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외압 논란으로 시끄럽다. 예술에 대한 외압 논란은 마치 정기행사로 여겨질 만큼 지속적으로 불거져왔는데 근래엔 특히 더한 느낌이다. 그래서 최근 2년간 불거진 외압 논란을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들은 모두 ‘논란’이다. 실제 외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또한 정치권의 외압이기보다는 예술계가 알아서 기다시피 한 건도 있으니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겠다.
(1) 문예지 <현대문학>의 용비어천가 논란
2013년 9월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 네 편이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비평 ‘바른 것이 지혜이다’와 함께 <현대문학>에 실렸다. 이태동 교수는 “그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대통령의 글들을 극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은 게재되지 못했다. 평론가 양경언 씨가 이태동 교수의 해당 비평을 11월호 원고에서 비판했지만 편집주간은 그 대목을 빼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결국 그렇게 편집된 채로 출간되었고 양경언 평론가는 “문제는 대통령 찬양글이 실렸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는 글을 막았다는 것”이라며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누르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일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2) <현대문학>의 연재 거부 및 취소 논란
<현대문학>은 연이어 큰 논란에 휩싸인다. 몇몇 소설가의 장편 연재가 거부당하거나 도중에 취소된 일이 폭로됐는데 이유는 바로 군사정권. 원로 소설가 이제하 선생은 딱히 부정적 묘사랄 것도 없고 단지 ‘박정희 유신’, ’87년 6월 항쟁’을 언급한 게 전부였음에도 그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많은 소설가와 시인이 ‘우리는 현대문학을 거부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결국 <현대문학> 측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른다. 편집주간과 편집자문위원 역시 전원 사퇴.
이 사건은 <현대문학>이 갖는 특별한 위상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지금도 씁쓸하게 여기고 있다. <현대문학>은 1955년에 창간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다. 계절마다 발간하는 계간지가 아닌 다달이 발간하는 월간지로서 가장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한국문학의 굳건한 자양분으로 공헌해왔다. 수많은 작가들이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상’은 작가에게 으뜸가는 영예 중 하나로 통한다. (참고로 2014년도 현대문학상 수상자인 황정은 소설가와 신형철 평론가는 사건 당시 상을 반납한 바 있다.)
(3) 국립현대미술관 외압 논란
2013년 11월로 위와 비슷한 시기다. 많은 관심 속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전에서 청와대의 지시로 몇몇 작품이 빠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논란이 되었던 대표적인 작품은 임옥상 작가의 <하나됨을 위하여>와 이강우 작가의 <생각의 기록>이다. 전자는 (박정희 前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문익환 목사가 남북 분단의 상징물인 철조망을 넘는 모습을 담은 종이부조이고, 후자는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을 고문을 연상케 하는 상처 가득한 사람들의 얼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시작해 동학농민운동으로 끝나는 전시동선을 구상했기 때문”으로 외압은 없었다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논란은 진정되지 않았다. “동학으로 시작해 동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냥 동학 얘기만 한 것이다. 풍자와 비유의 대상이 일본이 아닌 우리 역대 정권인 작품은 다 빠지면서 동학에만 머문 것이다”라는 강영민 작가의 날선 비판을 대표적인 반론으로 들 수 있겠다.
이와는 별도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대 동문회’ 논란으로도 계속 시끄러웠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정형민 관장 취임 이후 학예사 채용, 전시, 작품 구입 등이 죄다 서울대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결국 작년 10월의 감사에서 점수를 조작해 제자를 합격시킨 등의 각종 비리가 확인되며 정형민 관장은 직위해제되었다.
(4) 런던 한국영화제 작품교체 논란
역시 2013년 11월의 일이다. 런던 한국영화제에 <설국열차>와 <관상>이 처음엔 초청을 받았다가 이내 취소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인사말을 한다는 점 때문에 그리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제작자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폭로했다.
계급투쟁을 전면적으로 다룬 <설국열차>와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소재로 삼은 <관상>은 결국 영화제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이들을 대신해 개막작이 된 작품은 <도둑들>이었다.
(5)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강제취소 논란
페스티벌 개최를 하루 앞두고 고양문화재단에 의해 강제취소당한 사건이다. 재단이 내건 명목적인 이유는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에 대한 사고수습이 진행 중인 가운데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지만 이면엔 한 정치인이 연계되어 있었다.
