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블로그에서 다룬 개발금융에 대한 우려에 우려를 표한다는 사실 우리 시민사회가 가지는 몇 가지 사소한 오해와 이해부족에서 비롯한 해프닝이라서 별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뒤로도 ‘확증편향’이 계속되고 있어서 문제인데, ODA[1] Watch에서 펴내는 매거진 OWL 97호 (2015.1.13.)의 ‘유상원조의 변화와 민간개발재원 유입 (2)’에서 언급된 개발금융에 대한 대표적인 의문 몇 가지만 짚어볼까 한다.
1. 개발금융을 도입하면 ODA 규모는 확대하고 실지출은 최소화할 수 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공여국의 ODA 규모는 확대하고 실지출은 최소화할 수 있기에 공여국 이익에 기반한 접근법인 것이다. 어느 국가가 자국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ODA의 실제 지원 금액은 줄이고 통계상 많이 계상되는 방법을 거부하겠는가?”
진짜 그렇게 된다면 각 공여국 정부는 개발금융을 입안한 공무원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런 뉴스는 들어본 바 없다.
이 이야기는 현실을 거꾸로 쓴 것이다. 각 공여국들이 ODA 규모를 늘리고 싶은데 정부 재원만 가지고는 어려우니까 민간에서 재원을 끌어다 쓰자는 것이다. 현재 지원하고 있는 ODA 규모를 줄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국제사회가 감시하는 가운데 지원금액을 줄일 방법도 없다.
현재 우리 정부 안대로 개발금융을 도입하면 수출입은행(수은)이 은행채를 발행하여 마련한 돈으로 개도국에 대출한다. 이 때 이자율은 수출입은행이 조달한 금리보다 낮을 수도 있고 약간 높을 수도 있다. 이는 대출해가는 고객국(수원국)의 상황에 따를 것이다.
고객국 재정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을 경우, 약간의 마진이 얹어져 대출될 수도 있다. ‘마진’이라니까 또 무슨 대단한 이익을 보는구나 오해할 필요 없다. 공적수출금융기관에서 운용하는 수출금융에서 생기는 마진보다도 낮을 테니까. 그래도 우리나라 신용도를 기반으로 조달한 자금에 약간의 수수료만 더한 수준이므로, 고객국이 자기 신용도를 바탕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금보다는 훨씬 고객국에 유리하다.
보다 사정이 어려운 고객국에게는 수은이 조달한 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여 대출한다. 이렇게 되면 역마진이 발생한다. 즉, 수은이 시장에 상환할 이자보다 고객국에서 받는 이자가 적다. 이 이자 차액을 유상원조인 EDCF[2]로 보전해 준다는 얘기다. 이걸 ‘이차보전’이라 한다.
이자 차액만큼의 돈만 가지고 원금만큼의 자금을 조달하면 얼마가 되든 leverage가 생기는데 어떻게 ODA 지원금액이 줄겠는가? 이자율 등 대출조건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계산은 뒤로 미루지만, 양허성을 Grant Element[3]로 계산할 때 적용 할인율이 10% 이므로 ODA 지원금액 자체는 반드시 늘어나게 되어있다. 물론 양허성을 Concessionality Level[4]로 따지면 계산결과가 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전체 ODA 지원금액이 줄어드는 일 따위는 없다.
참고로, 지금까지는 양허성(Grant Element)이 얼마든 차관금액 전체가 ODA로 계상된다. 즉, 10백만불짜리 유상차관의 양허성이 40%이든 80%이든 ODA 통계에는 똑같이 10백만불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총공적개발지원(Total Official Support for Development, TOSD) 개념으로 바뀌면 같은 금액이 양허성에 따라 4백만불이나 8백만불로 계상될 것이다. 얼마로 계상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중이나 현재 유상차관 지원금액은 어떻게 되든 통계상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양허성이 100%가 아니었으니 유상차관이었을 것 아닌가.
따라서 다른 방법 없이 현재 유상차관 규모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우리 ODA 규모는 통계적으로반드시 줄어들게 되어있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서 개발금융의 도입이 추진된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2. 인프라 투자는 빈곤감소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롭다?
이런 주장이 제일 답답한 소리다. “개발금융을 통한 원조의 60%는 교통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인데, 인프라 투자가 빈곤감소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지를 입증하기가 힘들고, 때로는 지역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점에서 개발의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라니?
