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법재판소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이유로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대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추종하여 폭력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은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되어 제재를 해야 하지만, 이석기 의원 및 전쟁 시 우리나라 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사람들(결정문을 보니 이분들이 긴긴 세월 해 온 이 밖의 다른 언동들도 많이 적시되어 있으므로, 이것만 문제는 아니지만)이 이 당을 장악했는지 여부(즉 이 당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단일 뿐인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또 장악했다고 해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키졸리브 훈련을 목전에 두고 전쟁의 위험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예비검속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이 한 조잡한 농담’(이들의 유머코드는 나와는 많이 다른지 농담이라는 말에 공감은 안가나)이나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어 여러 국가기밀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위험성으로 당을 해산시키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즉, 김이수 재판관의 반대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
반대로 인용결정은 이석기 의원 등이 당을 장악했고, 이미 국회에 진출한 점(결정문에 설시되지는 않았지만, 국방위원회라고는 전혀 없는 이 당 소속 의원들이 국방정보를 다수 요청한 사실에 위험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이해한다. 이석기 의원은 과연 KBS에 출연한 탈북자 명단을 받아서 무엇에 쓰려고 했을까? 당신이 탈북자라면 무섭지 않겠는가?)을 볼 때 이 당을 해산시킬만한 위험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대통령의 사적 복수 등 숨은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지만, 이 당이 해산된 공식이유는 단지 북한을 좋게 봐서도, 북한을 찬양해서도 아니고, 노동자, 서민을 위하는 진보정치를 하였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폭력적인 수단으로 우리 사회를 북한과 같이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먹어도 싼 헌법재판소 인용 결정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이 판결이 종북몰이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 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해산 결정은 북한식 사회주의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이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의 민주 헌정에서 보호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일 뿐이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새롭고 대안적인 생각들이 얼마든지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이 결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편 우리는 피청구인의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우리의 결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지난 1년간의 오랜 심리 끝에 나온 것이고 우리 재판부에서도 다른 시각이 있는 만큼, 과거에 위 주도세력과 무관했던 피청구인의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 공세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따라 결국 대한민국을 북한과 같은 국가로 만들자는 이념인 것이다.
2. 당원에 대한 고발, 다른 정당에 대한 공격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한다.
이 결정이 나온 바로 그날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 가입) 등으로 고발되었다. 그러나 이는 당원에 대해서 낙인과 이념적 공세를 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내용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므로,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결정문을 근거로 고발인을 무고죄로 고소하길 바란다. 비록 법리 오인으로 불기소처분될 것으로 보이나 부당한 종북몰이에 대해서 경고의 효과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등을 하였던 민주당 등 야권에 대해서도 위헌정당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추앙하는 이 결정문에서 지금 댁들이 하는 짓을 지적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다.
3. 눈 씻고 찾아 본 이 결정의 긍정적인 의미(부제: 이제 우리는 마음껏 공산주의자라고 외쳐도 상관 없어졌다)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은 종북몰이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종북몰이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이 결정문에는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 정당도 허용된다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어떤 국가기관도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물론 수단으로서의 PT독재나 폭력혁명은 포기한 유럽식 공산주의겠지)를 표방하는 정당도 허용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 판결을 가지고 자본론 읽으면 잡아가는 시절이 도래했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반응이다.
또한 헌법이 수호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사유재산제도와 시장질서를 포함시키지 않음로써 언제든지 우리 사회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까지 채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채택 가능한 체제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공부함은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제시를 하여도 반국가세력으로 몰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자본주의 혹은 국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빨갱이 운운하는 무리들에게 헌법재판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한 거라고 당당하게 대꾸하자. 거기에 불만을 가지면 왜 대한민국 국가기관에 대해서 신뢰가 없냐고 반문하면 되겠다.
4. 결 론
결정문이 공개되기 전 많은 해산 반대자들이 이제 불어올 공안 태풍에 대한 우울한 시나리오를 그렸다. 그리고 실제로 당원에 대한 고발이나 민주당에 대한 해산심판요구 등 그 시나리오에 부합하는 행적들이 보였으므로, 당연한 반응이기는 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러한 반응도 헌법재판소 결정이 북한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는 극우단체의 반응과 같은 프레임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쓴다니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무기 삼아 친북좌파척결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폭력혁명을 통한 대한민국의 북한화외에는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시각으로 대응해 보는 게 그마나 이 상황을 지혜롭게 해쳐가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