그 직전에 백성운 고양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의 성명서 발표가 있었다. ‘세월호 통곡 속 풍악놀이 웬말인가’라는 성명서에선 “세월호 통곡 속에서 맥주를 마시며 온 몸을 들썩거리게 하는 음악페스티벌과 관련, 100만 고양시민들께 정중히 사과할 것”을 촉구하며 취소를 요구했다.
해당 페스티벌은 애도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예정보다 축소 진행할 예정이었고 수익 여부에 무관하게 5천만 원을 성금으로 낼 계획이었지만 하루 전에 강제취소 통보를 받으며 논란이 되었다.
(6) 광주비엔날레 작품검열 논란
20주년을 맞은 작년의 광주비엔날레는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세월오월>은 5.18정신을 주제로 하는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그 이후’의 광주정신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가로 10.5m, 세로 2.5m의 대형 걸개그림이었다.
5.18과 세월호 사건을 엮은 해당 작품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표현한 부분이 문제가 되며 광주시로부터 수정 요청을 받았다. 이에 작가가 대통령을 닭으로 고쳐서 출품하며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홍성담 작가는 작품을 철회하기로 결정했고 이윤철, 정영창 등의 작가도 이에 불복해 각자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다. 이 건은 여권이 아닌 야권 측과 갈등을 빚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특이점을 갖는다는 평이 있다.
(7) 우수문학도서 선정기준 논란
올해 2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발표한 ‘2015년도 우수도서(세종도서)’의 선정기준이 논란이 되었다. 조건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전자는 자유로운 사상과 생각의 표현을 저해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작품에 우호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후자는 문학에마저 국가경쟁력 강화를 과제로 내거는 건 대체 무슨 뜻이냐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8) 국립오페라단 단장 낙하산 인사 논란
국공립 예술단체의 수장이 누구냐는 예술계 초미의 관심사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나마 안정적 경영이 가능한 단체이기에 예술계에서의 입지 및 파급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장이 바뀔 때면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일 때가 잦다. 예술계를 만만하게 보는 정치인들이 논공행상 격으로 전혀 전문성 없는 이에게 감투를 뿌려대는 관행 탓이다.
올해 1월 2일에 국립오페라단 단장에 취임한 한혜진 씨 또한 이와 같은 논란 속에 53일 만에 사임했다. 한씨가 단장에 임명되자 한국성악가협회 등 7개 단체가 뭉쳐 한국오페라 비상대책위를 결성하며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간단히 요약하면 ‘대체 누구냐? 우린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성악계에서의 경력이 미미할뿐더러 변변한 예술단체를 이끈 이력 또한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학력과 경력이 부풀려졌다는 논란도 덩달아 일었다.
“문체부를 통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바로 이력서를 받은 것”이라는 등의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등 음악인들의 반발이 진정되지 않자 한씨는 결국 사임했다. 현재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공석이다.
(9) 영화제 상영작 및 예술영화 사전검열 논란
올해 초의 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혹은 정부/지자체가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영화제에선 영화상영 등급 분류를 면제해준다는 규정을 변경하려고 들며 큰 논란이 일었다. 영진위가 조성한 9인의 전문가 심의를 통과해야만 상영이 가능하다는 방향이었다. 1월 22~27일에 열린 ‘2015 으랏차차 독립영화’에선 실제로 몇 작품이 상영되지 못했다. 그중엔 정부에 비판적인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방식도 나란히 개정을 추진하며 논란은 더욱 컸다. 영진위는 올해부터 자신들이 선정한 26편의 영화를 정해진 요일에 상영해야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예술영화를 사전검열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빤하다는 반발이 크게 일었다.
(10)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
근래 한창 시끄러운 건이다. 갈등은 작년 10월에 시작됐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영화”라며 <다이빙벨>의 상영 취소를 요청했지만 영화제는 상영을 강행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이후 위 9번 항목에서 언급한 방향으로 영진위가 규정변경을 추진한다. 부산국제영화제로선 당연히 직격탄을 맞게 되는 상황. 우여곡절 끝에 해당 개정은 무산되었지만 전체 예산의 절반을 지원하는 부산시는 계속 압력을 행사한다. ‘지도점검’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감사를 시행했고 조직쇄신, 인적쇄신 등도 주문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사퇴권고를 받은 바 있다.
영화인들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 박찬욱 감독은 “그런 영화제에 초청되고 추천되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며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동국대 민병록 교수는 “부산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예산을 120억 원에서 60억 원 규모로 줄인다고 하더라도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선 타협해선 안 된다. 이번에 타협하면 20년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