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며칠 앞두고 17살의 한 트랜스젠더 소녀가 미국에서 자살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소녀는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들이 소녀의 성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아 세상에 홀로 있는 느낌을 느껴 자살을 하게 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LGBT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슬프고 비극적인 소식이다. 이 사건을 전하는 연합뉴스의 기사다.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10대 소년이 사회관계망(SNS)에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문제를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절망감이 담긴 유서 내용이 퍼지면서 미국이 들끓고 있다.
1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인근 소도시 킹스밀스를 지나는 71번 주간고속도로에서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조슈아 앨콘(17)이 견인 트레일러에 치여 사망했다.
맞다. 이 글의 제목에 있는 조슈아 알콘(Josh Alcorn)이라는 이름이 이 소녀가 태어날 때 부모에게 받은 이름이다. 그렇다면 리라 알콘(Leelah Alcorn)은 누구일까? 리라 알콘은 이 소녀가 스스로의 성정체성에 맞춰 자신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이다. 즉, 리라 알콘과 조슈아 알콘은 동일 인물이다. 같은 소식을 전하는 Cincinatti.com의 기사[1]는 다음과 같다.
일생 동안 리라 알콘은 혼자라고 느꼈다. 남자로 태어난 그녀는 그녀가 내면에서 느끼는 것처럼 여성이 될 수 없을거라는게 두려웠다.
17살의 – 조슈아 알콘으로 태어난 – 트랜스젠더는 죽음으로서 다른 이들이 그녀가 느꼈던 것들을 절대 느끼지 않기를 바랬다.
기사 전체를 둘 다 읽어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지만, 두 기사가 이 ‘소녀’를 지칭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연합뿐만 아니라 연합의 기사를 그대로 전재해서 쓴 다른 언론사와 일부 자체적으로 기사를 쓴 언론사들도 모두 이 소녀를 ‘조슈아 알콘’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반면 외신의 기사들은 이 소녀를 ‘리라 알콘’이라고 지칭한다. 기자가 어떤 생각으로 소녀를 지칭할 때 조슈아 알콘이라는 이름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 심지어 리라 알콘이라는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 그녀를 ‘조슈아 알콘’이라고 지칭하는건 불편하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그’나 ’그녀’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국어 기사와 달리 영문 기사는 He와 She를 자주 사용한다. 앞서 인용한 Cincinatti.com의 기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소녀는 분명하게 She라는 인칭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성정체성이 여성이므로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Cincinatti.com만 그런게 아니다. 연합이 인용한 CNN이나 Vox도 She라는 대명사를 쓴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인칭대명사를 써야 한다는 언론 지침이 있는지 없는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언론 지침과는 상관없이 미국 언론이 명확히 She라는 인칭대명사와 리라 알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데는 배경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리라 알콘을 “He”, “Him”, “Son”으로 지칭했는데, 트랜스젠더라는 점을 가족이 인정해주지 않아 자살한 사건이기에 이런 대명사 사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트위터에서는 조슈아 알콘 대신 #LeelahAlcorn이라는 해쉬태그가 등장했다. 아마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기사에 조슈아 알콘이라고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연합이 인용한 CNN의 기사는 그런 면에 있어서 세심하게 쓰여진 기사다. 먼저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고, 리라 알콘의 유서 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카를라 알콘의 인터뷰를 넣어 부모만을 비난하기보다는 부모와 자식 간에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기사의 마지막엔 이런 일이 단순히 하나의 사례가 아니라는 통계 – 41%의 트랜스젠더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통계 – 를 넣어 이 사건이 사회 문제라는 점을 부각하고, 실제 성공적인 사회구성원으로 LGBT들을 돕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인터뷰를 넣어 모방 자살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Vox도 비슷하다. 통계를 언급하고 자살 기사라는 점을 상기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의 전화번호를 마지막에 써놨다.
리라 알콘이라는 이름은 이 소녀가 죽어서라도 얻고자 한 이름이다. 평생을 리라 알콘으로 인정받고자 했지만, 결국 죽어서야 리라 알콘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슈아 알콘은 잘못된 지칭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리라 알콘의 죽음을 무가치한 일로 만든다. 또한 은연중에 다른 트랜스젠더에게 죽어도 바뀌는건 없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다.
기자가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아서 일부러 조슈아 알콘이라고 썼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신경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라도 무신경해서는 안된다.
텀블러에 올라온 리라 알콘의 유서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언젠가 트랜스젠더들이 제가 다뤄졌던 것처럼 다뤄지지 않고, 정당한 느낌과 인권을 토대로 인간으로서 대우 받는다면, 그게 제가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성(Gender)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제 죽음이 뭔가를 의미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제 죽음이 올해 자살을 한 트랜스젠더의 숫자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저는 누군가가 그 숫자를 보고 “이건 완전 잘못됐잖아(that’s fucked up).”라고 말하며 바로잡아 주길 바랍니다. 이 사회를 고쳐주세요. 제발요.
안녕히,
(리라) 조슈아 알콘
리라 알콘의 명복을 빈다.
+)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살예방 긴급전화는 129번이다.
- Cincinatti.com은 오하이오 지역의 지방지로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곳이다. 이 기사는 USA Today에 인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