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어쩔 수 없는 ‘시간’
시간은 만인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자원이다.
요새 금수저니 개천이니 하면서 자신의 출신 성분에 따라 지위가 달라지고 상위계층으로 올라가기 힘든 이 시대에, 재벌 2세나 사회 최하층 누군가의 아들에게나 완벽하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은 ‘시간’ 뿐이다.
과거 진시황이 중국을 천하통일하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던 그 시기에 진시황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은 불로초였다. 천하를 호령하던 그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무력했고 스스로 천하의 황제를 칭하던 그가 마지막에 필부들과 동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시간과 재능
시간에 대한 관념을 생각하다가 이어지는 생각은 재능과 인간의 용량이다. 재능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르겠으나 나는 재능을 어떤 것을 체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의 효율성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같은 시간을 쓰고도 금방 습득하고 익숙해지며 상대적으로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같은 수준이 된다.
만약 사람에게 무한의 시간이 주어지고 무슨 일이든 자신의 시간을 전부 온전히 소모하여 반복 숙달을 한다면 결국은 사람들의 능력치는 비슷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은 유한하고 기회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게 되고 그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나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는 매일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데 어떻게 공부를 잘하지?”
“매일매일 노력했는데도 쉬엄쉬엄 운동하는 저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전문적인 교육을 하나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죠?”
등등은, 남들보다 아주 적은 시간으로 남들보다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서 아주 적은 시간에도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시간의 유한함
범인이 천재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의 유한함 때문이다. ‘어떤 일의 결과값 = 재능 * 노력한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면 천재의 재능이 높을수록 범인이 그를 따라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한대가 된다. 따라서 어떤 결과값이 정해지는데 시간은 유한하기에 상수가 되며 재능이 변수가 된다.
따라서 ‘노력하는 범인이 천재를 이긴다’ 등과 같은 명제는 지나친 희망고문이다. 애초에 범인이 노력으로 천재를 이기려면 천재와 범인의 재능 차이가 시간으로 메울만한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런 재능 차이를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천재를 따라잡는 것은 천재와 재능 차이가 크지 않지만 무지막지하게 노력하는 준천재라고 생각한다.
현재 어느 분야든지 전세계 1등을 하는 스포츠선수나 예술가들은 바로 이 재능의 극에 달한 자들이 거의 일생을 모두 소비해서 만들어낸 결과값이다. 이들은 천재적인 재능에 자신이 쓸 수 있는 거의 최대한의 시간을 소비하여 그 작품들을 만들어냈기에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무리 능력이 좋고 재능이 있어도 이를 능가하는 것이 있으니.
이 모든 재능을 앞지르는 것은 시대의 부름과 같은 타이밍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상에서 ‘천운’ 또는 ‘쎄뽁’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타고나도 시대가 원하지 않는 재능은 재야에서 조용히 묻힐 뿐이며, 시대가 원할 때 자신의 재능이 발현된다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천재든 사업가든 사기꾼이든 뭐든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시대의 부름에 써먹을만한 준비가 되었는지 겸허하게 생각해보고 있으라. 일이 잘 안 풀린다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지 마라. 자신이 태어난 시대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니 네 탓이 아니다. ‘대 해적 시대’를 선언한 골 D. 로저가 없었다면 밀짚모자 루피도 흰수염도 그저 동네 양아치 망나니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비가 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어제 세차를 한 나의 무모함은 내 탓이 아니다. 시대가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