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의 명성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왕년의 스타들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1군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중에는 더 이상 기량이 예전같지 않으면서도 팬들 여론을 등에 업고 선수생활을 연장하는 예도 있다. 하지만 베테랑의 가치는 이름값이 아닌, 어린 선수들과 당당하게 맞짱뜰 수 있는 실력이 있을 때 발휘된다.
감독의 경우 명장 김응룡 감독은 커리어의 마지막을 제대로 망쳤고, 왕년의 레전드 출신들이 감독으로서는 실패했다. 반면 선수 시절 경력이 초라했거나, 레전드급은 아니었던 감독들은 승승장구다. 현역 시절 이름값과 감독으로 지도력은 별개다. 단지 레전드라는 이유만으로, 친분으로, 빽으로 감독이 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2. 외국인 선수는 인성과 적응력이다
많은 거물급 외국인 선수가 선을 보였지만, 그 중 성공한 사례는 피에 정도다. 스캇, 히메네즈, 레예스 등 등장할 때 화제를 뿌린 선수들이 구설수만 남기고 퇴출됐다. 반면 들어올 때는 큰 기대를 못 받았던 나바로, 테임즈는 뛰어난 실력과 적응력, 훌륭한 인성으로 사랑받았다. 한국에서 데려올 만한 외국인 선수 풀은 엇비슷하다. 스탯헤드 작업을 거치면 성적도 어느정도 예측이 된다. 결국 관건은 인성과 적응력이다. 다시 한번 확인한 시즌이다.
3. 세상이 미쳐 돌아갈 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FA 쩐의 전쟁에서 펑펑 지른 팀 중에 성공한 팀이 없다. 집안 단속에만 충실한 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은 팀, 무리한 금액을 쓰기 보다는 꼭 필요한 선수만 합리적인 가격에 데려온 팀이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있는 집토끼를 한꺼번에 놓치거나, FA에 올인한 팀은 실패했다.
한국 FA 제도는 전성기를 한참 지난 선수를 엄청난 대가를 주면서 모셔와야 하는 구조다. 전성기 지난 선수가 한 시즌 더해줄 수 있는 승수래야 2~3승 정도다. 6~70승 하는 팀전력에는 이런 영입이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40승 하는 팀이 43승 한다고 어느 누가 잘했다고 칭찬할까 싶다. 참, 그리고 한국 FA 제도는 반드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FA 등급제를 하든 다년계약을 허용하든 FA 자격을 5~6년차에 주든 올해 안에는 손질을 해야 한다.
4. 선수가 없는 게 아니다, 있는 선수를 활용하지 못할 뿐이다
무능한 감독은 입만 열면 선수가 없다고 한다. 무능한 구단은 코칭스태프와 스카우트가 서로 욕한다. 선수가 없는게 아니다. 있는 선수도 못 키우니까, 활용을 못 하니까 문제다. 배영섭도 빠지고 정형식도 망한 삼성은 신고선수 출신 박해민이 솟아올랐다. 진갑용이 거의 시즌 아웃 상태였지만 젊은 포수 셋으로 시즌 1위를 했다.
넥센은 주력타자 이택근 강정호 유한준 문우람 박동원이 모두 팀에서 신인 때부터 키운 선수들이다. 서건창은 신고선수 출신이고 박병호와 김민성, 윤석민은 트레이드로 헐값에 영입했다. 문성현, 하영민 등 선발투수와 한현희와 조상우, 손승락 필승조도 자체 생산 선수들이다. 강정호가 해외로 가도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둔 상태다.
NC 간판타자 나성범은 투수로 입단했다. 투수였다면 잘해봐야 WAR 1승짜리 불펜요원이었을텐데 타자로 과감하게 돌려서 MVP급 선수로 키워냈다. 홈런타자 권희동은 8라운드 출신이다. 근데 어떤 팀은 매년 최상위 지명권 받아놓고도 내년도 1군 엔트리 평균 연령이 33세다. 상위 라운드 뽑은 선수들을 계속해서 특별지명과 보상선수로 소진한다.
5. 이제는 프런트 야구의 시대다
야구팬들은 프런트 야구를 싫어한다. 하지만 요 근래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프런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팀이다. 반면 프런트가 제 구실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안한 팀은 패망했다.
현대 야구는 어차피 프런트 중심이다. 프런트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하고 좋은 전력을 꾸리고 팀을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런 점에서 구단 프런트의 역할을 ‘프런트 야구’라는 말로 싸잡아 비난하거나, 모든 잘못을 프런트에게 돌리는 행태는 부적절하다. 이래서는 프런트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눈치보느라 못하게 된다. 게다가 여론이 프런트 잘못으로 몰리는 문제 대부분이 실제로는 구단주 책임이다.
프런트를 유독 비난하는 몇몇 야구인이 있다. 과거 감독 독재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부화뇌당하는 일부 매체와 팬들이 프런트/야구인 이분법을 부추긴다. 프런트는 감독이 해달라는대로 다 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프런트 손발을 다 잘라놓고 식물 프런트를 만든 구단도 있다.
과연 그럴까. 좋은 성적을 거둔 구단들은 현장과 프런트가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 현장도 무작정 현장 요구만 하지 않고 프런트 입장을 이해한다. 없으면 없는대로 최선을 다해서 경기한다. 전문성을 갖춘 프런트도 자기 영역에서 월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다가오는 2015년에도 제대로 된 프런트 야구를 하는 팀들이 상위권을 차지해서, 프로야구가 80년대식 야구로 퇴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