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최근 한글판으로 번역출간된 ‘마인크래프트 이야기’(옮긴이 이진복, 인간희극 출판)의 추천사입니다.
2009년 5월,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보스턴으로 이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우리 아들 준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닌텐도 게임을 좋아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 제일 빠진 게임은 다름 아닌 한국 게임회사,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였다.
준현이는 미국친구들과도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게임들을 함께 즐겼다. 공부는 안 하고 너무 게임만 열중하는 것 같아서 가끔 혼을 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런데 2011년 말쯤부터인가 갑자기 준현이가 좋아하는 게임이 바뀌었다. 얼핏 옆에서 보니 마치 80년대 8비트 게임을 방불케하는 유치한 그래픽의 게임이었다. 가상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주로 땅을 파고 벽돌을 쌓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게임 같았다. 저런게 재미있을까 싶었다. 조금 하다가 싫증 내고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준현이는 수많은 학교친구들과 함께 마인크래프트를 열광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 준현이의 마인크래프트 사랑은 식기는커녕 더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마인크래프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인크래프트는 중독성은 있어보였지만 게임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도 있어 보였다. 온라인 세상 속에서 괴물들과 싸우며 일종의 ‘전쟁’을 하는 폭력적인 게임들에 비해 마인크래프트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협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게임이었다.
나는 수백, 수천 억의 예산을 들여 만든 실사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이런 엉성한 그래픽의 게임에 아이들이 열광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이런 게임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내 궁금증을 <마인크래프트 이야기>가 풀어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 접한 마인크래프트 탄생비화는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유명대학 출신의 천재가 유명투자자인 수퍼엔젤이나 유명벤처캐피털에서 큰 투자를 받아서 만든 초대작게임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등의 전형적인 실리콘밸리식 창업신화는 여기에 없다.
대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언젠가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던 한 평범한 스웨덴 청년의 성공스토리가 있다. 12살 때 아버지는 약물중독으로 어머니와 이혼했으며, 여동생까지도 약물중독에 빠져 가출하는 등의 불행을 겪은 이 내성적인 성격의 ‘게임 오타쿠’ 청년은 한국에서라면 취직이 안돼 백수신세를 면치 못했거나 아니면 평범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치킨집 사장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르쿠스 ‘노치’ 페르손은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게임회사를 다니면서도 가욋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인디게임을 즐기면서 영감을 얻었고, 개인적으로 게임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해 2009년 마인크래프트를 탄생시켰다.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이 새로운 게임은 등장하자마자 전 세계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6불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통해 판매가 이뤄지면서 그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됐다. 너무 급속히 돈이 늘어나는 것 때문에 범죄에 악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페이팔이 그의 계정을 한때 차단했을 정도였다.
북유럽의 작은 복지강국인 스웨덴에서 나온 인디게임 마인크래프트. 이 게임의 성공스토리는 역시 게임강국이지만 게임중독법으로 많은 논쟁을 빚고 있으며, 또 스티브 잡스 같은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하자고 하지만 현실은 젊은이들이 스펙쌓기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들여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입사한 한국의 인재들은 권위적인 조직문화와 야근에 치여 막상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전락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는 글로벌한 성공을 꿈꾸는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도 주는 교훈이 있다. 마르쿠스는 기업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마케팅에는 일전 한푼 쓰지 않았다.
게다가 공짜가 아니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당한 가격을 매겼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서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충성스러운 고객들과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다. 그것이 마인크래프트가 지금 연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물론이다.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마인크래프트의 성공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준현이는 용돈을 모아서 마인크래프트 서버까지 운영했을 정도로 마인크래프트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언젠가는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고 자바프로그래밍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마르쿠스처럼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좋은 영감을 받기를 기대한다. 게임강국 한국에서도 마인크래프트처럼 전 세계를 호령하는 인디게임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사족 . 마인크래프트가 어떤 게임인가에 대해서는 <하루하루가 주말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웹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안보신 분은 한번 보시길.
출처: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