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이 낳아 놓은 알에 정자를 끼얹기만 되는 체외수정과는 달리, 체내수정의 경우에는 암컷의 몸속에 있는 난자에 정자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수컷들은 경쟁자보다 먼저 암컷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하기 위해 용을 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수컷의 성기가 다른 신체부위보다 더 빠르게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근연관계에 있는 동물들 사이에서조차 수컷의 성기는 종에 따라 매우 다르다.
뱀이나 도마뱀의 수컷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한 쌍의 반성기(hemipenes)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서 페니스가 두 개라는 소리다. 각각의 반성기는 튜브 구조로 되어 있으며, 표면에는 홈이 패여 있어 그곳을 통해 정자가 전달된다. 그런데 반성기의 형태는 실린더형에서부터 2엽형(bilobed)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겉에 가시가 돋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20여 종의 도마뱀을 대상으로 수컷의 반성기를 분석한 결과, 성기의 형질이 다른 부위보다 실제로 빨리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주 Journal of Zoology에 기고했다.
하버드 대학교 동물학과의 율리아 클라츠스코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카리브해 연안에서 채집한 25종의 아놀리스 도마뱀 수컷의 페니스를 연구했다. 일단 페니스의 형태는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페니스의 ① 총길이, ② 2개의 엽(lobe)으로 나뉜 부분의 너비, ③ 몸체의 너비를 측정하여 신체의 다른 부위와 비교했다(첨부그림 참조). 연구진은 측정결과를 토대로 하여, 각 부위별 진화속도를 계산해냈다.
계산 결과, 아놀리스 도마뱀의 반성기는 다른 부위에 비해 최대 6배 빨리 진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마뱀 수컷의 성기가 이렇게 빨리 진화했다니 놀랍다”라고 클라츠스코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도마뱀 수컷의 페니스는 왜 그렇게 빨리 진화했을까? 연구진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암컷이 ‘속궁합이 잘 맞고 자극을 잘하는 페니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암컷의 선호에 맞추기 위해 수컷의 성기가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두 번째는 좀 살벌한 이야기지만, 암컷과 수컷이 생식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컷은 어떻게 해서든지 암컷을 수정시키는 데 알맞은 페니스를 진화시켰고, 암컷은 ‘괜찮은 수컷’을 고르기 위해 성기의 형태를 자꾸 바꿔 왔다는 이야기다.
출처: 양병찬 님의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