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소스에 비용을 지불해 ‘지금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표절하다 걸려서 뒷처리한 게 맞다.
사건의 시작
12월 3일에 엑소 컴백 티저 영상이 공개된 후 12월 5일에 orisonofkyungsoo라는 블로그 유저가, 스웨덴 디자이너인 Erik Söderberg에게 너네 그래픽 작업이 EXO 영상에 쓰였는데 표절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한다. orisonofkyungsoo에 따르면 당시 자기가 찌를 때 Erik Söderberg와 그의 동료 2명은 EXO 비디오에 자기 작업이 소스로 쓰인 걸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포스트는 에릭 소더버그(Erik Söderberg) 외 2명의 국제적인 디자이너인 카를로 베가(Carlo Vega)와 알렉산더 누식(Alexander Nusic)의 그래픽 아트와 “EXO 2015 COMING SOON”이라는 제목의 엑소 티저 비디오에 나온 그래픽 영상을 비교해 놓았다.”
“The post shows a comparison between graphic art by Erik Söderberg and two other international designers – Carlo Vega and Alexander Nusic – and graphics that appear on EXO’s teaser video titled “EXO 2015 COMING SOON.” <Soompi.com 기사>
사건의 진행
그 후 Erik Söderberg와 그의 동료가 한국에 연락을 취했는데 후속조치가 없자 빡친 스웨디쉬들은 저작권 문제가 얽혀있다고 유투브에 이의를 제기한다. 유투브는 저작권 시비가 걸렸다는 친절한 안내문과 함께 해당 동영상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제야 ‘서동혁’이란 인물이 디자이너에게 연락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걸로 보인다.
여기서 They, Them은 SM인지 VM 프로덕션인지 정확치 않지만 VM프로덕션 측이 “이런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고 작업자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했다”니 VM프로덕션일 가능성이 높다. 암튼 디자이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모든 문제가 처리됐다”가 무슨 의미겠는가. 이에 대해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최소 1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이들과 먼저 연락하였으나 그들은 변경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유투브에 보고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였고 이제는 정식 라이센스를 통해 해결되었다.
Me and at least one more artist contacted them first but they did not change it, so we reported to youtube.They said it was a big mistake and it is now solved by proper licensing. (어떤 열혈팬이 디자이너에게 트위터를 날려서 얻은 정보)
이는 VM 프로덕션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기에서는 그저 돈을 주고 사용한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표절이 적발된 후 돈으로 처리한 쪽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 영상을 제작한 VM프로덕션 측은 “해당 소스는 그래픽 작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표절이 절대 아니다”고 밝혔다. 제작사 측은 이어 “이런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고 작업자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했다.
현재 정상적으로 유튜브에서 서비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절을 주장했던 에릭 소더버그 역시 지난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엑소의 컴백 예고 영상을 온라인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며 관련 상황이 해결됐다고 알렸다.” <뉴스1 기사>
사건의 결말
현재 SM은 “표절”이 아니라 원소스를 “구입”한 정당한 작업이니까 괜히 시비걸다 고소미 먹지 말라는 묵직한 조언을 던진 상태다. 여기서 SM의 빡침이 느껴진다. 잘못은 VM 프로덕션에서 한 건데 자기네가 똥물을 뒤집어 쓰게 생겼으니.
근데 진짜 SM에도 잘못이 없을까 궁금하다. “난 외주 줬는데 걔네들이 잘못했음. 난 몰라. “라고 하기엔 민희진 아트 디렉터를 주축으로 디자인 조직이 따로 있을 정도로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SM 아니던가.
SM says “본건과 관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작성 및 게재, 유포 등 불법 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 (관련 기사)
잡설
난 이런 현상이 무척 좋다. 표절이 좋다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이해하겠고, 디지털로 인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리고 개인이 1인 미디어를 통해 직접 내지르는 목소리가 SNS 공유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확산이 되면 될수록, 이제 디자인 분야의 표절은 투명성이라는 이름 아래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시각적인 유사성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라 감시자가 수십 억명에 가까운 초투명사회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 하지만 이런 적발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해당 기업에서 잡아떼면 끝 아닌가. MBC, KBS, 락앤락처럼.
하지만 SM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필드가 다르다. 전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절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우리나라 소비자와 창작물을 중시하는 외국 소비자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차원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다가 큰 화를 당할 거라는 걸 명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처럼 아니라고 잡아떼기엔 표절 의혹과 증거가 급속히 퍼져서 리스크 관리는 일이 터진 후 시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표절이란 단어의 ‘언급’ 자체가 기업의 신뢰도를 급속히 깎아먹는 점이 문제다. 정말 표절을 했느냐 안했느냐 그 사실 관계와 상관 없이, 다수의 불특정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브랜딩 구축에 들인 돈과 저작권료를 비교하면 저작권을 미리미리 해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특히 이미지가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점도 한 몫 하지만.
러브 마크가 필요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MBC, KBS, 락앤락이란 기업 브랜드는 ‘러브 마크’가 없다. 하지만 SM은 스스로 K-POP의 대표격으로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고 무엇보다 소속 가수들은 팬심이라는 이름의 ‘러브 마크’가 새겨져있는 확고한 브랜드다. EXO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이 곧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추종을 하지 않고 자존감을 갖는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빠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며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온갖 행동을 하며 소속사까지 변호했다면, 이번 사건을 접한 EXO 팬들의 반응 상당수가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치심을 호소하고 있다. ‘모자랄 게 없는’ 내 스타가 ‘남의 것을 탐하는 시정잡배’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말이다.
수치심이야 말로 인간의 직접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요인이다. 수치심에서 시작한 분노심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메테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스타’가 아니라 ‘소속사’가 될 것이다.
암튼 디자이너는 애플에게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 디자인 저작권에 대한 가치를 최고치로 높인 게 애플의 ‘너고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애플의 고소 사건은 ‘디자인이 곧 자산’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라는 격언이 디자인에도 적용되는 건 다 그 덕분 아닐까. 땡큐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