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Nature의 Complex societies evolved without belief in all-powerful deity를 번역한 글입니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회는 초자연적 정신(supernatural spirits)에 대한 믿음의 도움을 받아 등장했지만, ‘거대한 신(big God)’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인간사회는 교역네트워크가 증가하고 평판이 나타나면서 정치적으로 좀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언어다.
모든 인간사회는 종교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에 심리학자들은 ‘종교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특정한 형태의 믿음이 진화된 사회구조의 다른 측면에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예컨대, 최근의 관점에 의하면, 거대한 신(즉, 우리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강력하고 가혹한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문화에서 사회적·정치적인 복잡성을 초래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오스트로네시아(마다가스카르섬에서 이스터섬에 이르기까지, 작은 섬과 군도들로 이어진 네트워크)의 종교시스템을 새로 분석한 학자들은 기존이론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초자연적 처벌에 대한 좀더 일반적인 믿음이 정치적 복잡성을 잉태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고신 (supreme deities)에 대한 믿음은 복잡한 문화가 이미 형성된 이후에 등장했다”고 한다.[1]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아라 노렌자얀 교수(심리학)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숭고한 신(MHGs: moralizing high gods)에 대한 믿음을 이용하여, ‘아무도 위법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임승차자(프리로더)를 징벌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구성원을 위협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의 도덕적 행위를 일일이 감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2][3]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대학교의 문화진화 전문가인 조셉 와츠 교수는 ‘거대사회의 진화를 추동하고 유지하는 것은 거대한 신’이라는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해 왔다.
MHGs의 대표적인 사례는 소위 ‘아브라함적 종교’를 대표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인데, 이러한 종교들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되었으며, 복잡한 사회가 나타난 뒤에 형성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초기(예컨대 청동기 시대)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MHGs가 사회정치적 복잡성을 매개했는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사회정치적 복잡성이 MHGs를 만들었는가?”이다.
“사회적 복잡성과 종교적 믿음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을 찾는 것보다는, 인과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스트로네시아의 문화는 전근대적 사회에서 종교가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샘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현대 종교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으며, 이들 원주민의 초자연적인 믿음과 관행이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와츠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민족지학 기록을 근거로 하여, 400여개의 오스트로네시아의 문화 중에서 96개를 추려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적 종교와 접촉한 흔적이 있는 문화는 – 외부의 영향으로 왜곡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 제거했다. 이 문화들은 다신교적 믿음을 갖고 있는 하와이 원주민들에서부터 최고신을 믿는 마다가스카르의 메리나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에게서 전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연구 과정에서 종교를 두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중 하나는 MHGs이며, 다른 하나는 BSP(broader belief in systems of supernatural punishment)였다. 여기서 BSP란 ‘사회적인 위반행위가 초자연적으로 처벌되는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을 의미하는데, 선조의 영혼이나 인과응보와 같은 무생물적 힘(inanimate forces)을 통해서 작용한다고 믿어진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종교 또는 초자연적인 힘을 도덕적 행위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BSP는 이러한 과정을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단일한 최고의 신(a single supreme deity)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의 문화들을 분석해 보니, 6개의 문화는 MHGs를, 37개의 문화는 BSP를, 그리고 22개의 문화는 복잡한 믿음체계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문화들 간의 진화계통도를 작성하고, 기존의 언어학적 관련성 연구결과를 참조하여, 이들 사회의 상호연관성과 아이디어 교류방법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조사결과를 이용하여 MHGs와 BSPs에 대한 상이한 가설들(예: MHGs는 정치적 복잡성보다 먼저 등장했는가?)을 검증해 봤다.
가설검증 결과, 연구자들은 두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먼저, MHGs에 대해서는 “비록 MHGs는 정치적 복잡성과 공진화하지만, 복잡성을 추동한다기 보다는 그 뒤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BSPs에 대해서는,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BSP가 정치적 복잡성의 등장을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저자들이 선호하는 사건의 발생순서는 제1원칙으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교역네트워크가 증가하고 평판이 나타나면서 정치적으로 좀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언어다”라고 영국 레딩 대학교의 마크 페이젤 교수(진화생물학)는 논평했다.
그렇다면 MHGs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페이젤의 설명을 들어보자. “MHGs란 종교 공급자(purveyors of religion)가 권력을 잡는 데 사용하는 통제수단이다.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드는 대규모 사회가 형성되자마자, 이 부(富)는 권력을 잡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권력을 장악하는 가장 즉각적인 방식은 최고신과 동격이 되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목록이 사회적 행위에 적용되면 도덕이 된다.”
“MHGs가 정치적·사회적 복잡성을 추동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에 영향을 미치고 안정화시킨다는 증거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연구는 인상적이고 혁신적이지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라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하비 피플스 교수(인류학)는 논평했다.
“오스트로네시아에서는 사회적·정치적 복잡성이 제한되었다. 족장사회의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단일국가 수준의 사회는 성립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거대하고 도덕적인 신(big moralizing gods)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신들은 유라시아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대규모 국가수준의 사회에서 공진화한다. ‘거대한 신’이라는 아이디어가 모든 곳에서 진리일 수는 없다”라고 노레자얀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