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이 되는 해였을 것이다. 신정 연휴가 거하게 치러지던 즈음이라 1월 3일까지는 기본적으로 빨간 날이었다. 그 새해 1월 1일에 나는 KBS를 통해 두 명의 이름을 접하게 된다. 조지 오웰과 백남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동원한 생중계 비디오쇼를 펼치고 KBS는 이를 생중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뭔가 쌈박한 내용의 프로그램이리라 기대하고 tv를 틀었다가 20분도 못가서 잠들었지만 조지 오웰과 백남준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백남준은 왜 조지 오웰을 호출했던 것일까. 그 해가 1984년이었고 인류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정부, Big brother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 1984의 저자가 조지 오웰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뉴스에서 떠들기를 미국의 어느 언론이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와 오늘날의 북한이 똑같다고 보도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보도 이후, 반공도서 목록에 1984가 들었고 본의와는 관계없이 당시의 어린 눈으로 봐도 엉성하고 조잡한 번역이었던 1984를 억지로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었다.
빅 브라더는 김일성이고 항상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북한 동포들이며 어쩌고 하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조지 오웰도 동의했을 것이다. 30년 뒤 그 손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고 하면 자신의 상상력을 넘어섰다며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고.
그러나 반공 도서로 자신의 책이 선정됐다면 그 야윈 얼굴을 찡그리며 난감해 했을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평생 간직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조지 오웰 (본명은 아서 블레어)은 1903년 인도 벵갈 지방에서 태어났다. 대영제국의 절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죽었지만 아직 대영제국의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세계의 땅덩이의 상당 부분을 다스리고 있었다.
조지 오웰도 식민지 관리가 되는 교육을 받았지만 이 자유로운 영혼은 제국주의를 혐오했고 동시에 제국주의의 관리가 되는 것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지배 인민의 투쟁에 공감하고 동참하기엔 그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 갈등의 단면은 버마의 경찰관으로 잠깐 근무할 때 쓴 코끼리를 쏘다라는 짧은 글에 드러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제국에 대한 맹렬한 증오와, 내 일을 방해하려는 사악한 작은 짐승들에 대한 분노라는 두 감정 사이에 내가 꽉 끼어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마음 한 쪽에서는 굴종한 인민의 의지를 끝없이 탄압하는, 막강한 폭압정치인 영국 식민통치 때문에 번민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의 다른 한 구석은 중들의 배때기에 총검을 쑤셔박는 더 할 수 없이 기쁜 상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식민지 경찰을 때려치우고 그는 영국과 프랑스를 전전하며 밑바닥 생활을 한다. 그때 마주친 부랑자로 일용노동자, 창녀들, 불량배들, 양아치들 등등의 면면과 일거수일투족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작가 조지 오웰을 널리 알린 책의 재료가 된다.
박노자 교수가 ‘오웰의 사회주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한 이 책에서 오웰이 남긴 한 마디가 문득 기억에 맺힌다.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나는 바로 ‘그들’이 절대 그걸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이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능한 존재인 건 분명했다.”
뭐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지 않은가. 조지 오웰의 글쓰기는 빼어난 예술이라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의 들추기였고 감춰진 진실의 머리끄댕이를 잡는 일이었다.
“어려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의식, 곧 불의(不義)에 대한 의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자, 지금부터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폭로의 대상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적 뿐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사회가 펼치는 말도 안되는 모순들, 노동자를 위해 싸운다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잡한 내분도 마찬가지였다. 카탈로니아 찬가와 동물농장이 소중한 이유다.
몇 년 전 아이에게 아동용 세계 문학전집을 사 주면서 기함을 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정적을 몰아내고 개인 숭배를 펼치는 돼지 나폴레옹이야 당연히 스탈린이고 그에 저항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스노우볼이야 트로츠키를 빗댄 것이라 치고, 나머지 동물들은 무엇에 빗댄 것일까, 안 돌아가는 머리를 돌리던 밤이 여럿 있었건만, 딸내미는 그저 웃기는 동화로서 깔깔대고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재미(?)를 간파한 것은 역시 미국 현대사의 빅브라더, FBI 총수 에드거 후버였다. 그는 영국의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책은 ‘반공도서’로서 미국의 열성적인 지원 아래 세계적으로 번역됐고 결국 우리 집 책상에 아동문학전집의 하나로 꽂히게 됐다. 조지 오웰이 보면 뭐라고 말했을까? 아마 싱긋 웃다가 이랬을 것 같다.
“뭐 딴에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의 말년은 결핵과의 싸움과 1984의 집필로 점철된다.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고전이 됐고 결혼도 하게 되지만 병마는 그를 오래 살리지 않고 결혼 두 달 만에 그 생명을 앗아 간다. 1950년 1월 21일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조지 오웰이지만 2003년 사후 그 오랜 친구들을 53년만에 기절초풍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국 정부가 오웰이 영국 정부에 제출한 ‘친 소련 인물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그 리스트에는 ‘E.H 카’ 나 ‘찰리 채플린’ 등이 올라 있다. 오웰이 무슨 생각으로 그 명단을 적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에게 소련이란 자신의 꿈의 나라는커녕,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이 그 주요한 배경의 하나가 되었을 것 같다. 때로 공포는 이성을 이기는 법이니까.
원문 : 산하의 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