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골턴은 182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찰스 다윈C.Darwin의 사촌이기도 하다. 어떤면에서 골턴은 다윈보다도 더 호기심이 충만했던 만물학자였다. 그는 탐험가로서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최초의 정밀 지도를 제작해서 영국지리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한 지리학자였으며, 영국각지의 기압과 날씨를 동시에 측정해 등고선을 사용한 세계최초의 기상도를 만들었고, 고기압과 저기압이 어떻게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세계 최초의 기상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람들마다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해서 런던 경시청으로 하여금 세계 최초로 ‘지문 수사기법’을 도입하게 한 법의학자이기도 했다. 우생학 신봉자로서 부모의 지능이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동시에 그 유전이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사실, 즉 멍청한 부모의 자식은 멍청하긴 하지만 부모만큼 멍청이는 아니며 똑똑한 부모의 자식도 똑똑하긴 하지만 부모만큼 똑똑하지는 못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평균회귀 현상은 현대통계학의 기본원리이니 그는 통계학의 기초도 닦은 셈이다. 심리학 분야에서 그의 또 다른 기여는 인간의 기억이 청년기를 중심으로 저장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였다. 원래 골턴은 자신의 기억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고 싶어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 절차는 이렇다.
트럼프 카드 사이즈의 종이에 단어를 하나씩 적은 단어카드를 백수십장 만들어놓고 이 카드들을 마구 섞은 다음 그 중 하나를 무작위로 뽑는다. 뽑은 카드에 적힌 단어를 보고 기억나는 것들을 전부 쓴다. 실험 초반에는 단어 하나를 보면 수백가지 기억이 떠오르는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실험을 반복할수록 감탄은 실망으로 바뀌어갔다. 앞서 떠올랐던 기억이 다른 단어를 보고도 다시 떠오르는 거였다. 몇 개월 후에 이 실험을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기억들은 주로 철없던 젊은 시절에 겪었던 하찮은 사건들 이었다. 최근에 힘들게 다녀온 유럽과 아프리카 여행 경험은 오히려 듬성듬성 기억날 뿐이었다.
이후 학자들이 골턴의 연구결과를 검증했고, 이는 이제 기억의 쏠림(memory bump) 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가 평생 경험한 사건들은 공평하게 저장되지 않는다. 가장 뚜렷하고 가장 자주 떠오르는 기억들은 주로 15세에서 25세 사이의 경험들이다.
이 기억 쏠림은 왜 우리가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스무살 때는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선명하고 촘촘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제 겪은 일 중에 기억나는 건 몇 없다. 지난 주, 심지어 작년에 있었던 일도 흐릿해진다. 그러다 보면 며칠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가 다 가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기억 쏠림은 어떤 세대의 특징이 왜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설명해준다. 생각의 구조를 결정하는 건 사고력이나 판단력이겠지만, 그 생각을 채우는 재료들은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그런데 그 기억의 주 재료는 15세에서 25세 사이에 겪은 경험들에서 나온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청년기에 겪은 기억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자신이 청년기에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이후에 겪는 모든 일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시절 경험들이고, 낯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참조물 역시 그 시절 경험들이다.
한 세대의 특성은 바로 그 세대가 청년기에 어떤 세상을 겪었느냐에 달려있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은 너무나 많은 세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거다.
우리나라는 정말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1950년대까지 한국에는 지주와 소작농이 존재하고,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가 농업이나 임업 수산업에 종사하는 농경사회였다. 그때만 해도 선비가 제일 귀한 직업이고 농부가 그 다음이며 공방의 기술자가 세 번째, 돈을 만지는 상인들이 제일 천하다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직업차별이 존재했다. 젊은이들은 애비의 신분과 직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걸 당연히 여겼고 양가 부모의 합의만으로 생판 얼굴도 본 적 없는 남과 결혼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6.25 전쟁의 부수적인 결과로 신분제도나 지주계급의 근간은 불타버렸지만 여전히 봉건사회의 틀은 남아있었다. 지금 나이가 80이 넘은 어르신들은 청년기에 바로 그 세상을 경험했다. 그 양반들의 머릿속에는 왕이 있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차별이 엄존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
반면 6.25전쟁 이후의 고통스럽던 6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현재의 70대들은 그저 밥 굶지 않고 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70년대의 고도성장기와 함께 청년기를 보낸 50-60대들은 ‘노력만 하면 다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국제시장>은 바로 그 50대에서 80대를 아우르는 영화다. 6.25 전쟁,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전쟁은 모두 이 연배의 어른들이 아동기와 청년기 시절에 겪었고 지금도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경험들이다.
영화 속의 덕수는 동생들을 서울대 졸업시키고 나훈아(?)와 결혼시키고 언제 찾아올지 모를 자신의 아버지와의 약속인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전쟁에 끼어들어 부상까지 입지만 동생들이 장성할 때까지 뒷바라지해서 남부럽지 않은 성취를 해낸다. 한국 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루기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내겐 이 영화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 아버지도 내 아버지도 덕수와 마찬가지로 이북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중학생 때 터진 6.25전쟁을 피해 어머니와 4형제만이 피난을 내려와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80이 넘으신 지금 아버지가 가장 많이 되뇌이는 기억은 모두 이북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피난 내려와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이후의 몇 년간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도 영화 속의 덕수처럼 3명의 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했다.
