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진 대표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다. 왕성한 탐구력으로 공부하여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해외 비즈니스 동향 관련 기사 20여 개를 읽는 것도 6년째. 일주일에 못해도 책 한 권씩은 읽는단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만남을 청한 필자에게 거꾸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가 주변의 창업가 친구들 덕분에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최환진 대표는 어느 연구소에서 골똘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부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지만, 누적된 사례가 있는 비즈니스의 경우 위험을 피하는 길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2008년 국내 최초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네오플라이(NEOPLY)’를 만들면서 창업가를 돕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현재 스타트업 생애 사이클을 통틀어 도울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어 대한민국 스타트업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그를 대치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창업하는 사람은 바뀌어도 항상 같은 질문, 같은 장애물
Q. ‘네오플라이’, 그 후.
네오플라이를 운영하며 스타트업을 육성할 때 아쉬웠던 점은 반복되는 질문이 많더라는 거였다. 사람이 바꿔도 항상 같은 질문과 같은 장애물에 부딪혔다. 마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40시간의 비즈니스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창업 교육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얻었다. 그때가 2011년 여름이었다.
당시 몇몇 대학에서 운영된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교별 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비즈니스 개발 교육을 진행했는데, 교육 과정동안 학생들의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과 실행에 대한 의지, 그리고 결과물들이 처음과 달리 크게 바뀌는 모습을 보고서 ‘틀을 잘 잡아주면 잘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해 12월, 이그나잇스파크(IgniteSpark)를 설립하였다. 기업가정신의 발화점이 되는 곳이길 바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처음에는 40대의 불안함도 있었거니와 혼자 일을 한다는 게 힘들었다. 회계 처리부터 시작해서 영업도 직접 내 발로 뛰어야 하고, 제안서, 기획서, 강의 등 혼자 소화하려니 시간이 빠듯했다. 6개월간은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고생했다.
한편으로는 ‘중간에 일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며 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2년이 지난 지금, 일할 때는 일 하고 쉴 때에는 다른 일을 하면 되더라. ‘제로데이(Zero Day)’도 만들었다. 일정 시점을 정해 미뤄두었던 일을 모두 마친 다음 날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털어낸다고 할까. ‘심리적 해우소’에 다녀오는 날이다.
따로 또 같이.. 스타트업들간의 전략적 연계
Q. 교육, 컨설팅, 투자까지.. 그때보다 일이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1인 회사이다.
프로젝트 기획은 오래 하지만 실행은 2~3일 이내에 완료하는 편이다. 혼자 뛰고 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나눔을 통해 상부상조하면서 끈끈한 정이 오가는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낱낱이 강하고 낱낱이 유연하게 연결된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20여 명의 멘토진을 꾸릴 수 있고, 10여 개의 회사를 묶을 수도 있다. 작은 기업들이 살아남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랄까.
게릴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스타트업들간의 전략적 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내는 한편, 기능별로 분리되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가 분산된다. 한 조직이 모든 기능을 갖고 있으면 자칫 무너질 수가 있다.
생존을 위한 시스템. 오랫동안 창업가들을 지원할 수 있게끔 하는 나름의 방법 중 하나이다.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곳과 연결되어 전파하기도 한다.
교육, 미디어, 투자, 공간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을 모아 연결
Q. 유연하게 연결된 작은 회사들이라..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멘토링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그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미디어가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 재원이 필요하므로 투자가 빠져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초기 창업교육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용성이 떨어지므로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시뮬레이션 기회를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교육, 미디어, 투자, 공간. 이 4가지 분야를 각기 전문으로 하는 작은 회사들을 키워 팀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과 멘토링은 이그나잇스파크가, 미디어는 플래텀(Platum)이, 투자는 오랜 지인들과, 공간은 하이브아레나(HIVE ARENA)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 4가지 분야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올해 하이브아레나 개관을 마지막으로 완성된 셈이다.
이제 남은 미션은 2가지이다. 첫째는 이 ‘파이프라인’에 집어넣을 창업 팀을 찾는 것, 둘째는 ‘파이프라인’ 앞에 ‘깔때기’를 장착하는 것이다. 그 ‘깔때기’가 바로 얼마 전에 기획을 완성한 씨드스파크(SeedSpark)의 ‘작은창업학교’라는 프로그램이다.
3~4개 팀 정도의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자기주도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장기간에 걸쳐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두 번째 미션 수행을 통해 첫 번째 미션은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좋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길러내는 보람
Q. 큰 그림을 그려 창업가를 돕고자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이그나잇스파크를 창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창업가를 돕는 일이 내 소명이자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마음을 주다 보면 관심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열심히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꽃이 피어나듯 의미 있는 성과가 만들어지는 법, 그래서 내가 지금 ‘파이프라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나 싶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고, 내게 충분한 보상이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교육자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비슷하다. 좋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길러내는 보람, 특히 교육 후에 관점의 변화를 일으켜 결단을 내리는 창업가를 볼 때 뿌듯하다. 새로운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의 내면이 바뀔 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창업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건,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소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3~4가지는 확실하게 파악하고 시작함으로써 에러를 최소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창업가가 기본적으로 꼭 알아두어야 할 A, B, C를 모른 채 자신만의 확신으로 창업하는 걸 수 없는 창업가들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시간이 없다는 생각만을 한다. ‘기본’을 하찮게 생각한 채 100m쯤 달려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돌아와 버리는 것이야말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아닌가. 현재에서 미래의 기회를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그러기에는 위험하다. 벼락 맞을 확률로 성공하는 것보다는 지속 가능하게 자신의 다음 기회를 꾸준히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목표가 있다. 스타트업이 회사 내부에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어 그 시스템으로 계속 가게 하는 것이다. 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조직은 시스템을 통해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시스템이다.
콘텐츠의 공백과 시대 변화의 단절을 겪고 있는 지방에 내려가 시스템 구축
Q. 앞으로의 계획 및 목표에 관해.
우리도 작지만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지방으로 확산하여, 지방에서도 많은 발화점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고 또한, 해내고 싶다.
많은 인프라와 교육 설비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되다 보니 지방은 지방 나름대로 콘텐츠의 공백과 시대 변화의 단절을 겪고 있다. 이제는 창업과 관련된 기회를 지방에서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이브아레나를 창업가들이 마음껏 실행해보고 실패해볼 수 있는 ‘실험실’이라고 본다면, 내년부터 몇몇 지역에서 이런 부분에 관심 있는 분들과 협력하여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지역 맞춤형 콘텐츠를 배포할 생각이다.
특히, 해당 지역에 계신 분들이 직접 공간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게끔 하여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자연스럽게 발화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방에 있는 몇몇 진흥원과 협회들을 조금씩 알아보고 있다. 내년은 ‘공감의 끈’을 만드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소규모 교육 행사를 통해 지역의 반응을 보고 무엇에 실질적인 수요가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다. 특히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창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실무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다. 내년부터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시작해서 구조가 안착하기까지는 3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창업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선 안 돼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트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만 즐거워하고 바쁜 것 같은데, 일반 대중에게까지 기업가정신이 확산될 수 있도록 외연이 넓어져야 한다. 아직도 일반인에게 창업을 설명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 걸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 시대가 오면 지금보다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이 훨씬 늘어날 것이고, 창업을 돕는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원문 : 앱센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