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단원 99명 중 67명이 12일 날짜로 신분이 변경되었다. KBS직원에서 재단법인 KBS교향악단 직원으로의 전적 통보를 받았고 그들은 현재 불복하고 있다.
전적 시에는 더 이상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오디션을 통해 해고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파견 형식을 통해 지난 2년 6개월간 KBS직원 신분을 연장해주었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나머지 직원들은 이미 재단법인 소속이다. 내겐 이 사건이 지금 한국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이 읽힌다. 이면에 여러 논제들이 복합적으로 뒤얽혀 있다.
일부 음악 애호가들조차 해고를 넌지시 반기는 이유
이번 사태에 대한 애호가들의 시선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전적을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 둘째는 일류악단의 위상이 퇴색한 지 오래인 KBS교향악단에 대한 무관심, 셋째는 이를 계기로 새로 악단을 만들자는 은근한 반색.
첫 두 시선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세 번째이다. 적지 않은 애호가, 심지어는 음악관계자까지 차라리 잘됐다는 눈치다. 경쟁력 없는 나이든 단원들을 이제 정리해나가고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새로 채용하자는 것이다.
냉혹한 견해일 수 있지만 마냥 근거 없지는 않다는 게 난점이다. 현재 음악계의 세대 간 실력 격차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시한 여러 분야의 자본축적이 원인이다.
인프라가 한결 진보하며 한두 세대 전의 교육 여건과 지금의 교육 여건은 그야말로 천양지차고 이는 자연히 아웃풋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근래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 콩쿠르 무대를 누비는 건 평균 수준 자체가 크게 올라갔기에 가능한 것이다.
KBS 경영진 등이 ‘그깟 단원들 자르고 새로 뽑으면 돼!’라고 세게 나갈 수 있는 덴 이런 배경이 있다. 시장에 대체인력이 충분한 데다 수요자 층은 차라리 반기기까지 하니 거리낄 것이 없다.
물론 오케스트라 따위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전제되어 있다. 비싸게 돈 들일 것 없이 적당한 외주 형식으로 쓰면 된다는 것으로 KBS교향악단에의 지원은 이제 점차 줄어들 공산이 크다. (참고로 KBS교향악단에 투입되는 수신료 지원은 서울시향에 투입되는 세금 지원과 비슷하다. 올해는 108억 원으로 6억 원 더 많다. 그러나 실력이나 위상은 서울시향이 훨씬 높다.)
한국 사회의 딜레마: 사람이 가장 싼 세상
하지만 그런 ‘경영합리화’ 등의 명목으로 오래도록 함께해온 연주인들을 정리하고 새 판을 짜는 걸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는 힘들다.
만약 그런 논리를 사회 전반에 적용한다고 가정해보라. 처음에 계약한 사항을 변경해가며 해고조건을 마련하는 방식을 모든 기업이 도입하면 수많은 직장인 중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업은 몇 년 부리다가 연봉 좀 오를 때가 되면 스펙 짱짱하고 저렴한 젊은 사람으로 교체하려 들 게 틀림없다.
오디션을 통한 해고라는 고육지책은 서울시향에 이미 선례가 있다. 정명훈이 부임하던 10년 전에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며 오디션을 통해 매년 5%를 해고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 점진적인 물갈이를 해온 것이다. 당연히 칼바람이 일었고 많은 이들이 악단을 떠났다. 그러나 그 과정이 없었다면 서울시향의 성장은 불가능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음악관계자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함께 열심히 연습하며 성장하는 그런 동화 같은 스토리가 가능하다면 참 아름답겠지만 그러기엔 신구 단원 간의 실력 격차가 너무 큰 게 현실이었으니까. 당시의 서울시향은 한국 내에서도 2류로 분류되던 악단이었다. (난 일정 궤도에 오른 현재의 서울시향은 해당 5% 해고조항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본다. 그땐 나름의 명분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다.)
이 딜레마 때문에 난 이번 사태가 지금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온갖 스펙으로 중무장한 실력 있는 주니어들은 일할 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지금의 한국사회를 만들어오는 데 묵묵히 공헌해온 시니어들은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리고 일선의 경영진은 이런 환경을 악용해 사람을 그다지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 사람이 제일 싼 세상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려운 문제다. 아둔한 나로선 당연히 답을 모른다. 다만 애호가들이 이 건을 너무 냉랭히 바라보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KBS교향악단 이제 별로잖아. 어찌되든 알 게 뭐야? 이참에 물갈이하는 것도 좋겠네!’라는 견해는 솔직히 좀 무섭다. 그와 똑같은 잣대를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자기 자신에게 들이댈 때도 그리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한계급의 취향으로 여겨지며, 노동자와 연대조차 힘든 클래식계
KBS교향악단 단원들, 나아가 예술계에도 아쉬움이 있다. 2년 전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고 그동안 나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과연 그들은 어떤 식으로 타개책을 강구해왔던 것일까? 현재의 분위기,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이한 대처가 거의 전부였던 듯하다.
‘억울합니다. 구해주세요’라고 피켓 들고 호소해봐야 귀 기울여줄 사람은 거의 없다. 대중은 클래식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심지어 노동자로서의 연대감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부모 잘 만나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바라보는 클래식 연주자의 스테레오타입인 게 현실이다.
하물며 클래식에 관심 있는 이 중 상당수조차 ‘KBS 쟤네 이제 별로잖아. 수신료만 엄청 축내는 주제에 내 알 바 아님!’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걸 뛰어넘을 수 있는 타개책을 강구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맥락에서.
일이 불거진 후에야 우왕좌왕하며 ‘폭압적인 경영진(혹은 지휘자) VS 힘없는 순수한 예술인’의 구도로 판을 짜는 경우가 잦은데 그런 식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된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계가 자신들의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어야 할 때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음악계가, 나아가 예술계가 하면 좋겠다. ‘중규직’ 논란이 한창 뜨거운 데서 알 수 있듯 시대의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예술계도 예외일 리 없다. 늘 말하는 바지만 예술은 단지 특수한 분야일 뿐 특별한 분야는 아니다.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그리 대처하면 수술 당하는 일 외의 다른 선택지는 어디에도 없다.
정치권, 언론 등에는 별 기대를 않는 편이 좋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층은 예술 등도 자연히 시장의 영역으로 내보내려 하기 마련이기에 각종 지원 등을 줄이자는 입장이다.
반면 진보층은 예술보다 다른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짙다. 특히 클래식 같은 분야는 부르주아나 향유하는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늘 첫 번째 정리대상으로 거론된다. 사건이 터진 초기에는 언론 등이 잠시 조망해줄지 모르겠으나 이내 그들의 논조는 냉혹하게 바뀐다. 각 매체가 가진 기존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서. 지금껏 늘 그래왔다.
스스로 타개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예술 시장의 수요가 굉장히 작다는 걸 절실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수요를 견인해나갈지도 고민해야 한다. 또 세금(혹은 수신료)의 지원 없이 운영이 불가능하다면 그걸 납부하는 주체(국민/시민/시청자)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설득하고 입증하는 데에도 전력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공감대를 얻는다.
솔직히 난 예술인들, 그리고 예술 관계자들이 너무 오만하다고 느낄 때가 잦다. 걸핏하면 문화가 어쩌고 진정한 선진국이 어쩌고 그러며 지원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착각 그만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매년 60~70회 남짓 음악회에 갈 만큼 애호가 반열에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이 말은 확실히 해야겠다.
클래식 따위 없어져도 세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