결과도 좋았다. 셋째 동생은 취직은 안하고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대 등반대장을 했지만 결국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막내 동생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역시 성공한 의사가 되었다. 둘째 동생도 역시 미국에서 공무원으로 지내다 은퇴하고 느긋한 노후를 보내는 중이다. 이렇게 보자면 이 영화가 지금 한국에서 대흥행을 하는 이유도 당연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일이 없던 연령대의 관객들이 특히 이 영화에 많이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이 영화는 기억의 재확인이자 자기 존재의 의미와 성취감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유도 분명하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들이 한국 역사의 한쪽 면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중요 사건 중에서 5.16 쿠데타나 한일협정, 10.26 사태와 광주항쟁은 영화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건 단지 돈을 벌 기회와 관계가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감독이 철저하게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사건들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덕수로 대표되는 세대는 지극히 무고한 존재로 비춰진다. 덕수는 단 한번도 적극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베트남에 가서도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을 구조했으며, 독일에서도 친구를 구하려다 위험에 처한다. 심지어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조차 덕수는 영자에게 덮침(?)을 당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렇게 영화가 덕수를 그저 무고한 피해자로 묘사하다 보니 영화 속의 사건들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는다.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의 이야기)는 없느냐”는 영자의 지적은 지극히 옳다. 덕수는 그저 이 풍진 세상에서 살아남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동부서주했을 뿐이다. 덕수 개인의 꿈을 쫓을 기회는 진작에 빼앗겼고, 부부 싸움의 기회조차 국민의례에 빼앗긴다. 이렇게 영화 속의 이야기가 비어 있으니 관객들은 그 빈자리에 자신들의 생각이나 관점을 끼워넣는다. 그 결과는 정치적인 논쟁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메시지라 할 수 있는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 이라는 문장의 설득력이다. 이건 힘든 세상이 다 지나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힘들지 않음’과는 매우 큰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내 아버지 이야기를 해보자. 아버지가 본인을 포함해 동생 셋을 모두 뒷바라지 할 수 있었던 건 당신이 당시 막 설립되었던 한국전력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아버지와 둘째 아버지는 매년 번갈아가며 대학을 다녔다. 두 사람의 대학등록금을 낼 집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졸업을 하고 한전에 취직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수습사원이던 아버지가 연수기간에 받은 급여를 가지고 둘째의 등록금을 낼 수 있었던 거다. 요즘 아무리 잘나가는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해도 신입 사원의 1개월치 월급으로 한학기 대학 등록금의 몇 퍼센트나 메꿀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지금과 그 시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분명히 38따라지 세대는 힘든 시절을 겪었다. 그 세대는 전후의 텅빈 폐허를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채워나갔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이전에 없던 진입장벽과 차별과 격차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과연 대학을 졸업해서 정규직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들이 본전을 찾을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인 세상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 만들어진 데는 부모 세대가 온전히 무고하다 할 수도 없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나름의 성공경험을 가진 부모 세대가 자녀들에게 동일한 경로만을 지시해온 결과이니까. 만약 이 영화가 80년대말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면 훨씬 좋았을 거다. 그때는 정말로 삶의 질이 매년 향상되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특히 2014년의 비극들로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게 될 세대에게는 이 영화가 ‘아무 개념이 없는’ 영화로 보일 거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또 다른 화제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흥행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릴 적에는 결혼은 평생을 사랑하며 같이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에서 그런 결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무주택자에서 주택보유자로의 진입장벽이 높아질수록 결혼은 이미 갖춘 조건들의 품평결과물이 된다. 그리고 중산층의 안정성이 약화될수록 결혼과 가족의 지속성도 망가진다. 그 결과 조건 따져 결혼해서 걸핏하면 이혼하는 것이 부부관계라는 각박한 현실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76년째 신의와 사랑을 지키는 부부의 이야기는 거의 비현실적인 동화가 현실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제공할 거다.
이 영화의 세번째 문제는 무고한 희생자인 기성세대 vs 아무 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자녀세대의 대비로 끝낸다는 점이다. 혼자 고생한 할아버지는 골방에 가서 울고 있는데 자식새끼들은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을 완전히 무고한 희생자로 만들어 놓는다. 영화 속의 어디에도 자식들이 아버지와 그렇게 담을 쌓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이 영화는 “6.25 세대는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은 없고 기여한 것만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손자세대가 감히 이들에게 패륜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바로 그런 한심하고 멍청한 자녀들을 키운 게 누구인지도, 그 자녀들이 지금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70여년간의 압축성장과 함께 축적되어 온 세대 간의 갈등이 적극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단순히 사건들만 나열한 묘한 영화 한 편을 계기로도 터져 나오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참 좋~은 한 해의 시작이다.
원문 :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