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은 알다시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다. 그런데 폭발하지 않고 핵폭탄이 떨어진 곳은 의외로 많다. 각종 사고로 비행기에 실린 핵폭탄이 떨어져 나간 경우를 말한다. 어떻게 그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나 싶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많다.
몇 년 전 연합통신은 미 공군에서 핵무기를 허술하게 관리한 취급 부주의 사례가 2001년 이후로만 237건에 달한다는 보도를 했다. 물론 이 중에는 경미한 정도의 부주의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심각한 것이었더라도 수만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문제가 된다.
특히 1950-60년대에는 ICBM, 즉 대륙간탄도탄에 대한 신뢰가 없거나 적을 때였기에 핵무기는 대부분 폭격기에 실렸다.
쿠바 위기 때 흐루시초프의 기가 꺾인 것은 케네디의 명령으로 B52가 핵무기를 싣고 이륙하는 장면에서였거니와, 냉전이 극에 달하던 시점, 선제 공격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소련 양 강대국은 핵무기를 실은 폭격기의 훈련을 일상화하고 있었고 무시로 핵 탑재 비행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각국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 사고가 어찌 없겠는가.
1956년 3월 B47 폭격기가 핵무기 2개 분량의 코어 (원자로 노심)을 싣고 가다가 지중해상에서 실종되고 그 기체는 물론 핵물질이 발견되지 않은 사실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지중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 어딘가에는 그때의 핵물질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셈. 그로부터 2년 뒤 이번에는 진짜 폭발의 위기가 찾아온다.
비행 중이던 폭격기가 전투기와 충돌해 버린 것. 폭격기에는 핵탄두가 실려 있었다. 폭격기 조종사는 핵폭탄이 폭발할 위협에 이르자 강물에 폭탄을 버려 버리는데 후일 아무리 뒤져도 이 핵폭탄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바닥 깊숙이 박혔는지 아니면 바다로 흘러갔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분실된 핵폭탄이 50개에 달한다는 독일 잡지 슈피겔의 보도를 믿는다면 실로 오싹해질 일이다.
설마 싶지만 이런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1961년 1월24일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는 B52의 연료 탱크에서 발생한 화재로 수소폭탄 두 개를 가까스로 사출시킨다. 하나는 나무에 걸려 찾아냈지만 하나는 깊이 50미터의 늪지대로 사라져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무에 걸린 수소폭탄을 조사해 보니 폭발을 막는 여섯 개의 안전장치 중 다섯 개가 고장나 있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안전장치가 폭탄의 폭발을 막지 않았다면 인류는 세 번째의 핵폭발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 일대를 사들여 엄중히 감시하고 있지만 늪지대에 빠져든 탄두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고란 사방에서 발생한다. 1965년 미국 항공모함에서 엘리베이터로 갑판에 올리려던 비행기가 핵탄두를 실은 채 태평양 바다에 빠졌다. 쇳덩이는 가라앉는 법, 비행기와 핵탄두는 무려 5천 미터에 가까운 해저로 침몰해 들어간다. 안전장치야 돼 있겠지만 그 수압을 이기지 못해 터지기라도 하면 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966년 1월 17일 이번엔 미국 국내가 아니며 바다 위도 아닌 다른 나라 땅에 핵탄두가 틀어박히는 일이 벌어졌다. 독재자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 상공에서 미군 공중급유기와 B52 폭격기 간에 문제가 불거졌다. 급유를 향해 접근하던 B52를 급유기의 노즐이 강타했고, 이 충격으로 폭격기는 추락했으며 급유기에도 불이 붙어 승무원 전원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였다.
파일럿들은 비행기와 함께 폭발하는 것보다는 바다에 떨어뜨리는 게 낫다고 판단, 폭탄 투하 버튼을 누른다.
파괴된 두 비행기의 파편이 260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에 산산이 흩어졌고 떨어진 핵폭탄은 4개였다. 탑재된 4기의 수소폭탄 중 2기의 폭탄이 지상에 충돌하면서, 본격적으로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비핵신관이 터져 화학적 폭발을 일으켰고, 20킬로그램 정도의 플루토늄을 누출시켰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이 때 오염된 토양이 30만 제곱 미터에 달했다. 미국이 수거한 방사능 오염토의 양은 1퍼센트도 안됐고,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그 지역에 휴양지가 들어선 뒤에도 방사능은 검출되고 있다.
마지막 1기는 지중해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유럽 사람들은 경악했고 이거 어쩔 거냐고 미국에게 드세게 항의했다. 그때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나선 희생양이 미국 대사와 스페인 관광청 장관. 그 둘은 아무리 지중해성 기후로 온난다우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겨울이었던 스페인의 지중해를 발가벗고 헤엄치며
“아무 문제 없어요.”
를 증명하는 쇼를 펼친 것이다.
이후 80일간에 걸쳐 수십 척의 미 해군 함정이 폭탄 찾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의 수중 잠수부의 활약을 그린 영화가 바로 <맨 오브 오너>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이유는, 냉전 시대 이래 핵탄두의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이 다름아닌 한반도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페인은 저 사고 이후 핵탄두를 실은 비행기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한국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한국 정부가 물렁해서인지 미국은 풀방구리(풀을 담는 작은 바구니) 쥐 드나들 듯 핵무기를 들였다 빼냈다 분주했다.
우리 나라 근처에서는 이런 사고들이 ‘기적적으로’ 없었을까. 아니면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걸까.
일간 ‘방어용 훈련’이라고 지칭되는, 핵항모와 잠수함이 가세한 군사 훈련이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방어용 훈련 따로 공격용 훈련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인데 말이다. 다만 그런 무서운 무기들이 우리 나라에서만은 그 안전도가 향상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것이 겁날 뿐이다.
잠수함만 해도 냉전 이래 미국과 소련 합쳐 9척의 원자력 잠수함이 50개의 탄두를 지닌 채 침몰하여 수천 미터 수백 미터 바다 아래서 녹슬어 가고 있는데.
원문 :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