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오히려 대학을 폐쇄하여 대학 진학률을 줄여야 한다?
– 피케티를 비롯한 선진국 경제학자의 일반론과 이주호 전 장관이 지적한 한국의 특수한 상황
피케티가 말하는 교육과 소득의 관계
피케티는 그의 책 ’21세기 자본’에서 소득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자본소득의 불평등을 들고 있지만, 노동소득의 불평등 역시 꽤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의 맨 앞 부분에서 그는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기능을 가진 사람의 수요를 증대시키지만, 충분한 고등교육을 통해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의 공급을 같은 속도로 증대시켜주지 않으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소득이 낮아져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얘기다.
프랑스에서 ‘교육제도의 민주화(아마 초등 및 중등교육 의무화를 의미하는 듯하다)’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소득)의 불평등이 계속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었던 까닭을 피케티는 ‘모든 기능의 수준이 거의 같은 속도로 발전함으로써 불평등한 급여 체계가 그저 위쪽으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과거의 초등학교 졸업 학력자는 이제 고졸 학력이 되었고, 과거의 고졸은 대졸, 과거의 대졸은 대학원졸 내지 그 이상이 되었기 때문에(=학력의 평행이동) 학력에 따른 임금 불평등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제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옛날처럼 노동자의 대부분이 초등학교 졸업이라면 임금 불평등은 더 심해졌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 피케티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학자들이 내놓는 해법은 교육에 대한 투자 증가, 특히 고등교육 기관(=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더 많은 인구가 이런 교육을 받게(=대학 진학률 제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급여 체계의 하위에 위치한 노동자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한편 급여체계 상위 10%의 몫을 줄이는 결과가 나온다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며, 임금불평등이 더 높아진 한국
교육 문제를 전공한 노동경제학자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박사를 비롯한 일련의 연구자들이 최근 ‘한국은 인적자본 일등 국가인가?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의 분석‘이라는 짤막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대학 진학률의 증가가 임금 불평등의 완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의 왼쪽 그래프(그림 3a)를 보면 임금의 불평등도(지니계수)를 나타내는 오렌지색 점선이 1990년대 중반까지 쭉 내려오다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계속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른쪽 그래프(그림 3b)를 보면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차이를 나타내는 파란색 점선과 4년제 대졸자와 2년제 대졸자의 임금 차이를 나타내는 오렌지색 실선이 역시 1997년부터 반등하는 모습이 나온다.
임금 불평등도가 다시 심화되는 전환점이 하필 IMF 경제위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모든 게 다 IMF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급격한 대학 진학률 증가가 바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약 10년간 나타났다는 점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래 그림 참조). 남자의 병역 의무 기간을 반영한다고 해도 1997년은 적어도 전문대 졸업한 인력이 노동 시장에 참가하는 때가 된다.
그러고 보니 임금 불평등도의 상승이 멎은 2008년은 대학 진학률 증가세가 진정된 2003년의 5년 뒤이다. 대학 진학률 증가는 1992년에서 2003년, 그리고 임금 불평등도 심화는 그 5년 뒤인 1997년에서 2008년까지 진행된 것이다.
아래 그림 파일의 왼쪽 그래프 (그림 4a)를 보면 대졸 노동자 중 고졸과의 임금 격차(프리미엄)가 1997년부터 반등한 계층은 임금 상위 10% (오렌지색 점선)밖에 없다. 임금으로 볼 때 딱 중간 (파란색 점선) 계층은 지난 10여년간 고졸과의 임금 격차가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하위 20% (오렌지색 실선) 및 10%(파란색 실선) 계층은 오히려 고졸자와의 임금 격차가 마이너스이다! 대졸자 중 임금 하위 20%는 고졸자보다 임금을 덜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오른쪽 그래프(그림 4b)를 보면, 2년제 전문대 졸업자의 경우는 임금 중간 계층(파란색 점선)이 1980년 이래 단 1년도 고졸자와의 임금 프리미엄이 플러스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와 있다. (‘인서울 메이저 대학’인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 11개 대학의 입학 정원이 전체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의 10% 남짓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두 배로 높아졌는데도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늘어나는 현상, 그리고 대졸 노동자의 임금 하위 20%, 전문대졸 노동자의 임금 하위 50%가 고졸자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는 현상, 이럿을 이주호 박사 등 연구자들은 ‘교육 거품’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등교육(대학)에 대한 투자가 ‘상위권’ 대학들의 질을 높이는 ‘질적 투자’가 아니라 질 낮은 ‘하위권’ 대학들을 신설하는 ‘양적 투자’로 진행되었고, 이는 ‘하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효율적인 인적 자본 축적에 실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위권 대학에 투자된 돈은 ‘자원 낭비’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결국 ‘하위권’ 대학의 구조조정 및 통폐합만히 이런 ‘교육 거품’을 줄이고 대학 교육이 진정한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논문을 맺는다.
