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은 007 시리즈에 대한 거대한 헌정작이다. 우선, 프리타이틀 액션 시퀀스 – 오프닝 음악 – 본편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전형적인 007 영화[1]의 그것이다.
또한, 빌런과 주인공이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 모르는 척 간을 보는 장면은 너무나 노골적이라 반갑기까지 했다. 특히 이 영화는 007 시리즈 최악의 망작인 <문레이커>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돈이 무한히 많은 범세계적인 갑부가 우성인자 인류만 선별해서 대피시키고, 나머지 인류를 말살하려고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이 영화를 곰곰 따져보면 애초에 설정이 말이 되지 않는데[2], 베이스가 <문레이커>라는 점에서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다.
우성인자라고 하는데, 옆에 있는 헨치맨이 우성인자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보인다는 점 역시 <문레이커>의 흔적이다. 물론, 우성인자들만 몽땅 정리되고, 열성인자가 다 살아남아 우성인자의 허무함[3]을 보여준 점 역시 마찬가지다. 또, 007 영화의 엔딩 막장 러브씬이 극대화된 것이 <문레이커>[4]였는데, 이걸 아주 노골적인 대사를 써가며 더욱 극대화해버렸다.
이러한 커다란 그림 외에도 소소한 소재와 장면들에서 007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1. 퍼그의 이름은 JB: <썬더볼> 등등
JB 이름 약자 얘긴 오래된 얘기다. 제이슨 본이나 잭 바우어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도록 JB로 만들어진 것[5]이다. 그런데, 사실 JB를 약어로 하는 이름 개그는 <썬더볼>에서 먼저 사용됐다.
스펙터 요원 자크 부바르의 관을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 당신 이름 약자가 있네요: JB.
– 내가 아닌 게 천만 다행이지.
2. 스카치 위스키 달모어 62: <스카이폴>
<스카이폴>에선 스카치 위스키 맥칼란 62년산이 등장했다. 달모어 62가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달모어 62는 얼마 전 상하이 공항에서 12만 5천 파운드(약 2억 천만원 정도)에 팔렸다고 한다. (참고 사이트)
그리고, 이 달모어 62를 알아보며 멋지게 적을 해치우다 살해당하는 랜슬롯의 실명은 제임스이다. 이 부분은 “62년부터 시작된 제임스 본드는 죽었다”는 느낌을 준다.
3. 프리 러닝: <카지노 로얄>
에그시가 집에서 탈출할 때 살짝 프리 러닝의 흔적이 보인다. <카지노 로얄> 오프닝의 프리 러닝을 여러모로 연상시켰다.
4. “Put it back”: <살인번호>
에그시가 “그것”을 훔치려고 할 때 갤러해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Put it back”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갤러해드의 카리스마를 은근히 보이면서 그가 완전하게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첫번째 007 영화인 <살인번호>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M의 카리스마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5. 신발: <위기일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참, 계속 독침은 오른발에서 나오는데, 마지막 그 장면에서는 왼발에서 나온다.
6. 라이터: <살인면허>
<살인면허>는 특수장비를 상당수 제거하고 리얼리티 본드로 돌아가려는 시도[6]를 한 멋진 영화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평범한(응?) 라이터가 등장해서 장비가 없는 빈틈을 살짝 채워주는데, <킹스맨>은 그냥 특수장비다. 하는 역할은 <살인면허>의 그 라이터와 비슷하긴 하지만…
7. 스카이다이빙 훈련: <리빙데이라이트>
007 영화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가는 거야 한두번 나온 장면이 아니지만, 이 훈련은 정확히 <리빙데이라이트>다. 아예 훈련의 목적이 기지에 침투하면서 레이다에 발각되면 안 된다는 점에서 <리빙데이라이트> 빼박이다.
8. 중절모 쓴 흑형: <죽느냐 사느냐>
사무엘 잭슨이 연기한 대머리 아저씨 발렌타인이 정장을 맞추며 중절모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눈에 많이 익은 장면인데, <죽느냐 사느냐>에서 이 분께서 중절모를 쓰고 활약하셨다.
9. 등에 찔린 칼 쯤이야…: <카지노 로얄>
교회 난장판 액션 시퀀스에서 등에 칼이 찔린 채로 막싸움을 즐기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카지노 로얄>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못이었지만. ㄷㄷㄷ
10. 연장자는 종으로 부려야 맛이지: <뷰투어킬>
뜬금없이 에그시가 멀린에게 “파일럿에서 개인 비서로 승격해시켜주지”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 장면은 낯설지도 않고, 사실 조금 완화된 장면이다. <뷰투어킬>에서 본드는 고드프리 티벳 경에게 아예 이런 짓을 시켰다…
11. 마티니: <골드핑거>?
영원한 제임스 본드의 칵테일은 보드카 마티니, 젓지 않고 흔들어서이다. 첫 007 영화인 [살인번호]에서부터 영화 속의 본드는 보드카 마티니를 마셨다. 그런데, [골드핑거]에선 본드는 마티니를 마셨다.[7]
우리의 신세대 본드 에그시는 굳이 보드카 마티니가 아닌 진 마티니를 주문해서 마신다.
12. 클래식과 어우러진 잔혹한 장면: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면서 나오는 잔혹한 장면은 정말로 인상적이며, 최고의 명장면이다. 그런데,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선 모차르트의 피아노 교향곡 21번(엘비라 마디간 테마)을 들려주며 잔인한 장면을 보여준다. 무려 상어[8]가 여자를 잡아먹는 장면에서… ㄷㄷㄷㄷ
13. 빌런의 죽음: <스카이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칼을 던져 빌런을 살해함.
원문: TEUS.me
- 물론, 이런 구성을 따르는 영화는 많고, 오프닝에 건배럴 시퀀스가 없긴 하지만… ↩
- 그 맛있는 와인을 먹기 위해서 포도 농사를 “우성인자” 여러분들이 지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
- 소설 〈문레이커〉는 나치를 쫓는 내용이고, 영화에선 사실상 이름만 가져왔는데, 인종청소라는 소재는 또 나치의 주력 테마라능… ↩
- 이건 아무래도 루이스 길버트 감독의 개취인 듯. 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역시 유사한 막장 수준. ↩
- 소설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읽으면 007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여기저기서 나옴 ↩
- <카지노 로얄>이 최초가 아니었음. [살인면허]가 있었고, 그 전에도 <여왕폐하의 007>, <유어아이즈온리>가 있었음. ↩
- 이건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감독이 교체되면서 지 마음대로 한 짓임… ↩
- 이 상어를 영화 마지막에 빌런 ‘죠스’가 물어서 해치운다는 아이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