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통공사가 지하철 역명에 사기업명을 넣어 특혜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병행표기 방식(주역명 뒤에 부역명을 괄호로 표기)이 아니다. 기존 역명인 ‘문전역’을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으로 통째로 바꾼 것이다.
부산지하철 101개 역명 중 사기업명이 주역명으로 표기된 건 ‘부산은행’ 뿐이다. 게다가 국제금융센터에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많은 기관이 입주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특혜가 분명하다.
수익 포기… 특혜가 분명
얼핏 들으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방정부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에게 ‘작은 배려’를 한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지자체와 지역기업의 관행적 유착의 흔적이 곳곳에서 관찰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가 문전역 부근에 건설되자 주변 주민들은 ‘문현금융단지역’으로 역명을 바꿔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는 의견 수렴과정에서 등장하지도 않았던 ‘부산은행’을 역명에 포함시켰다.
‘국제금융센터역(부산은행)’으로 표기할 경우 부산교통공사가 ‘병행표기 역명 유상판매’ 규정에 의해 연간 4000~5000만원에 달하는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주역명으로 결정하면서 이 수익을 포기한 것이다.
부산시는 역명 심의과정에 적극 개입하면서 역명에 부산은행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심의의원들에게 적극 피력했다. 애당초 부산은행역명을 들고 나온 것도 부산시였다.
심의위원 2/3가 부산교통공사 소속이거나 부산시장과 공사 사장이 추천한 인물들이다. 부산시의 뜻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현 부산교통공사 박종흠 사장은 지난해 10월 서 시장에 의해 임명된 사람이다.
유착이 낳은 ‘특혜 불감증’?
이로써 부산은행은 연간 수천 만 원 비용 지불 없이 공짜로 역명을 사용하게 됐다. ‘부산은행역’이라는 역명이 수십 년간 유지될 경우 부산은행은 수십 억 원의 특혜를 보게 된다.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만성적 적자에 허덕이는 부산교통공사다. 한 푼이 아쉬울 텐데 왜 수십 억 원의 수익을 포기한 걸까.
서병수 부산시장과 성세환 BS금융 회장(부산은행장)의 ‘밀월관계’는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부터 시작된다.
2014년 6월 17일 서병수 시장 당선자는 일자리 공약을 이행하겠다며 ‘좋은기업유치단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당선자로서 첫 행보였다. 당선자를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된 준비위에 맨 처음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BS금융 성세환 회장이다.
서 당선자가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BS금융은 부산시에 ‘선물보따리’를 푼다. 7월 초 성 회장은 서 시장에게 ‘사회취약계층 여름나기’에 써달라며 선풍기 5300대를 기증했다.
그러자 서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BS그룹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올렸고, 성 회장은 이에 화답하듯 7월 15일자 국제신문에
“신임시장과 함께 우리 모두의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는 칼럼을 써 화답한다.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맞았다.
당선자 때부터 잦은 접촉
BS금융의 ‘선행’은 계속된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성 회장은 취약계층을 위해 써달라며 재래시장 상품권 3억 원 어치를 서 시장에게 건넸다. BS금융의 ‘선행’에 주목하던 그때 부산시가 ‘신임 시장 첫 해외순방’ 계획을 발표한다. 소규모 사절단을 꾸려 동남아 3개국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이 ‘소규모 사절단’에 성 회장 이름이 일찌감치 올랐다.
두 사람의 접촉은 빈번했다. 시장 취임 후 동남아 순방까지 두 달 남짓 기간 동안 가진 공식적 접촉만 5~7회 이상. 비공식 접촉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동남아 비행기를 타기 삼일 전에도 두 사람은 또 만났다. 명분은 ‘기업유치 협력지원 협약’이었다.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동남아 순방의 일정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온다. 성 회장의 일정에 서 시장이 끼어들고, 서 시장의 일정에 성 회장이 참석했다.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일정을 무리해서 하나로 합쳐 놓은 건 아닐까.
억지로 꿰맞춘 듯한 동남아 일정
첫 행선지인 미얀마 양곤에서는 BS캐피탈 미얀마 법인 개소식이 열렸다. 성 회장의 일정이다. 서 시장이 구태여 참석할 필요는 없다. 성 회장의 무대에 서 시장이 출연하는 게 어색했는지 그날 저녁 일정에 부산시립무용단이 출연하는 전통문화 공연 순서를 만들어 넣었다.
두 번째 행선지인 태국 방콕. 부산 지역 주요관광지와 축제를 홍보하고 한류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의료관광 설명회를 가졌다. 이번엔 서 시장의 일정이다. BS금융 회장이 참석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서 시장의 일정에 성 회장이 끼어든 게 분명하다.
세 번째 행선지는 캄보디아 프놈펜. 부산시가 지원하는 보건소 개소식이 거행됐고, 캄보디아 해군을 방문해 소방장비 2대를 기증하는 행사를 가졌다. 캄보디아 정부는 감사의 뜻으로 서 시장에게 왕실 훈장을 수여했다. 이건 서 시장의 일정이다. BS 회장은 들러리였다.
각기 다른 일정을 꿰어 맞춰 하나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어색한 일정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 하려 했던 이유가 뭘까. 두 사람의 동남아 여행 결과물 중 하나가 ‘부산은행역’이라는 특혜일 수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귀국 후에도 성 회장의 ‘선물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10월에는 7개 시·군에 푸드뱅크 차량 가 1대씩을 기증하고 서 시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11월 4일에도 만났다. 국제금융센터 옆 부산은행 신사옥에서 가진 준공식에서다. 준공식을 가진 다음 날 부산교통공사는 ‘문전역’을 ‘부산은행역’으로 바꾸는 개명안을 통과시킨다.
‘눈속임 선행’ 사실이라면 ‘작은 특혜’뿐만 아닐 터
시를 배경화면으로 삼아 각종 ‘선행’을 무대에 올리면 지역기업으로서 이미지 제고 효과는 확실할 테고 지역은행으로서 입지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선행’으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뒤로는 특혜를 받아 선행 비용을 충당하는 식이라면 BS금융은 꿩 먹고 알 먹고다.
내 인기, 내 지지표만 챙길 수 있다면 어떤 눈속임도 상관없다는 선출직 단체장의 그릇된 판단이 각종 비리를 양산하고 지방자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지방정부와 지역기업이 뜻을 같이하고 협력하는 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떳떳해야 한다. 어떠한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BS금융의 ‘선행’에 진정성이 담보되려면 시와의 관계가 투명해야 한다. ‘부산은행’ 역명은 누가 봐도 특혜가 분명하다. ‘눈속임 선행’으로 얻은 특혜라는 비난을 받거나, 또 다른 특혜가 있을 거라는 의혹을 사기 십상이다.
원문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