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잡스를 변덕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잡스가 굉장히 일관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끈질기게 일관된 목표를 추구해 왔다. 바로 ‘대단한 제품을 만드는 것’
정말이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관성 있는 삶
우선 살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이따금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이렇게 물었을 때, ‘이 사람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 뭔가를 추구하고 있긴 하구나’라고 느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마저도 흔치는 않았다.
집중하기도 어렵다. 내가 자주 묻는 또 다른 질문이 ‘당신의 본업은 무엇입니까’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말해 준다. ‘ㅇㅇ전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한번 더 묻는다. ‘그럼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그러면 많은 경우 대답이 안 나오거나, ‘본업’과 동떨어진 답이 나온다. 대답이 안 나오면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굉장히 타의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도록 ‘휩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업과 동떨어진 답을 내놓는다는 것은, 본업에 집중하지 않고 있거나, 집중해야 할 대상을 본업으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얼마 되지 않는 (하루 24시간에서 잠 자는 시간 빼면 진짜 우리한테 주어진 하루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까워 죽겠다.) 시간이 매우 산발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게 끈질김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동일한 비전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걸 직접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집중하기 쉬운 게 중독성 있는 거다. 그러니까 게임을 하는 거라던지, 아니면 돈을 버는 거라던지, 아니면 섹스에 미치는 거라던지. 이마저도 흔치는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니까 갑자기 다른 비전에 기웃거리더라. 물론 나는 그의 변화에 매우 기뻐했지만, 그는 1, 2년 전에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있다. 하다 못해 가치 있는 비전이겠는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의 내가 되뇌이고 또 되뇌이는 말 중 하나가 ‘인생의 모든 건 선택과 집중!’이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부터 알게 된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왜 이제서야 절실하게(앞으로 더 절실해지겠지만) 와닿기 시작했는지 아쉬울 따름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매 순간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고 있다. 단지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모르고 있을 뿐이지.
재미있는 건,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 보면 아주 많은 경우에 이렇게 수없이 많은 선택들을 포괄하는 일관성을 발견하기 참 어렵다는 사실이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불평등한 사회의 한쪽 끝에서의 풍요로움을 즐긴다. 쉽게 관계를 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 누구와도 충실한 관계는 맺지 않는다. 가치를 추구하고 싶다고 하면서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린다. 성장하고 싶다고 하면서 도전을 피한다.
나를 포함해, 우리의 일상은 이러한 말과 행동과 생각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일관성이 있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삶이 일관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환경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수동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후자다.
자신의 삶이 일관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비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집중해야 한다. 셋째, 끈질겨야 한다. 비전이 없으면 애초에 무엇에 대해 일관적이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 특징도 없는 삶이 되기 때문에, 일관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끈질기지 않다는 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과 거의 사전적으로 같은 의미다.
잡스의 일관성
나는 잡스가 이 셋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한 적이 없고, 잡스에 대한 모든 해석은 철저히 주관적이니까, 틀릴 수도 있다.
처음부터 잡스가 이 셋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스스로가 대단한 일을 해 내고 싶어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건 비전이라기보다는 미션이다. 훨씬 추상화된 가치다.
그게 제품이라는 비전으로 구체화된 건 애플II라는 ‘경험’이 준 짜릿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가 만든 회사 라벨을 달고 시장에 나간 제품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을 보고, 잡스는 멋진 제품이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게 아닐까. 그것 말고도 대단한 건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잡스는 제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리사와 매킨토시를 거치면서, 멋진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것 같다.
바로 여기가 중요한 포인트다. 워즈니악과 장난 삼아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하면서 매킨토시를 만들 때까지, 그는 계속 제품을 만들어 왔다. 그 사이사이에 그를 유혹한 또 다른 대단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지는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하나에 집중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그냥 우리의 주변을 보면 된다. 내가 아는 많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청년들은,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 거의 모든 곳에 기웃거린다. 각종 전략 학회에 가입해 보기도 하고,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기도 하고, 컨설팅 회사에 가기도 하고, 벤처 업계에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나열한 모든 것들은 사실 다 대단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탐색이 아니라 결정이다.
