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이 논쟁구도는 역사가 꽤 깊다.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대공황 시기, 루스벨트의 온갖 정책에 미국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펑펑 때려 댄 시기에서부터다.
열이 바짝 오른 루스벨트는 대법원에다가 거의 전쟁선포를 하고는 법관 물갈이를 해버리려고 했다. 대법원 입장에서도 나라는 다 망해가고, 대통령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려는데 계속 딴지 놓는 형국이 되니 눈치가 보여서, 왠만하면 이러지 말자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갔다.
이 논쟁이 바로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논쟁이 가시화된 시기이다.
사법부는 선출된 권력이기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
정부와 의회권력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면서, “그래, 믿을 건 법원이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되면서 사법적극주의가 ‘적극적으로 소비’되던 시기가 있었다. 이걸 가장 잘 써먹은 이가 사실은 이회창이었다. 대법관 출신이었으니, 사법적극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했었다.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 중에서도 이런 사법적극주의를 따르기도 했다.
그만큼 입법부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겠지만, 이번 헌재판결을 계기로 ‘사법적극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충분히 공감되었으리라 본다.
사법부는 첫째로 선출된 권력이 아니며, 둘째로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으며 보수적이어야 하는 권력이다. 이런 권력이 적극적으로 권력행위에 개입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미국 대공황 시기의 대법원에서 시작된 사법적극주의의 연혁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나.
행정수도 위헌 판결, 이런 곳을 마지막 보루로 삼아야 하나
사실 이보다 더더욱 위험한 판결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이었다. 탄핵도 민중의 저항이 아니었다면 위태위태했었다는 후문을 듣기도 했었다.
행정수도 위헌 판결에서 헌재는 소위 ‘관습헌법’을 들고 나왔는데, 법학 학사 자격으로 평가하자면, “인류의 법학 역사에서 길이길이 기억될 희대의 개또라이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는 전효숙 재판관의 소수의견에 잘 정리되어 있다.
1. 헌법학은 실질적 의미의 헌법과 형식적 의미의 헌법을 구별하며,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헌법개정절차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음. 형식적의미의 헌법이 아닌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법률개정절차에 따르도록 한다. 그런데 우리 법률상 수도규정은 법률로 이미 규정되어 있으므로, 관습법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며, 설사 관습헌법이라 하더라도 이는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법률개정사항이다.
2. 관습헌법을 선언한다 함은, 헌법 조항의 새로운 창출이며, 이는 헌법제개정사항이다. 법원이 이를 선언함으로 인해 그들은 헌법개정권력의 권력을 침해하였다. 이는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사법권력을 경계할 때
이번 통진당 해산사태에 대해서는, 사실 말이 조심스러워 진다. 기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헌법상의 절차를 따른 것이다. (의원직 상실 여부와 같은 법조문상의 흠결을 메꿀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민주주의의 관점과는 별개로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차상 하자가 본질적이라 하기 힘들다. 나는 정치적으로 이번 판결이 매우 위험한 판결이라 생각하며, 법치적으로 생각할때 본질적으로 위헌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이제 시민사회가 ‘사법권력’의 위험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