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하게 부동산(집)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런저런 것들을 읽던 중 얼마전 새나님의 호평도 있고 해서 집어든 책. 부동산은 끝났다는 자극적인 제목인데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은 끝이 났고 주거의 중요성은 크게 남았다는 저자의 뜻이 반영된게 아닌가 싶다.
저자는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로, 20대 판자촌 철거반대 운동에 참여한 운동권 출신임과 동시에,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서울시정 도시사회연구부장과 청와대 국정과제 비서관, 국민경제 비서관, 사회정책 비서관등을 거쳐 환경부 차관까지 지낸 그야말로 주택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주택 분야의 오랜 전문가의 책 답게 과거 해방 이후 개발 독재 시대부터 우리나라 주택의 변화 과정, 정부의 정책과 내외부 변수, 이슈로 거론된 정책들이 끼친 작용과 부작용, 해외 주택 정책 사례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진보 쪽 인사이나 어느 한쪽의 큰 치우침 없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자 생활터전인 ‘집’에 대한 균형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30대 중반 이전 세대라면 상당수가 어린 시절 이유도 알 수 없이 떠밀리듯 이사를 다녔던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치 않았던 친구들과의 작별, 낯선 학교에서의 생활… 부동산 정책 교과서 같은 책이라 감성적인 내용은 거의 없음에도 읽으면서 오래전 기억들이 여러가지 떠올랐다. 70년대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는 종로에서 터를 잡았는데, 나를 낳고 얼마간 충신동에 사시다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입학무렵 당시 추첨식이었던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에 내가 당첨되자 가까운 대학로로 이사를 했다.
80년대 대학로는 큰 대로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택가로 이뤄진 동네였다. 대로변에서 가까운 주택들은 부잣집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마당까지 갖춘 2층짜리 양옥집들이었다. 지금은 지역이 주거 기능을 상실하여 대로변 뿐 아니라 깊숙한 곳까지 모두 자영업 점포들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과거 구옥의 흔적을 유지한체 영업을 하는 곳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현재는 문화의 거리로 각광 받고 있지만, 당시 살았던 80년대 대학로는 주거지로서는 정말 최악인 곳이었다. 주말이면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대와 전경의 전투가 벌어졌고, 나는 뛰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문과 창문을 걸어잠그고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맡으며 눈물 콧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주말을 보내고 등교하면 벽돌로 쌓아진 학교 정문 담장과 입구가 사라져버리거나, 도망치던 데모대와 백골단의 추격전으로 우리집 지붕이 모두 부숴져 버린 일 등,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새삼 되새겨 보면 나도 역사의 뒷페이지를 장식하는 군중의 한 명 쯤으로 분명 참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ㅎㅎ)
60년대 도심 개발과 함께 시작된 수도권 인구 집중은 매우 가팔랐다. 하지만 인구 증가 대비 주택 공급은 충분치 못했다. 그들은 문간방 하나에 온가족이 세를 살거나 국유지 등에 판자촌 군락을 이루었다. 옛 추억은 은은하지만 옛 주거의 기억은 그다지 아름다울 수 없었을 것 같다. 이웃과 공유하는 화장실, 언제 가스 중독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연탄 보일러, 온가족이 한방에서 부딪치는 생활, 무엇보다 언제 문을 두드리며 집을 비워달랄지 알 수 없는 집주인에 대한 공포 등 70년대 서울에 살던 대다수에게 ‘번듯한 내집 마련’은 간절한 소망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런 주거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부분의 주택가들은 정비가 되어 주거지역와 상업지역로 나뉘어졌고 닥치는대로 지어서 얼기설기했던 70~80년대 주택지는 이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80년대 국가의 성장과 소득의 증가와 함께 민주화 이후 위정자들은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무엇보다 높은 가치에 두고 전념했기 때문이다. 90년 노태우의 200만호의 주택 공급, 김영삼 정권의 매년 60만호 주택 공급 공약, 이후 공공 주택, 임대 주택 정책 등 20년 이상 공격적인 주택공급으로 많은 이들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언론이나 매체에서 주택 시장을 이야기 할 때 아파트 중심, 강남과 중상층 이상의 주거 지역을 위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국민은 아파트가 아닌 시세가 1억을 넘지 못하는 주거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 중상층 이상은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새삼스러울 것이고 중하층은 나만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삶에 있어 주거의 질과 안정성은 무엇과도 쉽게 바꾸기 어려운 중요한 가치다. 복지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우선 거론되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한다. 주택 시장에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택을 시장 논리에만 맡기기엔 정부의 역할을 배제할 수가 없다.무엇보다 택지 조성부터 민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의 정책에 따라 그간 주택 시장은 중단기적으로 가파르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진보, 보수 양측에서 오랫동안 언급되고 필연적 대안처럼 여겨진 정책들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비판한다. 우리보다 100년 이상 선경험을 가진 국가들이 거쳐간 자취를 훑으며 그러한 정책들이 가진 한계와 도출될 수 있는 문제들을 언급했다. 표면으로 나타나는 사회 문제는 여러가지 복합적 원인으로 인해 드러나는 ‘현상’에 가깝듯 주택문제 역시 어느 한가지 방법으로 씻은듯 문제 해결을 보기란 어렵고, 중장기적으로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공공이냐 민간이냐 소유냐 임대냐 어느 한 가지가 답은 아닌 것이다.
