 다른 뭘 해야 할지를 모를 뿐이다.
여러분이 일하는 회사는 실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대응하는가? 내가 겪은 회사들은 이상하게 출근시간이 빨라졌다. 출근시간이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9시가 8시가 되고, 8시는 7시가 된다. 여기서 정말 딱 맞는 우화가 탄생했다.
옛날 어느 부잣집이 있었다. 한 해는 농사가 잘 안되어 수확량이 떨어졌다. 원인을 잘 모르겠다. 물이 적은지, 퇴비가 모자랐는지, 아님 해가 짧았는지… 이 집 상머슴이 모든 머슴에게 이른다. 내일부터 새벽같이 일어나서 마당을 쓸자. 농사가 안 된다는데 마당을 왜 쓸지? 하는 질문에 상머슴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럼 뭐할래?!
일의 양과 질은 반드시 반비례다. 멍한 정신에 집중은 안되고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시황에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그래도 멍부들은 희희낙낙이다. 우리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바로 그 열심이 조직을 죽이는데 말이다.
멍부들이 조직을 죽이는 법
내게 마케팅과 영업에 대한 책을 추천하라고 하면 꼭 빼놓지 않는 책이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B2B 마케팅』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사람이 쓴 책인데, 독창적인 관점과 현장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거기에 멍부들의 얘기가 있다. (물론, ‘멍부’란 표현은 없지만…)
위 그래프는 화학업체에서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사원이 얼마나 고객사를 자주 찾아가는 지를 표시한 것이다. 당연히 큰 매출을 올려줄만한 고객사에 더 자주 방문할 것 같다. 그럼 그래프는 오른쪽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실제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다. 이렇게 예상 외의 분석결과가 나오니까 컨설팅 펌을 불렀겠지만, 좀 황당하지 않은가?
컨설턴트가 붙어 다니면서 원인을 파악해 보니, 영업사원들이 구매량이 크고 협상력이 강한 업체는 상대하기 힘드니까 놔두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업체에만 자주 들르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이럴까 하고 B2B영업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제약업계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이렇게까지 연구는 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맞는 얘기 같다고 한다. 아침마다 무조건 어딘가에는 가야 하는 보통 영업사원이 외근을 나오면 아무래도 맘이 편한 병원, 그러니까 아는 척도 해주고 인사만 잘하면 차도 한잔 내주는 그런 인간적 병원으로 발길이 간다고 한다. 그런 인간적인 병원은 상대적으로 한가한 병원이고, 한가한 병원은 환자가 적다는 얘기니까, 의사가 약을 선택해줘도 처방전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가끔 독한 영업사원이 있는데, 아무리 면박을 주고 갑질을 해도 바쁜 병원 하나를 찍어서 아예 거기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의사도 원무과 직원도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 아는 척도 안 해주지만 영업사원은 계속 공을 들인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약이 선택되면 매출이 치솟는 것이다. 맞다. 그렇다면 위 그래프처럼 방문횟수와 매출잠재력(또는 매출 그 자체)이 반비례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본사에 멍부가 앉아서 영업관리를 하게 되면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매출을 일으키는 핵심원인을 모르고, 자기와 같은 ‘부지런함’을 영업사원을 관리하는 포인트로 삼으면 영업사원들은 일없이 여기저기 배회하면서 겉으로만 부지런을 떨게 된다. 영업관리하는 상사에 맞춰주다 보면 부하직원들도 멍부가 양산된다. 그러면서 멍부들끼리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좋은데 실적은 오리무중인 조직으로 전락한다.
위해서 언급한 ‘독한 사원’이 바로 똑게다. 정확한 상황파악 하에 전략적으로 움직이지만, 위에서 멍부가 보기에는 그냥 게으른 놈이다. 멍부 상사와 똑게 부하.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조합이다. 멍부 상사는 갈구고, 똑게 부하는 불만이 늘어간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갈등은 똑게 부하가 자리를 옮기던지 회사를 나간다. 절과 스님 관계는 다 그런 거니까.
조직 내부에서 갈등이 생겼는데 원인이 멍부 상사에 있다면 무조건 멍부 상사를 빼내면 된다. 더욱 나쁜 경우는 멍부 상사가 있는데도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멍부끼리’의 경우다. 저혈압이 침묵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것처럼 멍부끼리 일하는 것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직을 와해시킨다.
잊지 말자. 멍부끼리 묶어두면 조직이 죽는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