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기대했던 ‘보너스’가 ‘세금폭탄’으로 바뀌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이를 두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진영에선 ‘사실상의 증세’라며 반발을 조장하고, 진보진영에선 매우 예외적으로 정부의 결정을 옹호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오히려 몇몇 진보진영의 논객들은, 복지(국가)를 위해선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며 화난 민심을 어르기도 하고, 때로 꾸짖기도 한다. 현재의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몇 가지 지점들을 짚어보자.
1. 이기적이고 민도 낮은 국민?
극우파들의 입장을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좌파진영에서 나오는 목소리 중에서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세제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특히 흥미롭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의를 위해 조금도 자기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일부 국민들을 비난하고, 이러한 수준낮은 이기심을 부추긴다며 이른바 진보매체와 야권 정치인들을 규탄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수용론자‘라고 당분간 부르기로 하자.]
하지만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자기밖에 모르는 수준낮은 개인들의 우는 소리라고 볼 수는 없다 — 겉으로 그렇게 보이더라도, 그런 겉모습 안에 숨겨진 이면을 봐야 한다.
일단 이번 ‘대란’의 한 원인이 된 것이, 정부가 매달 떼어가는 원천징수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개인들이 다달이 받는 급여 실수령액을 조금 늘리는 대신 연말정산에서 환급액을 줄이게 될 것이다.
이때 최종적으로 내는 세액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데,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세금폭탄’ 운운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단, 정부가 이런 사정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이해를 구했다면 말이다.
과연 그러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이것은 홍보를 ‘제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천징수액을 줄임으로써 달성하고자 했던 효과는, 매월 실수령액을 조금이라도 늘림으로써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효과는, 사람들이 그러한 매월의 실수령액 증가가 연말정산시 세금 환급액 감소로써 정확하게 상쇄된다는 사실을 몰라야만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 경우, 자신이 시행하는 정책의 내용을 홍보하지 않는 데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이와 같은 실질적인 소득증대책 없이 내수를 늘리겠다는 ‘꼼수’의 말로가 무엇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비난받을 것인 정부이지, 분노한 대중이 아니다.
위 문제를 별도로 하면, 현재의 원천징수 대란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1) 소득공제의 세액공제로의 전환, (2) 실질적인 증세.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가 ‘수용론자’라고 부르는 진보 성향의 몇몇 논자들은, (1)과 관련해서는 ‘세제를 합리화하는 것이므로’, (2)에 대해서는 ‘복지확충을 위해서는’ 등과 같은 근거를 내세우는 것 같다. 나아가 이 둘을 합쳐서, ‘이번 세제개편은 증세라기보다는 세제합리화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복지를 위해선 이 정도(증세?)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식의 조금 기이한 주장을 한다. [이것이 ‘기이한 주장’인 이유는 다음 글 참조: 양극화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증세는?]
2. 세제의 합리화?
나는 위와 같은 ‘수용론’이 노동자/서민을 위해서든,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든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첫째, 세제합리화로 말하면, 우리 세제에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돌리는 것’ 말고도 합리화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우리나라 공제제도, 상당히 역진적이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일부 부자들을 위한 각종 공제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더 시급한가, 아니면 대부분의 노동자/서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아이들 육아나 교육을 위한 비용에 대한 소득공제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더 시급한가? 답은 뻔하지 않나?
굳이 이 모범답안을 쓰면 이렇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돌리는 것은 세제합리화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부 진보 논자들에겐, ‘우리 세제엔 그것 말고도,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시급하게 합리화해야 할 요소들이 많습니다. 굳이 이번에 소득공제의 세액공제로의 전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을 크게는 연소득 5천5백만원을 경계로, 작게는 여러 자잘한 기준에 따라—예컨대 결혼 여부 등—분열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라고 답해주면 된다.
3. 복지국가 비용? 경제위기 비용!
두 번째, 증세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누구라도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대의에는 동의할 것이다. 누가 아니래나. 그런데 증세를 어떻게 할 거냐? 누가 더 낼거냐?
이에 대한 대답은 그때 그때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새삼 상기시켜드리자면, ‘피케티-이후’의 세계를 살고 있다. 이 사회의 최고 부자들이 우리 국민경제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피케티를 통하여 새삼 깨달은 바 있다.
도대체 최고 부자들에 대한 문제제기, 특히 1980년대 이후 약화되고 있는 소득세 누진성을 급격히 올려야 한다는 피케티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는 목소리들은 다 어디 갔는가? 도대체 나 같은 ‘과격분자’가 피케티를 비판할 때, ‘피케티는 진리’라고 외쳤던 우리 진보진영의 친구들은 다 어디 갔는가? [참조: 우리는 왜 더 불평등해지는가]
그뿐이 아니다. ‘수용론자’들이 곧잘 잊곤 하는,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말하는 ‘피케티-이후’의 세계—곧 불평등이 만연한 세계—는, ‘점령하라-이후’의 세계이기도 하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는 단순히 불평등을 교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로부터 일단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복지국가 건설하자고들 하는데, 솔직히 지금으로서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리이고, 사실은 그 전에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복지국가란 현실에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에 가장 급진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둑처럼’ 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개편론자’들이 대체로 복지(국가) 지상주의자들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 누가 비용을 대야 하는가? 지난 ‘점령하라’라는 운동을 통해 우리는 한 목소리로 이 사회의 대자본가들과 지배계급이 비용을 지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그들이 이 경제의 운용과 관리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외친 바 있다. 하여튼 적어도 5천5백만원 이상 돈버는 우리 친구들이 비용부담의 주체가 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참조: 교황의 말씀과 피케티]
4. 소득세 먼저? 법인세 먼저?