일례로 현재 자가 소유가 70%에 육박하는 영국만 하더라도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주거는 공공임대로 인해 이루어졌다. 전체 주택의 70% 이상이었다. 그것이 영국이 목표했던 복지국가의 핵심정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정책은 70년대 오일쇼크와 전세계적 인플레로 인해 금새 재정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덩달아 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도 급증했다.
이는 결국 ‘대영제국’을 78년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만드는 상황까지 몰고갔고, 이후 레이거노믹스와 함께 대처리즘을 불러온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이 책에 언급된 국내 정책 뿐 아니라 싱가포르, 북유럽, 미국, 일본 모든 사례에서도 동일하다. 어느 정책이던 명이 있으면 반드시 암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국은 명에 따르는 암을 얼마나 잘 관리하냐가 관건인 것이다.
신도시로 새로운 택지를 조성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그린벨트까지 풀어서 공급하지만 서울처럼 사람에 밀리고 치이는 구도시가 아닌 구획 정책은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조성한 주택의 ‘공급가’도 적지 않은 문제다.
뉴타운은 더욱 심각하다. 구도심을 대규모로 재개발하는 뉴타운은 가구수를 50% 선으로 감소시킨다. 분양가의 문제던 뭐던 간에 의자 돌리기처럼 절반의 가구는 새로 조성된 주거지에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실제로도 뉴타운 조성 후 남아 있는 거주자는 17%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상 통계 자료에서도 볼 수 있듯 ‘2억원대 이상의 수도권의 아파트’는 중상층의 주거지이다. 개발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중하위층의 주택을 빼앗거나 외면하는 형태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러가지 우려 속에서 개발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국가가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되어 상대적으로 외면받은 지방은 토건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대비 지방의 국회의원 비중은 높다. 그에 지방자치까지 더해져 지방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무모한 주택 건설과 토건행정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어려운 저학력 중고령의 상당수의 종사인력들이 건설 시장에 소득이 메여있는 것도 한 축을 담당했다.
악순환이다. 물론 많은 이권으로 인해 쉽지 않겠지만 건설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 수준으로 부합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던 사회던 ‘무리’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소득대비 주거비 지출이 OECD 평균 20%대 중반인데 반해 우리는 최하위 수준인 7~18%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소비 수준이 소득대비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었던 것은 낮은 주거비가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저성장과 맞물려 소득이 늘지 않고 전세가 급등과 월세 전환 등으로 주거비는 오르는 상황은 피하기 어려운 현실로 보인다.
다른 복지 이전에 중하층에게 안정적인 주거가 이뤄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거론된 ‘뉴스테이’ 정책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수요층의 수준에 맞춰 민간 건설사가 지은 중소규모 주택에 금리 수준의 낮은 월세로 제공하는 형태이다. 부족한 주거 비용은 국가에서 세제및 비용 지원 등으로 다양한 혜택을 준다. 부지와 택지조성의 문제가 있지만 건설업이 연착륙을 하고 저소득층도 주거비의 부담을 다소 덜어낼 수 있는 괜찮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대규모 재개발과 신축으로 사회의 비용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현재의 구옥을 지원으로 개보수하여 잘 관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주거비용 상승’을 최소화 시키고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소득층의 주거 목적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신고 의무제로 하되 소득세를 걷지 않는 대신 임대료 상승 제한 등 정부의 포괄적인 관리 하에 놓이도록 하여 세입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시장은 암암리에 그런 구조가 되어 있지만 일방적’임대료 상승’이라는 횡포를 막을 구조적인 방법은 없는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기대가 되는 주택 사업 하나를 소개한다.
도심지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방치된 구옥들이 적지 않다. 이를 소유주와 계약을 맺어 리모델링을 하여 임대하는 형태의 쉐어 하우스 사업이다. 친한 후배가 사회 공헌 사업으로 진행한 일인데 최근 서울시에서도 이에 아이디어를 얻어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업 자체도 긍정적이지만 집을 쉐어하는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과정과 생활 행태도 긍정적이다. – 새로운 구성원을 받는데는 기존 구성원들의 동의에 의해 이뤄진다.(사업주는 개입불가) – 애완 동물 사육도 공동의 결의에 의해 이뤄진다. – 구성원 중 하나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실직) 임대료를 내지 못할 경우 보류 또는 감면 해준다. – 그간 혼자 살면서 고립을 느꼈던 이들이 트여진 공간을 공유함으로서 친구가 생기고 유대관계가 늘어나는 사례들이 있다.
방치된 집이기에 집의 소유주가 높은 임대 소득을 받지 않아(사업주의 협상) 고정 비용이 낮고, 사업주가 높은 수익을 원치 않는 방식이기에 가능한 사회 공헌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20대 층을 중심으로 하는 형태고 구옥의 공급에 따라 제한적인 요소가 있지만, 이런 방식의 사업들의 확장과 증가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