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층마다 커다란 부엌이 있고 대형 냉장고가 여러 대 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는 매일 배달되는 신선한 음식 재료가 가득 채워져 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
일류 요리사들이 상주해서 만든 고급 요리를 공짜로 먹게 해주는 실리콘밸리 기업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주방과 식자재를 마련해두고 직원들이 마음껏 요리를 해먹게 하는 회사는 좀 독특하다. 세계 최대의 레시피(요리법) 사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쿡패드라는 회사 이야기다. 최근 도쿄에 있는 이 회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쿡패드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노 아키미쓰라는 사람이 1997년 창업했다. 인터넷 이용자가 자신의 요리법을 쿡패드 사이트에 올려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때부터 오로지 레시피 한길을 걷기 시작했다. 직원이 몇 명밖에 안 될 때부터 사무실 안에 작은 주방을 만들고 요리를 하는 문화가 그때부터 형성됐다.
17년 뒤 쿡패드는 레시피라는 콘텐츠 하나로 세계 최대 사이트로 성장했다. 쿡패드에는 현재 사용자들이 올린 레시피가 179만 개 있다. 지난 4월의 한 달 이용자 수는 약 4,400만 명이다. 일본 인구가 1억 2,000만 명이라고 하면 일본 성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쓰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용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여성들의 쿡패드사용율은 놀라울 정도다. 그중 20-40대 여성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며 20-30대가 75%가량 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본의 젊은 여성 대부분이 쿡패드를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후 5년간 매출이 거의 없었던 이 회사는 지금 연매출 650억 원 정도를 올리고 있다. 마진도 아주 좋아서 매출의 절반 이상이 영업 이익이다. 쿡패드 이시와타리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사용자가 올려준 레시피를 쓰기 때문에 따로 콘텐츠 구입 혹은 생산비용이 들지 않아서 영업이윤이 높다”고 설명했다. 2009년에 기업공개(IPO)를 한 쿡패드는 지난해 매출이 30% 정도 성장하며 1조 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탄탄한 사업구조를 갖춘 쿡패드
놀라운 것은 쿡패드가 인터넷 회사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건전한 사업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이다. 전체 매출 중 60% 정도가 프리미엄 사용자가 매달 내는 회비다. 무료 회원보다 좀 더 편리하게 쿡패드를 쓰기 위해 매달 280엔(약 3,000원)을 내는 프리미엄 회원이 130만 명이 넘는다. 나머지 매출 40%의 대부분은 광고 수입이다. 가정의 요리를 책임지는 여성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식품회사나 슈퍼마켓 같은 곳이 주요 고객이다.
이런 황금비율의 매출 비중 덕분에 광고시장이 불황이어도 쿡패드는 타격을 덜 받는다. (어찌보면 신문구독료와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신문사매출구조와 비슷하다. 사실 구독자는 나날이 줄고 지나치게 광고매출비중이 높은 요즘 신문사들이야말로 쿡패드 같은 이런 건전한 매출구조를 갖기를 갈망할 것이다.)
그럼 프리미엄 회원에게는 어떤 혜택이 있을까. 많은 것이 있지만 일반 회원에 비해 프리미엄 회원은 좋은 레시피를 빨리 찾고 저장해둘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비빔밥(ビビンバ)’을 해먹고 싶어서 레시피를 검색한다고 하자. 쿡패드에 이미 179만 개의 레시피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아무 요리나 검색해도 수천 개 이상의 레시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냥 검색하면 그냥 최신 레시피가 순서대로 나열되는 반면 프리미엄유저는 ‘인기순’ 레시피 랭킹을 검색할 수 있다. 즉 좋은 레시피를 빨리 찾아낼 수 있는 것. 이 기능을 얻기 위해서 일본여성들은 기꺼이 월 3,000원을 지불하고 프리미엄유저가 된다. 이시와타리 COO는 “돈 주고 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쿡패드, 스마트폰에도 발빠르게 적응하다
최근 쿡패드의 급속한 성장은 스마트폰 덕분이다. 원래 데스크톱 PC 기반 사이트로 출발한 쿡패드는 스마트폰 시대에도 잘 대응했다. 데스크탑 이용자는 천천히 늘고 있는 반면 스마트폰을 통한 이용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 중이다. 월간 사용자 4,400만 명 중 스마트폰을 통한 접속이 60%다.
스마트폰을 통해 주방에서 레시피를 찾아보기가 더 편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요리하면서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으로 쉽게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쿡패드는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로지 한 우물만 판 쿡패드에 내로라하는 야후재팬이나 라쿠텐 같은 일본의 포털·쇼핑몰 사이트도 맥을 못 춘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레시피 사이트는 무엇입니까”라는 최근 설문조사에 일본인 90%가 쿡패드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일본 시장을 석권한 쿡패드는 이제 세계 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움직인다. 올해 스페인의 레시피 사이트를 인수하고 스페인어권 진출을 모색 중이다. 쿡패드는 조만간 전 세계에서 월간 사용자 1억 명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도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쿡패드라는 회사의 존재는 어떤 작은 분야라도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레시피에 집중하는 쿡패드의 사내문화는 명함에서도 엿볼 수 있다. 쿡패드의 모든 직원은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인쇄한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앞면에는 이름과 함께 요리의 사진이, 뒷면에는 빼곡하게 레시피가 인쇄되어 있다.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요리를 화두로 삼아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2009년 말 창업자인 사노 씨와 한 컨퍼런스에서 만나서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요리를 만들고 그 레시피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쿡패드가 이렇게 큰 이익도 내고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하는 회사가 될지는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값어치 있는 정보라면 기꺼이 돈을 내고 쓰는 일본의 사용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문 :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