인프라 투자의 경제적 효용에 대한 불신은 그 역사가 깊다. 우리 경험만 비추어 봐도, 경부고속도로 역시 거센 반대를 경험했고, 지금은 너무도 당연시 하고 있는 KTX도 쓸데 없는 투자로 간주되었었다. 하긴, 최근 4대강 같은 희한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나니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반적으로 건전한 프로젝트라면 교통과 에너지 분야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빈곤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거기다, 교통, 에너지 인프라가 때로는 지역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니?? 아마도 EDCF로 추진되었던 마닐라 남부 통근 열차 프로젝트 (South Manila Commuter Rail Project) “필리핀 주민의 저주의 대상이 된 한국 원조” 에서처럼, 현지 정부의 무기력과 무능까지 우리측이 완벽하게 커버해야 한다는 환상적 완벽주의에서 나온 발상인 모양인데, 이런 케이스는 완벽하게 장과 구더기의 관계일 뿐이다. (결국 이 사업도 완공후 운영에 들어가자 평가가 달라졌다. “한국 자금·기술로 교통체증 뻥 ~”)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께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빈곤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은 과연 어떤 것인가? 답하실 때 일단 교육, 보건, 식량 등과 관련된 사업은 고려대상에서 다 빼주시기 바란다. 교육, 보건과 같은 전형적 BHN(Basic Human Needs) 충족용 사업들은 빈곤의 결과에 대한 조치일 뿐이다. 즉, 그것들은 빈곤의 결과로서 발생한 문제이므로, 고작 그것들을 치유한다고 빈곤에서 해방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빈곤 그 자체를 대상으로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업생산과 유통 등 현지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원조(Aid for Trade)가 보다 근본적인 처방에 가깝다. 원조사업은 아니었지만, 방글라데시 최대 수출산업인 봉제산업의 싹을 틔운 ㈜대우 사례나, 중고 트럭을 대량 공급하여 라오스의 내수 유통에 크게 기여한 코라오그룹 사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빈곤에 대한 최선의 방책은 결국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3.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개발협력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문제] 아래 내용은 무엇에 관한 설명인가?
개발목표를 달성한다는 신뢰할만한 증거 없음
개발도상국의 오너십(ownership)을 경시함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무성이 낮음
무상증여분의 부가가치가 의문시 됨
희소한 ODA 재원을 낭비할 수 있음[보기]
1. 한국 ODA에 대한 Peer Review 결과
2. OECD DAC 회원국의 유상차관 일반에 대한 평가
3. CDI(개발공헌지수) 내용중 원조분야에 대한 반성
4. UN의 MDGs 달성과정에 대한 자체 중간평가
죄송하지만, 주어진 보기는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바로 “유럽의 개발/부채 네트워크인 Eurodad가 유럽연합이 제공한 개발금융기관들의 개발성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2013)에서 기술한 개발금융의 특징”이다. OWL 매거진에 나온 것을 그대로 재활용해 보았다. (단, 원문 The added value of the grant element is questionable.을 OWL에서 ‘증여율이 과대하게 계상됨’으로 번역한 것을 ‘무상증여분의 부가가치가 의문시 됨’으로 다시 번역해 넣었다)
선진 유럽의 시민사회 가운데서도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Eurodad가 아주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위 문제풀이에서 보시다시피 개발금융에 대해 파헤친 결과가 일반적으로 원조 내지는 개발 프로그램이 가지는 단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지적하는 개발금융의 단점은 유독 개발금융에만 있는 단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때다
대체적으로 볼 때, 우리 시민사회는 ‘확증편향’이 다소 강한 모양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같은 시민사회가 아니면 잘 믿지 않는 것 같다. 위에서 예로 든 마닐라 통근열차 사업의 경우도 문제를 제기한 우리 시민단체가 들은 얘기는 현지 시민단체(와 거기 파견나간 한국 시민단체 직원)의 얘기뿐이었다. 유럽의 개발금융에 대한 평가도 유럽의회에서 나온 자료처럼 중립적인 시각보다는 유럽 시민단체에서 나온 자료들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그런 성향은 개발금융을 추진하는 정부측도 비슷하다. 추진 근거가 주로 국제기구의 경제개발을 강조하는 Agenda이거나, 수원국 정부의 경제/산업 개발정책, 우리 정부의 재정상황이나 우리 기업의 현지진출 지원전략 등과 물려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개발금융에 대해 찬성하는 측이든 반대하는 측이든 최우선적으로 들어야 할 목소리는 “고객의 목소리(VOC, Voice of Customer)”다. 최종 고객(수혜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는 대응하면 된다. 우리끼리 고객국(수원국)이라 묶어서 말하지만 각각의 국가는 제 각각 상황이 다르다. 무상원조를 바라는 고객에게는 무상원조를, 개발금융을 바라는 고객에게는 개발금융을 공급하면 된다. 공급자 내부적으로 이러쿵 저러쿵 할 사안이 아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특히 OECD의 Sustainable Lending Practices and Guidelines (SLP) 적용을 받는 많은 수원국들, 그러니까 정상적인 수출금융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린 고객국들에게는 개발금융이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OECD에는 DAC 말고도 24개의 위원회가 더 있고, 엄청나게 많은 guideline이 존재한다. SLP는 금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설명이 꽤 방대해서 이 자리에서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과거 아프리카 사례로 써둔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다음에 실무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혹시나 아직까지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않고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정중하게 권해 드리고자 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시라.
원문 :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