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아 씨발 난 아니라고, 빡쳐서 쓰는 일기
이전 글(한국 게임사상 대표적인 표절 관련 소송들 정리)을 정리하고 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모바일 게임들에서 생긴 카피 게임들이 PC나 온라인 게임들에서 있는 카피 게임들보다 더 많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꼽아봐도 게임의 룰을 카피하는 것에서부터 게임의 룩앤필(look’n feel)을 카피하는 것까지, 훨씬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게임을 카피하는 것일까.
흔한 사례: 주변에 흔한 모바일 게임 디자이너(기획자)들이 게임 아이디어를 고민한다며 고전 게임들을 뒤지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는 옛 게임들을 해보고 ‘이걸 발전시켜서 이런 식의 게임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심한 경우는 룰은 그대로 가져오고 아트만 새로 ‘깔쌈하게’ 입혀서 기획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좀 더 심한 사례: 한 MMORPG의 팀장급 게임 디자이너에 대해 들은 이야기인데, 게임을 설계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WOW를 띄우고는 그 내용을 그대로 문서화하고는 했다고 한다. 개발중 실무자들이 상세 질문을 하면 “WOW에 있는 그대로”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는 정말 놀랐다. 그런데 그 게임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는 것은 반전.
게임 디자인이라는 일 자체는, 여러 글에서 언급했지만, 없는 내용을 새로 만드는 일은 아니다. 게임 디자인은 이제 더 이상 ‘창조’에 해당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재창조’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하는게 맞다. 그래서 나는 게임 디자인이라는 일을 항상 ‘요리’에 비유하고는 한다. 널려있는 다양한 게임 요소들을 요리 재료라고 부르고, 그 재료들을 잘 버무려서 새로운 맛을 만드는 작업 정도랄까. 예를 들면 내가 평소 좋아하는 김치에 스팸을 넣어보면 어떨까, 뭐 이런 식의 발상이기 때문이다.
난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플랫폼을 거의 가리지 않고 많이 하는데(아 콘솔은 좀 가린다, 특유의 컨트롤 방식을 별로 안좋아한다), 게임들을 하면서 해당 게임의 느낌들을 이 블로그나 여기저기에 기록으로 남겨놓고는 한다. 좋은 UI라던가 기능에 대해서는 스크린샷도 잡고. 그렇게 모은 나름의 자료가 꽤 되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이 자료들은 나에게 일종의 흥미로운 ‘재료’다. 잘 만든 게임의 기능들을 가져와서 (물론 완전 망한 게임이라도 흥미롭거나 괜찮은 요소들은 있다) 다른 재료들과 섞어보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전국무사전>이라는 찬바라 액션 CCG 같은 게임이나 <용자타이쿤>이라는 용자물 패러디 게임 같은 것들을 만들기도 했고 <2World>라는 스마트폰 GPS를 이용한 캐주얼 RPG 게임으로 창업을 하기도 했더랬다. 난 단언컨대 카피를 해본적이 없다. ‘내가 만들면 이것보단 낫겠다’는 자의식이 강한 인간이라, 남이 만든 걸 그냥 보고 있지를 못한다. 갈아 엎으면 엎었지.
그런데 이번 ‘차차차 논란’에서, 난 여전히 ‘표절은 아니다, 양심 버리고 카피한 건 맞다’의 입장이고,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대중을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솔직한 내 심정이라면 사실 나도 ‘왜들 그렇게 카피를 해대는걸까’ 짜증도 나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먼저 스마트폰 게임 시장(모바일 게임 시장도 비슷했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게임 시장은 IMF 이후로 급격한 붐을 겪었다. 워낙 많은 업체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각 회사의 경영자들이 모두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거나 ‘게임 만드는데 인생을 걸겠다’고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장님들은 ‘일단 돈 되는 걸 만들고 나서 창작이든 뭐든 하자’ ‘회사가 유지는 돼야 뭘 만들지’하는 분들도 계셨고, 또 간혹 어떤 사장님들은 ‘창작이 뭐가 중요해, 카피해서 돈 쭉 빨아먹고 업계 뜰거야’라는 분들도 계셨다. 뭐 더러는 저런 어떤 쪽이라도 명확한 입장도 없는 분들도 계셨고.
결국 시장에는 선의를 가진 회사와 악의(라고 하자)를 가진 회사가 경쟁하는 상황이 된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실은, 선의를 가진 회사들도 돈을 잘 벌기도 했지만, 악의로 만든 게임들도 대박을 치고 돈을 잘 벌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모바일 게임으로 유명한 게임들의 카피가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 대박을 내고, 그 게임들이 상을 받고, 사람들이 ‘되게 재밌다, 넌 이런거 못만드냐’며 내게 들이밀 때 “야 이건 일본 게임 카피야”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재밌다는데. 그리고 그 회사들이 그 돈으로 큰 회사가 되어서는 유명해지도 했는데.