이번 소득공제 대란에서 법인세 인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를 반대하는 쪽에선 법인세를 일종의 부자증세로 간주, ‘지금 소득세 건드릴 때냐. 법인세 인상이 먼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번 것과 같은 세제개편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진보인사들은, ‘법인세 인상도 좋지만, 소득세제 개편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입장이다.
내 생각은, 지금 소득공제 대란 앞에서 법인세 얘길 꺼내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고, 실제로 현재 경제 여건상 법인세는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침체 때문에 안그래도 법인세수가 계속 미달되고 있기 때문. (물론 그 피상적인 이유는 애초 경제전망을 과하게 해서, 기대 세수를 높게 잡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지금 법인세 올리는 것은 경제침체 가속화 논리에 밀려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설령 어렵게 법인세를 올려봐야 실효성도 떨어질 것이다. 앞에서 각종 공제제도 얘길 했는데, 진정으로 공제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 분야가 여기다. 법인세 분야에선, 일단 현행 세제를 좀 더 엄격하게 가져가는 방향이 맞지 않나 싶다.
그보단, 현재 우리가 기업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세금 몇 푼 더 내라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고용관행 개선과 내수진작을 위한 임금인상이다. 물론 이와 함께 특히 재벌기업 등 하청사슬의 상위에 있는 기업들에는 하청관계의 정상화도 압박해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이상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1) 세제합리화 관련: 합리화할 것은 이것(소득공제–>세액공제) 말고도 많다.
(2) ‘복지 위한 증세’ 관련: 지금 필요한 증세는 적극적인 의미의 ‘복지’를 위한 게 아니라 경제위기 땜빵용이다. 현재 고려되는 정도의 복지라는 것도 결국 경제위기 땜빵 수준이다. 복지를 위한 증세라면 백번 양보해 ‘우리 모두’가 증세대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위기 땜빵을 위한 거라면 그 비용은 자본가와 최고 부자들이 대야 한다.
(복지냐 경제위기 땜빵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현재 추진중인 것은 복지정책이지, 경제위기 땜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깝게는 2008년 이후, 멀게는 1997년 이후, 경제위기에 따른 비용을 누가 댔는가? 그에 따라 삶이 파탄난 게 누구이던가?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복지가 기본적으로 이들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적극적 의미의 복지라기보다는 경제위기에 따른 비용을 뒤늦게 치르는 것일 뿐이다.)
(3)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인상은 쉽지 않다. 현행 체계를 좀 더 실효성 있게 가져가도록 다듬어야 한다. 법인세 공제제도를 손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아가, ‘기업에 대해선 임금인상과 고용관행 개선을! 부자에 대해선 더 많은 세금을!’ 이런 전략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렇다면 세제 차원에선 기업을 건들지 말자는 건가? 아니다. 사내유보과세 등과 같은 압박은 계속해야 하고, 또 성사시켜야 한다.
(4) 보편증세: 이는, 노동자/서민들이 자본가와 부자들로 하여금 비용부담을 압박해 그들이 마지못해 비용을 내놓아, 결과적으로 경제위기에서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또 이를 발판삼아 임금인상도 상당 정도로 달성한 다음에 하는 거다. 현재 연말정산 국면에서 운위되는 보편증세(연소득 5천5백만원 이상자에 대한)는 그 자체로 보편적이지도 않고, 그 소득 이하를 버는 이들을 객체화시키는 증세안이기때문에, ‘보편증세’라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의도 달성하지 못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는 효과만 낼 뿐이다.
끝으로, 현재 세금과 관련된 논의들이 대체로 ‘소득수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약간 논쟁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이다. 연차와 숙련이 쌓여 7-8천만원 버는 노동자를 잡아야겠는가, 사회에 하등 기여하는 것 없이 4-5천만원 버는 불로소득자를 잡아야겠는가?
작년 한해를 돌아보면, 후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별로 없었던 반면 많은 이들이 전자를 못 때려잡아 안달이었던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와중에, 수억씩 챙겨가는 대기업 임원에 대한 소득세제 차원의 문제제기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러는 과정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비용을 누가 분담할 것이냐 하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까맣게 잊히게 되었다.
이 희비극의 연출은 청와대/기재부, 주연—혹은 조연—은 몇몇 진보논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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