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바라본 ‘시대정신이 사라진 20대’에 대하여.
지금의 20대를 향해 ‘시대정신이 없는 게 시대정신’인 세대라고들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소명을 공유했던 선배 세대와는 달리 뚜렷한 공통의 목표가 없고, 탈 정치화가 가속화 된 세대라는 이유이다.
실제로 주위를 돌아보면 20대의 탈정치화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SNS에서 정치적인 의견을 표출하고, 목소리를 내는 20대는 극소수다. 대부분의 20대는 정치와 운동, 투쟁과 같은 단어에 아예 관심이 없다.
나는 또래 중에서는 정치와 사회 운동에 관심이 적지 않은 편이고, 기회가 주어지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물론이고, SNS에서도 화제가 되는 필자들과 친구를 맺고 잡식성 읽기를 끊임없이 해왔다.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스펙트럼이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20대 중에서 정치와 사회라는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극소수이고, 그 목소리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0대를 대변하는 젊은 층은 정치권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준석, 손수조 같은 얼굴 마담, 젊은 세대의 대변과는 무관한, 아는 사람만 아는 몇몇 진보 매체의 젊은 필자들 정도가 있을 뿐이다.
20대를 대표하는 얼굴마담 하나 세우지 못하면서 선배들의 꼰대질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투표를 하라거나, 선거권을 행사하라는 운동은 꼰대질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이라면 당연히 야당을 찍어야 한다’거나 ‘선거날 부모님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튀어서 여당 투표를 막아라’ 따위의 말은 결국 ’20대의 투표율’보다는 ‘우리를 찍어주는 20대의 투표율’에 관심이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보수화된 20대가 많아지니 선배들의 꼰대질은 단순히 투표를 독려하는 수준을 벗어난다.
순수하게 선거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었다면, 자기 목소리를 내고 투표하는 보수화 된 20대는 모범적인 친구들이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20대에게는 조중동에 세뇌 됐다거나 먹고 사는 문제밖에 관심이 없는 속물이라는 말을 쓴다.
‘토익 책 대신 짱돌을 들고 던져’라는 말부터 ‘지금의 20대는 예전 386같은 패기가 없어서 정부가 이 따위다’라는 말까지. 과거의 386에 향수를 느끼는 윗 세대의 꼰대질은 명백하게 ‘특정 진영’을 가르키고 있다.
그들은 20대의 정치화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만 20대가 정치적으로 ‘자기 진영’을 지지해주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따름이고, 당연히 20대라면 범 야권과 범 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무장했을 뿐이다.
그들만의 시대정신
그런데 주위의 평범한 20대들은 왜 정치에서 벗어나며 시대정신 따위를 개의치 않게 됐을까.
17%에 달한다는 빈곤 청년층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사치로 느낄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윗세대는, 그러니까 더더욱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 세상을 바꾸라고 말한다. 차라리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꼰대들은 ‘힘든 개인 한 사람’을 모욕하고 말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20대를 탓하는 진보적인 꼰대들은 ‘세대 전체’를 모욕한다.
생존 자체가 시급한 화두인 빈곤 청년층이 세대적인 모욕을 감수하고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똘똘 뭉치리란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다.
자신들의 시대처럼 짱돌을 들고 데모를 하다가 적당히 졸업해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해 나이가 들면 보수로 사상적 전향을 할 수 있는 만만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선배들의 몰염치는 탈정치화의 불꽃을 더욱 맹렬히 타오르게 만드는 장작이다.
빈곤 청년층이 아닌, 큰 어려움 없이 4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에 성공했거나 취준생으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청년층은 왜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들에게 세상은 짱돌을 들고 투쟁해야 할 만큼 엉망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86 집착증에 걸린 윗세대는 한국을 지옥으로 묘사하지만, 그래서 삼포세대니 88만원 세대니 하는 신조어를 열심히 만들어 청년 세대의 절망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빈곤층이 아닌 20대에겐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투쟁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정치 논리보다 가치 있(어 보이)는 자신만의 삶
버블 경제가 무너진 후 일본의 젊은이들은 주택을 구매하거나 자동차를 사는 일에 관심을 접었다. 대신 소박한 여행과 화초 키우기, 그리고 오타쿠 문화로 표현되는 수많은 서브 컬쳐에 집중하며 저비용으로 다양한 취미를 즐긴다.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같은 20대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을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20대를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란 정말 힘들다. 대부분은 선배라는 작자들이 만들어낸 88만원 세대나 삼포세대와 같은 절망적인 신조어에 관심이 없다.
