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소도미 법(Sodomy law)’이라는 것이 있었다.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제도이다. 2003년 연방 대법원에서는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을 통해 ‘소도미 법’이 위헌이란 판결을 내린다. 이 사건을 통해 13개 주에서 시행 중이던 ‘소도미 법’은 자동으로 위헌 결정을 받고 효력을 잃게 되었다.
2003년 미국에선 종적을 감춘 이 법이 한국에선 여전히 발효 중이다. ‘군형법 92조 6항’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군형법 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0년 국가 인권 위원회와 2012년 UN 국가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는 이 조항이 소수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이 조항은 여전히 남아있다.
2013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김광진, 박원석, 은수미, 장하나, 김재연, 이상규, 김제남 의원 등이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한 폐지 입법안을 발의했다. 인권 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 세력은 보편적 차별금지법 때처럼 또다시 ‘안보’와 ‘질서’를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폐지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는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되었다. 의원들을 향해서는 군 기강을 망가뜨려 안보를 무너뜨리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며 ‘종북 게이’란 기묘한 어휘까지 만들어 비난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이런 맹렬한 반대 움직임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소도미 법’ 위헌결정이 내려졌을 때도, 동성애자 군 복무를 금지하는 ‘Don’t Ask Don’t Tell’ 조항이 폐지될 때도, 증오 범죄 방지법이 연방법으로 제정될 때도, 각 주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될 때도, 남녀간의 결합 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결혼 보호법(DOMA)이 폐지 될 때도 그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친동생을 자처하는 수구 세력들의 모습처럼, 군형법 92조 6항 폐지에 광적으로 반대하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모습은 미국 보수 개신교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군형법 92조 6항이 폐지되면, 즉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군대가 되면 기강이 무너지고 전력이 약화되고 안보가 위험해질까? 안보 이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미군’이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한미동맹’ ‘주한미군 주둔’. 그렇다면 소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군은 어떨까?
미국에서도 통일 군사 법전(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UCMJ)에서 군인들의 항문성교를 처벌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선 앞서 언급한대로 2003년 연방 대법원에서 ‘소도미 법’이 위헌으로 판결 남에 따라 군내에서 사실상 동성 간 성 관계에 대한 처벌은 중단되었다. 통일 군사 법전에 규정된 소도미 조항 제125조는 2013년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서 삭제되었다.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2011년 ‘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폐지했고, 전통적 결혼보호법(DOMA)가 위헌판결이 난 이후에는 미 국방성과 각 군부대의 동성 부부에게도 이성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함에 있어 선두에 섰다. 미국 육군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선 동성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미 행정부와 미군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국방력이 약화되었거나 미국 안보가 위험에 처했다는 합리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동성애가 정말 안보를 위협하고 나라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것이라면 한국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앞장서는 미군을 타도하고, 오바마 행정부를 타도하고, 미국 여당인 민주당을 규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군형법 92조 6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문: 홍신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