손노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자존심을 지키며 십 년을 넘게 사업을 했지만 매달 직원들 월급날이 돌아올 때마다 피가 마르는 심정, 내가 직접 경영자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이해한다. 비유하면 쪽팔리지만 나도 빚쟁이한테 매달 그렇게 시달려보기도 했고, 뭐 여전히 매달 카드값을 보면서 어떻게 막아야되나 막막하기도 한 그 심정의 백배, 천배 쯤 되겠다고 생각한다. 직원들한테도 미안하지만 그 직원 가족들은 또 어떨까 책임감을 생각하면 천배로 될까.
한국 시장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대박이 났다’와 동치다. 망한 게임에는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 얼마나 독창적이냐는 평가를 받을 리뷰 한 조각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여전히 손가락 빨며 원룸에서 사업하는 내 친구는 앱스토어 리뷰 몇 줄에 자위하면서 계속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적다.
유명 게임을 카피하는 건 아주 쉬운 선택이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했고 게임의 재미도 검증이 되어 있는데다 그림만 ‘깔쌈’하면 대중에게 쉽게 먹힌다. 특히 앱스토어처럼 치열한 전쟁터에서 스크린샷만 가지고 다운로드를 하는 대다수의 고객들에게 게임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스크린샷만 일단 먹어주면 일정 다운로드는 보장되기 때문이다.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쉬운 선택은 ‘유행하는 장르’겠고, 이보다는 좀 더 덜하지만 또 쉬운 선택은 ‘유명 IP나 캐릭터를 계약하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에 연예인 고스톱이 유행한 이유가 그래서였다.
그런데 이런 치열한 전쟁터 – 참고로 옛 휴대폰 시절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게임을 출시해서 본전을 낼 확률은 약 30%, 대박을 치는 확률은 5%가 안됐는데 스마트폰의 이 무한경쟁 앱스토어에서는 대충 10%, 1% 정도라고 보면 된다 – 에서 창업 붐까지 일어났으니 경쟁이 얼마나 더 심해졌겠나. 국내 시장에서만 싸우던 시절에도 그렇게 치열했는데, 이젠 전세계와 싸워야 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카카오톡이 게임 퍼블리시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선 노하우의 승리라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비주얼드를 카피한 게임이 하루 매출이 십억 씩 난다하고, 혼자 만들었다는 게임이 그보다 매출이 더 난다고 난리였다(물론 나중엔 혼자가 아니었다고 확인됐지만). 이 시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대박이 난다고 줄을 선 업체가 백 개가 넘는다는 기사까지 뜨면서(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됐다),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졌을게다.
이해한다, 그 ‘눈 딱 감고 한 번만’하는 심정이 들었을 상황.
게임 개발은 – 여기저기서 ‘대박만 나면 엄청나게 터진다’는 소문이 있지만, 솔직히 개발자들이 부자됐다는 건 십여 명 남짓이다 – 배고픈 직업이고, 월급쟁이는 어디나 다 똑같다. ‘이 게임 보고 똑같이 만들라’는 윗선의 지시가 내려왔을 때, 자존심이 아무리 강하대도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강경하게 개긴다는게 ‘회사를 나간다’는 선택 뿐이다. 집에서 울고있는 애가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선택은 더 현실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좁게 보면 개발자의 양심 문제지만, 그보다 앞에 사업자의 선택 문제이고, 또 그보다 앞에 시장 환경 자체의 문제다. 쉽게 만든 게임이 그렇게 성공하는 걸 보고, 또 기업 사기로 횡령으로 또 하청기업 착취나 소상인 말려 죽이면서 어떻게든 돈만 벌면 인정받는 상황을 보고, 말그대로 밥을 굶으면서까지 자존심을 부여잡고 개발자로 살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야이 개새끼들아 너희들마저 그러면 어쩌냐”고 욕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어쨌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성공의 가치가 ‘대박난 게임’이고 ‘잘 팔린 게임’이며, 잘나가는 기업 명함 들고 다니면 있어보이는 이 상황들이 바뀌기 전까지는 또 계속 카피 게임들이 나올거다. 특히 카카오톡 게임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만들어도 매출은 수십 억을 찍을 거고, 그렇더래도 성공한 사업가라고 개발자라고 언론에서 인터뷰들을 할 것이며, 그 돈으로 좋은 집 좋은 차 사서 행복하게 살거다.
그런데, 그러지 마라. 너희는 (씨발) 그러고 업계를 떠날지 몰라도, 난 죽기 전까지는 게임 만들고 살아야된다. 넌 그 열매 따먹고 째겠지만, 난 너희가 만든 똥 밭에서 계속 굴러야 된다 말이다.
제발, 같이 살자.
이 글은 김종득님의 그들은 왜 베끼는 걸까? 를 재게재한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