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들어갔다. 계산대 옆에 있는 초콜릿을 집어 들고 계산을 부탁했다. 그런데 점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신분증을 요구한다. 당신은 아무래도 왜 신분증을 요구하는지 묻을 것이다. 점원은 “청소년한테는 초콜릿 안 팝니다”라고 대답한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대처를 할까.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만연하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물건 고시(고시 제2013-51호)는 돌출형 콘돔, 사정지연형 콘돔 등에 대한 유해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일반 콘돔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생활을 하는 많은 청소년들은 콘돔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부끄럽지 않아요!>의 청소년 성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이다. 몇 달 전부터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갖기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의 남학생은 콘돔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 편의점에서 콘돔을 살 때는 많이 떨리고 긴장되었다. 어디 진열되어있는지도 모르고, 사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청소년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미성년자도 콘돔을 구매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샀던 3개입짜리 콘돔을 다 쓰고 재구매를 위해 다른 편의점에 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여자친구를 두고 콘돔을 집어 계산하려는데, 점장이 신분증을 요구해왔다. 청소년보호법에도 일반 콘돔에 대한 제재 사항은 없다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점장은 청소년을 믿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본사 직원에게 물어본다며 점장이 기다리라고 했고, 주변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가 마음에 걸려 남학생은 콘돔을 사지 못하고 나왔다. 콘돔을 산 적이 있었던 편의점으로 갔지만 마찬가지였다. 또 신분증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콘돔을 구매하지 못했다.
사연 속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콘돔이 성인용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모든 성교에는 책임이 필요한 것인데 왜 미성년자에게는 책임을 질 수단을 막아버리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지하철 자판기에서도 신분증 없이 파는 것이 콘돔인데 말이죠. 그리고 저 같아도 청소년이 임신으로 고생하게 놔두기보다는 콘돔 하나 팔아주는 쪽을 택했을 것입니다. (…) 저의 문제가 해결되긴 했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어요.
그는 다행히 약국에서 콘돔을 구매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고 했다.
너네는 안 돼
신분증을 요구한 편의점 점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콘돔이 술이나 담배처럼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판매 불가한 물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청소년의 성관계에 대한 반감 내지 불편함일 테고. 설사 그게 아니었더라도 어련히 콘돔이 청소년유해물건일거라 생각하는 그 부분부터 문제는 명확하다. 청소년의 성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꼼꼼히 알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콘돔을 청소년에게 팔면 안 된다고 믿게 하는 꼬장꼬장한 성문화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단 너네는 안 된다고 하고 본다. 너네는 아직 어리고, 너네는 아직 책임질 줄도 모르고, 너네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나이이니 안 된다. 대체적으로 그게 청소년의 성생활을 무턱대고 부정하는 이들의 논리이다. 그 의식이 너무나 강하다보니 실제 법 고시사항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위의 사연만 봐도 그렇다.
자신이 콘돔을 구매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청소년마저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어려운 지경인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콘돔을 집어든 청소년은 오죽하랴. 용기를 내어 편의점에 갔더니 미심쩍은 눈으로 신분증을 달란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결국 청소년은 신분증을 안 가져왔다고 어물어물 말하고는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콘돔은 성인용품이구나’, ‘나는 콘돔을 사면 안 되는구나’하는 잘못된 정보가 각인될 것이다. 피임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후미진 지하철 자판기에서라도 몰래 사다 쓸 테지만, 피임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청소년이라면 안전한 성관계로부터 그만큼 멀어지는 것이다.
판매 거부와 법적 절차
청소년들이 편의점에서 판매 거부를 당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과 소비자로서 보장되는 법적 권리를 알아보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 보호원, 그리고 관할구청의 지역경제과에 연락을 했다. 대화의 흐름은 대개 적대적이거나 억압적이었다.
콘돔 판매를 거부당한 청소년이라고 하자 그들은 다른 곳으로 연락해보라고 하거나 “몇 살이라구요?”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고등학생이 콘돔을 뭐 하러 샀죠?”하는 다소 훈계적인 어투로 응대했다. 심지어 여성가족부의 고시사항에 따라 청소년도 일반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는 법적 권리를 분명히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 잘못했는지, 학생이 잘못했는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라고 대답했다.
심리적 압박감과 정신적 피해를 무릅쓰고 판매 거부를 당한 청소년이 소비자로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청소년, 그리고 콘돔
“청소년도 건강하고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서 콘돔을 구매할 수 있어요”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국내에 있을까 싶다. 콘돔을 숨기면 섹스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렇다. 피임 교육 한번 제대로 해주지 않는 학교 성교육만 받은 청소년들이 알아서 콘돔의 중요성을 알고 피임을 하려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 청소년들이 용기 내어 콘돔을 살 때, 기성세대는 차갑고 아니꼬운 시선으로 내치고 있다.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와 정신적 압박감을 덜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성인들에게 콘돔은 ‘반드시 써야’하는 물건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콘돔이 ‘쓸 수 없는’ 물건인 듯하다. 적어도 ‘청소년들도 콘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누구든지 간에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문: 부끄럽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