잡스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자신이 무엇에 집중하는 사람인지를 결정했다. 물론 운도 좋았다. 1970년대의 실리콘밸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대단한 것들 중 전자기기를 만들어서 파는 것에 특화된 곳이었고, 따라서 거기 살면 상대적으로 딴 생각을 하지 않기가 쉬웠을 테니까.
그리고 나서, 잡스는 평생 동안 철저하게 워커홀릭의 삶을 살았다. 워커홀릭이라 함은, 단순히 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 아주 오랫 동안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들 중에서 워커홀릭을 만난 적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당신의 일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은 정말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매출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 순익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매출과 순익은 많이 다르다), 비용을 줄이는 것,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사회에 특정한 임팩트를 가하는 것,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브랜드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것…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다’에 대한 자각 없이는, 워커홀릭이 될 수도 없다. 그냥 생존의 노예일 뿐. 쓰고 보니 워커홀릭의 정의가 좀 자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잡스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항상 일을 했다. 산책을 할 때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그곳의 풍부한 문화 유산을 즐길 때도, 지인을 만나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그는 언제나 일을 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일은 ‘대단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대단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진정한 워커홀릭이 되기 위해서 꼭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하나에 올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잊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잡스는 정말 끈질겼다. 이정도면 병적이다. 여러 차원에서 끈질겼다. 우선 시간적으로 끈질겼다. 밤 늦게까지 일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끈질김에서부터, 평생 동안 유지했다는 초인적인 끈질김까지,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모든 종류의 끈질김은 다 발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질적으로 끈질겼다. 끈질기다는 것은 대상이 필요하다. 잡스의 경우에는 제품의 대단함이 그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업이라는 것은 제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가 제품에 대해 끈질기면 끈질기수록, 그는 사업의, 그리고 삶의 많은 다른 가치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 혹은 충돌이 격해지기 전까지만 끈질긴다. 그렇지만 잡스는 끝까지 끈질겼다. 장애물(예를 들면 갈등)에 대한 두려움이고 뭐고, 그냥 대상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그는 끈질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끈질김이 바로 잡스와 잡스의 제품을 ‘대단하게’ 만들었다.
만약 끈질기게 무엇 하나를 뾰족하게 만들지 않으면, 사업 자체는 상당히 매끈하게 굴러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끈한 게 너무 많은 세상이다. 매끈한 건 이젠 과격하게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압도적으로 차별화된 무언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상향평준화의 시대에서 비즈니스질 하기) 아주 많은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하나를 뾰족하게 다듬는 게 중요하다는 건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상식처럼 여기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잡스의 평범함(?)
워즈니악이나 빌 게이츠와는 달리, 잡스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용법에서의 ‘천재’는 아니다. 잡스가 해낸 건, 사실 일반인들도 다 할 수는 있는 것들이었다. (???;;;)
무슨 말이냐 하면, 잡스는 애플II라는 전설적인 제품을 사실상 혼자서 다 만들거나(워즈니악), 고등학교 때 학교 컴퓨터를 해킹해 회계장부를 조작(게이츠)하지는 않았다. 이런 건 일반인들은 절대 흉내낼 수 없다. 잡스의 아버지도 잡스를 키우며 잡스가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잡스의 대단함은 일종의 ‘훌륭한 사진가’의 대단함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그 순간, 그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더라면, 나도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카파의 위대함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카파의 위대함은 바로 그 순간, 그 곳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수 있었던 용기에 있기 때문이다. 위대함이라는 것이 재능이나 기술보다 태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일 테다. 한 발만 내딛으면, 그 다음은 셔터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카파는 그러다가 끝내 지뢰를 밟고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작년에 유명한 보도사진가였던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을 보고 쓴 감상의 일부다. 잡스는 그냥 남들보다 일관성 있게 살았을 뿐이다. 그 일관성은 명확한 비전, 집중, 그리고 끈질김으로 구성됐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덕목은 아니다. 베토벤처럼 귀를 먹고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한다든지, 우사인 볼트처럼 달리다 말아도 1등 하는 것보단, 잡스처럼 사는 게 차라리 쉬워 보인다. 잡스의 삶이 바람직한 삶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잡스의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음을,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넘쳐남을 잊지만 않는다면.
출처: 바보들의 세상 아름다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