상위 20%의 커트라인을 뚫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합격한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싸워야 할 이유를 모른다. 살만하기 때문이다. 살만한데 계속 세상이 지옥이라고 싸워야만 한다고 부추겨봤자 피곤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직 대학에 있거나 취준생으로 사는 20대, 그리고 취업 관문에서 상위 20%에 들지는 못했지만 적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20대들도 마찬가지다. 연봉이 많지 않아도, 그 연봉으로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하고 결혼이나 출산이 어려워도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지금 세대의 일본 청년들처럼 저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저성장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하고 있다.
좋은 차는 살 수 없어도 좋은 옷을 입고, 적금을 드는 대신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가거나 꽤 자주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다. 괜찮은 연봉을 받는 취업 관문 상위 20%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평범한 20대들 중에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당연히 사는 게 쉽지 않겠지만, 대부분 저성장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하며 윗세대의 선배들에 비해 소소하고 개인적인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데 탁월하다. 빈곤 청년층은 투쟁 할 여력이 없고, 상위 계층만이 아니라 폭넓게 중간 계층에 속하는 청년들은 투쟁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선배들의 꼰대 논리
그런데 선배들은 시대정신의 실종과 탈정치화를 비웃고, 모욕하기 바쁘다. 성장 과정에서 그렇게 잘나신 386의 정치적 실패를 두 눈으로 보고 자란 지금의 20대들을 자기 진영으로 꼬시고 싶다면 유혹의 기술이라도 뛰어나야 할 것 아닌가.
기껏 하는 말이라는 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더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 진영’을 찍어주지 않으면 빈곤 문제가 심해지고 청년들은 계속 피해자가 될 거라는 협박이다. 적어도 이명박근혜보다는 우리 쪽이 낫지 않냐는 진부한 말이 10년 가까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양당 구조에서는 어느 쪽이 이기든 세대의 이익과는 상관이 없다는 게 청년층 기저에 깔린 판단이다. 청년들이 삶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 어려움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정치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특정한 정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면 청년 세대의 이익을 대변할 거라는 확실한 물증을 주고 유권자를 유혹해야 한다. 이 세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조롱과 비난이 앞서는데 외면을 받는 게 당연하다. 20대들이 윗세대의 꼰대질을 ‘취객의 진상’ 정도로 여기는 게 당연하다.
여자를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여자를 혐오하는 일베충들과 정치적으로 20대를 이용할 수 없어서 20대를 혐오하게 된 윗 세대 선배들이 그리 달라 보이진 않는다. 굳이 지금 20대의 시대정신을 말하자면, ‘시대정신 따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세대 단절은 더욱 심해질 것
누가 그랬듯 지금의 20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고, 10대는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이다. 현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20대가 되면 탈 정치화 성향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지금의 20대보다 개인적인 면모가 훨씬 강하다.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인 지금의 10대를 하나의 세대로 묶어 정치적 시대정신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로서 한 때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친구들을 무시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저성장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하며 적게 벌어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워가는 20대 친구들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시대정신을 갖는 것조차 사치인 빈곤 청년층의 탈정치화를 누구도 비난하거나 조롱할 수 없다.
또한 굳이 하나의 세대로 묶이지 않고 원자화 되어 개인에 집중하는 대다수 20대들은 이미 시작된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체득하는 중이다. 그럴듯한 유혹의 기술도 없이 한 세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자신들의 투쟁에 소비하려는 윗 세대들의 바람은 앞으로도 영영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시대정신을 부르짖는 선배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했고, 청년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바뀐 시대에 적응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능력도 없는데 노력조차 안 하니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할 리 없다.
시대는 변했고, 현재의 20대는 누구보다 빠르게 바뀐 시대에 적응해가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윗세대의 이해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당장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으면 세계가 더한 지옥이 될 거라는 으름장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위에서 뭐라고 떠들건 관심 자체가 없다. 그저 이 세대만의 방식으로 주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윗세대의 투정일 뿐, 욕먹을 이유는 없다
일본의 기성세대가 청년층을 후리타, 니트, 마일드 양키 등 각종 별명으로 부르며 비난하는 것처럼 한국의 윗 세대도 계속해서 20대를 안주거리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20대는 윗 세대의 비난 따위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실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 매체와 언론의 칼럼을 누가 읽겠는가. 애당초 그들의 글이 발표되는 창구가 20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다.
결국 ‘자기 진영’안에서 20대라는 비난할 대상을 정해놓고 손가락질하며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부흥회’에 20대를 소비 할 뿐이다.
시대정신 따위에 집착하지 않는 내 주위의 평범한 20대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다시는 무시하지 않겠다.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극소수의 20대 운동가들보다 하나의 목소리로 묶이기를 거부하는 그들이 옳다.
쓸데없는 윗세대의 투정에 관심이라는 먹이를 주지 않는, 변화된 시대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가는 우리는 욕 먹을 이유가 없는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