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란 말이 미디어업계에서 유행이다. 원래 영국 신문 <가디언>이 먼저였지만, 올해들어 미국 <뉴욕타임스>가 내부용으로 만든 ‘혁신보고서’가 유출되면서 더 확산된 듯하다. 조직규모가 큰 서울지역 일간지들은 물론이고, 전체 직원 5~6명에 불과한 소규모 지역주간지까지 너도나도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자. 왜 하느냐고. 그걸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게 뭐냐고.
아, 그거야 종이신문보다 먼저 인터넷과 모바일에 실시간으로 기사를 올리면 방문자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수익도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시다. 그래봤자 거의 모든 뉴스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서 소비되는 현실에서 얼마나 방문자를 늘릴 수 있을까. 내가 재직 중인 지역일간지를 기준으로 말씀 드리자면 하루 방문자 1000~2000명 정도는 더 늘릴 수 있겠다. 그러면 늘어나는 수익은? 고작해야 구글 애드센스 광고로 하루 1달러 정도다.
SNS 전담인력을 두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등에 열심히 기사를 퍼나르면 그래도 좀 더 늘릴 수 있지 않느냐고? 웃기지 마시라. 지금 경남도민일보는 전국 지역일간지 중 SNS 영향력이 이미 톱 클래스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모양이다.
스타일 좀 구기더라도 ‘알바’나 ‘인턴 기자’를 고용해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가십성 정보를 짜집기해 큐레이션 기사를 양산하고, 선정적인 낚시질 기사로 트래픽을 올린다면? 거기에다 발기부전 치료제나 성형외과 광고 등을 덕지덕지 붙이면 광고수익이 좀 오르지 않겠냐고? 흐흐. 꿈 깨시라. 그것도 포털과 기사 전재계약을 맺은 신문사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봤자 ‘알바생’ 월 인건비도 안 나온다.
얼마 전 경남도민일보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이 있었다. ‘제주항공 승무원의 재치발랄 코믹 기내방송’은 8만 9000 조회수를 찍었고, ‘안상수 창원시장 시의회서 계란 봉변’은 2회에 걸쳐 올렸는데 합쳐서 10만이 넘었다. 그런데 정작 이 영상으로 장사를 잘 해먹은 곳은 포털과 기사 전재계약이 되어있는 서울 매체들이었다. 그들은 영상을 무단으로 퍼갔고, 기사도 베껴써서 포털에 전송했다. 그렇게 베껴쓴 기사는 포털의 메인에 올랐다. 적어도 수십만 명이 조회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만큼이나마 너희도 수익 좀 보지 않았냐고? 그래봤자 150달러다. 또한 그런 기사는 매일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지역신문은 아무리 큰 특종을 해도 포털의 기사 페이지에 오르지 못한다. 전재계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헐값으로라도 주겠다 해도 포털은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역신문 입장에선 자기 기사를 베껴쓰는 서울매체에 항의는 커녕 외려 고마워하는 웃지못할 일도 생긴다. 지역이슈를 전국화하기 위해선 서울매체들이 베껴써주기라도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포털과 전재계약을 하면 ‘디지털 퍼스트’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포털 종속의 대가로 조회수도 늘어나고 수익도 좀 나아지긴 할 것이다. 선정적 광고를 덕지덕지 붙일 경우 말이다. 그게 과연 대안일까?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최근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뉴스사이트 방문자 수를 절대적인 경영 목표로 유지하는 동안 ‘기(자+쓰)레기’ 함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저널리즘 혁신을 주도하는 전세계 언론사 중 방문자 수를 신봉하는 곳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 지역신문에게 대안은 뭐냐고? 결국 콘텐츠의 문제다. 수만, 수십만 명을 끌어들이는 방문자 전략보다 100명, 아니 10명의 독자에게라도 꼭 필요한 정보, 안 보면 손해보는 뉴스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퍼스트’보다 ‘독자 퍼스트’가 우선이다. 지역뉴스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