하위권 대학에 대한 투자 = 상향 평준화?
과연 그런가? 사실 이주호 박사 등의 연구를 보면 부실 대학의 구조조정도 하나의 해법이겠지만 하위권 대학에 투자를 더 늘려서 중상위권 대학과 같은 교육의 질 (교육비 순지출, 교원당 학생 수, 교원당 연구비)을 확보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소위 ‘상향평준화’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하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할 듯하다.
하지만, 과연 지방의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신설 대학에 전반적으로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상향 평준화’가 될까? 맨 앞,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 의 논리를 적용하면 그렇게 되지 못할 것도 없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가설을 도입해 본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임금이 노동 생산성과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 생산성이 높은 직업(=높은 기능이 필요한 직업)은 그만큼 임금이 높고, 그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교육 수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 생산성이 낮은 직업은 임금이 낮고, 낮은 교육 수준으로도 그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노동생산성에 의해 임금의 기본 구조가 정해진 가운데, 만약 대학 진학률 상승으로 인해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노동의 공급이 늘어나고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노동의 공급이 줄어들면 수급 논리에 의해 교육 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어든다, 뭐 그런 얘기다.
임금은 교육 수준이 아닌 정치와 사회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의 임금 서열이 노동 생산성과는 별개로, ‘정치-사회적 권력 투쟁의 과정’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는 미국 CEO들의 급여와 최저 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아파트 경비원 급여의 격차는 결국 ‘정치’의 결과물 아니겠는가?
그리고, 교육의 기능은 어떤 직업에 따르는 기능이나 인적 자본을 축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임금 서열과 딱 맞는 교육(학력) 서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임금 상위 0.1%인 고임금 CEO들은 학력 서열 상위 0.1%인 (이를테면) 서울대 경영대를 나와야만 한다는…
교육의 기본 기능이 노동시장의 임금 서열에 맞춘 노동자의 서열 형성이라면, 대학 증설 및 대학 진학률 제고가 노동자의 임금 불평등 해소에 도움을 못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교육 서열에서 현재의 ‘하위권’ 대학이 가진 위치는 과거 고등학교가 가진 위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하위권 대학 졸업자의 경우 고졸자와는 다른 ‘교육 서열의 세분화’로 인해 손해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이를테면, 서울 강남 일반고의 성적 하위권 학생은 차라리 고졸인 상태에서 취직을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지방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면 오히려 ‘나 고등학교 때 공부 못 했다’는 정보를 취업 시장에 알려주는 셈이다.
문제는 교육이 아닌 정치다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애꿎은 교육을 가지고 이리저리 손볼 것이 아니라 임금 서열 자체를 정치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CEO의 과도한 급여를 줄이는 것도,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최저 임금을 적용시키는 것도, 다 정치적인 과제이다.
교육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내 평소 지론이 결론으로 도출된다.
다만, ‘하위권’ 대학을 구조조정 통폐합하는 것이 ‘하위권’ 대학에 갔을 사람을 ‘고졸’로 바꾸어 서열화를 흐리게 만듬으로써 임금 불평등 해소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인적 자본 축적의 효율화’ ‘교육 거품 해소’의 논리가 아니라.
(교육이 ‘인적 자본의 형성 과정’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 능력을 판별한 뒤 노동시장의 서열화에 맞추어 노동자를 서열화하는 과정이라는 생각, 솔직히 내가 미국에서 screening(선별)과 signaling(신호)을 배울 때부터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참조 글 1. 한국은 인적자본 일등국가인가 – KDI 보고서
참조 글 2. 대학 교육에 대한 KDI 보고서에 대한 단상
원문: 새나의 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