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학은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하려는 학문이다. 축적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옳다 그르다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상학에 드러나는 표현을 보면 사람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알 수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관상학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끼리 마주치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얼굴이고, 의사소통에 얼굴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얼굴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사회에서나 있었을 것이다. 얼굴을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방식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 그러한 면에서 관상으로 드러나는 관점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 건강상태
질병에 따라 예방과 치료 행동이 달라진다. 앓는 질환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특별한 진단 도구가 없던 과거에는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건강상태를 알아차리고자 했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도 관상가였다. 현대의학에서는 시진(示賑)으로 남아있다.
한의학에서는 망진(望賑)이라고 하여 ‘외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봄으로써 내장을 알고, 곧 병든 바를 안다’고 한다(『황제내경』, 영추·본장편).
2. 길흉화복
길흉화복이란 삶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찾아오지만 개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에 달린 것이다. 즉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외부의 흐름을 예측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점’과 그 목적이 동일하다. 사회 안전망이 없고 천재지변과 전쟁 등의 가능성이 많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클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에는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름대로 뭔가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20살에 부모님을 여읜다’ ‘35살에 크게 다쳤다’ 등의 일이 생겼을 때 그 인과관계를 ‘원래 정해진 일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예언이나 역술이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원래 정해진 일이니까 일어났다’고 하는 운명론적 관점이다.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어떤 사건에 개인의 책임을 배제시킨다고 볼 수도 있다. ‘몸이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면 다친 사람의 행동양식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혹은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과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다쳤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나쁜 일과 마찬가지로 좋은 일도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고 여긴다.
山根이 靑黑하면 四九前後에 定多災한다(코뿌리가 검푸르면 36세 전후에 많은 재앙이 든다).
- 진희이 저, 최인영 편역, 『마의상법』, 상원문화사
3. 빈부귀천
빈부는 재산을 의미하고, 귀천은 계급을 의미한다. 이는 길흉화복과도 유사한 개념이다. 하지만 외부의 흐름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재산과 지위를 중심으로 관상을 설명한다. 즉 재산이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좋은 관상이라고 여기고 그렇지 않을수록 나쁜 관상이라고 여긴다.
시험을 통해 관직에 등용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신분 상승 수단이었던 사회의 관점에서는,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현대에서는 계급과 신분의 의미가 없고 다양한 직업으로 성공할 수 있어 그 중요성이 다소 퇴색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경제적인 여건은 중요하기에 관상을 통해 빈부의 정도를 알아보고자 하는 현상은 여전하다.
대체로 관상에서 보는 관점은 ‘각자 살면서 이룰 수 있는 빈부귀천의 정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약간 운명론적인 부분도 있다. 동양에서는 ‘운’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그 운 안에는 본인이 하는 노력의 정도와 수준까지 포함된 것으로 여긴다. 외부의 흐름과 더불어 개인의 역량과 의지가 재산과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의 역량과 의지도 타고난다는 것이다.
4. 대인관계
관상학에서는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대인관계도 알아본다. 특히 배우자와 자손에 대한 내용이 많다. 연애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무래도 2세를 낳아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강한 본능이라서 그럴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의 덕을 보는지에 대해서 다루기도 한다. 이것도 관점에 따라서 길흉화복에 가까운 측면으로 해석된다.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의 영향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를 동양의 관상학에서는 ‘인복’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특정인을 지칭해 ‘귀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도움 될지 해가 될지 판단하기 위해 관상을 활용하기도 한다. 피타고라스는 친구를 사귀거나 제자를 받을 때 관상을 살폈다고 한다.
근대 서양의 관상학에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어떤 사람의 성향 자체보다 그로 인해 남이 받을 효과 내지는 피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 대 개인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길흉화복을 논하는 운명론적 관점과는 대비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심리학에도 내려왔다. DISC, MBTI 등 다양한 성격유형 검사는 개인의 성향과 대인관계에의 연관성을 측정한다. 더 나아가 많은 심리학자가 얼굴에 나타난 특징과 그 개인의 성향 및 대인관계를 연관 짓는 연구를 한다. 데이비드 페렛(David Perrett) 등으로 대표되는 매력 심리학에서는 얼굴에 나타나는 성적 특징과 그 사람의 매력도, 성격 등을 연관 짓는 연구를 해왔다.
5. 적성
적성이라는 개념은 가장 최근에 등장했다. 적성이라는 것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성을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의지와 역량을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외부의 흐름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 있어서 개인이 가지는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외부의 영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상을 통한 적성의 파악은 개인의 진로 혹은 조직 내에서의 인적자원관리에 주로 활용된다. 그래서 일부 기업에서는 면접을 볼 때 관상을 보기도 한다.
6. 적합과 부적합
우리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 닮았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닮은 사람일수록 조그마한 차이로도 서로를 잘 구분한다. 반대로 다르게 생길수록 구별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이를 타 인종 효과(other-race effect)라고 한다. 타 인종 효과와 관상학이 결합하기도 한다. 그 결합은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해부학자 프란츠 요제프 갈(Franz Joseph Gall)은 뇌와 성격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골상학’을 발표했다. 이는 ‘여성들의 두개골이 남성보다 작고 뼈가 약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범죄자의 얼굴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고 범죄자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인체를 측정했다. 그는 ‘우생학’의 시초이기도 하다.
우생학과 골상학의 만남은 서로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 격정적인 만남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골상학은 사람들의 외모로 그들의 내면을 판단했으며 우생학은 골상학을 근거로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을 나누었다. 정말 찰떡궁합이 아닐 수 없다. 둘의 만남으로 가장 흥분한 건 독일의 나치였다. 그로 인한 참사는 다들 알 테니 생략한다.
흥분이 가라앉고 현자타임이 도래하면서 우생학과 골상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다. 사람은 모두 존엄하다. 얼굴의 형태에 따라 그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관점은 지양해야 한다.
마치며
관상학에서 사람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살펴보았다. 이런 다양한 관점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여러 가지 태도와도 연결된다. 관상을 본다면 과연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참고
- 진희이 저, 최인영 편역, 『마의상법』, 상원문화사
- 허영만 저, 신기원 감수, 『꼴』, 위즈덤하우스
- 팽청화 저, 이상룡·김종석 공역, 『망진』, 청홍
- 이시모토 유후 저, 『인상학 대전』, 동학사
- 주선희 저, 『얼굴경영』, 동아일보사
- 설혜심 저,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