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명훈 선생이 사의를 표했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며 몇 가지 짚어야 할 사안들을 기록하려 한다.
1. 서울시향의 문제와 박현정 대표의 언행
서울시향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몇몇 직원들의 근태가 불성실하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대표의 폭언과 성희롱, 인격 모독은 용납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서울시향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박 대표를 감싸고 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이라면 언제든 상사에게 폭언과 모욕을 당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땅콩 부사장 조현아를 비난하면서 박현정 대표를 감싸는 모순적인 발언이 스스로에게들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조직에 문제점이 있다면 냉정하게 지적하며 개선하면 그만이다. 그 정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대표 자격이 없다.
공식적으로 확인 되지 않은 조직의 문제점을 근거삼아 인격 모독과 폭언, 성희롱을 두둔해선 안 된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2. 기업인들은 과연 만능 해결사인가?
박현정 대표의 커리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각종 단체의 요직에 기업인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에서 쌓은 커리어가 과연 특수성을 지닌 각기 다른 단체의 운영에 도움이 될까? 우리는 전설적인 기업인 이명박이 어떻게 이 나라를 운영했는지 직접 겪은 산증인들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업인 출신들이 만능 해결사처럼 여겨지는 풍토가 남아있다.
박 대표의 음악계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가 지금의 비극을 낳았다. 그녀가 보기에 지휘자 정명훈이 누리는 혜택이 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에 몇 안 되는 거장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았고, 음악계의 관행에서 어긋난 연주 일정도 없었다.
실제로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하며 받는 대우는 그가 1992년 바스티유 오페라단에게 제의받은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과 세계적으로 거장 지휘자들의 몸값이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계산기 굴리지 않고 아주 쿨하게 서울시향의 지휘를 맡아준 셈이다.
음악계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인 출신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광경을 이제는 그만 봤으면 한다.
3. 정명훈 가치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높다
한겨레 칼럼에 따르면 정명훈이 그리 대단한 사람 같지 않은데,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몸값 논란에 대해서는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의 이 글이 훨씬 정확하다. 한마디로 정명훈의 가치는 매우 높다.
세상에 이유 없이 지불되는 돈은 ‘거의’ 없다. 정명훈의 지휘는 시장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다. 참고로 정명훈이 온 이후 유료관객률은 30%대에서 80%에 육박하고 있다.
다시 말하기도 입이, 아니 손가락이 아프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명훈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거장이다. 그의 음악성과 세계적 평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4. 예술가의 개인적인 흠과 정치적 견해는 구분해야
예술가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다. 누구도 완전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흠결이 있고, 과오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한 부분은 예술가의 예술적 성과나 업적과 구분해서 지적하거나 비판해야 한다.
정치적 견해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예술가를 비난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을 정치, 특히 자기 진영의 정치와 떼놓고 생각 할 수 없는 ‘진영 논리’에 물들어 사리분별을 잃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 때 빛났던 총기를 잃고 거듭된 헛소리로 자기 진영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지탄을 받는 탁현민을 들 수 있겠다. 탁현민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5. 정치논리에 파묻힌 정명훈 공격
이처럼 몇몇 좌파 지식인들은 지휘자 정명훈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 ‘목수정’이 정명훈에게 대단한 결례를 범하고도 적반하장으로 자의적이고 악의적인 글을 올려 그를 비난한 이후 일부 좌파 지식인들이 정명훈을 힐난했다. (소수진보정당 소속 운동가들이 보기에 대표적 예시로 든 탁현민이 좌파가 아닐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 눈에는 그나물에 그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상식적인 시민의 주류는 목수정의 무례함을 탓했지만, 자기 진영끼리 똘똘 뭉쳐 바깥 이야기에는 귀를 닫는 그들에게 있어, 정명훈은 세계적인 거장이 아니라 또 하나의 수구꼴통으로 여겨질 뿐이다.
목수정 사건으로 인해 지휘자 정명훈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어느 정도 드러났고, 예술과 정치를 구분지어 생각할 줄 모르는 몇 몇 좌파 지식인들에게 정명훈은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이번 서울시향 사건이 터지자마자 언론 칼럼 등 여러 지면에서 좌파 지식인 딱지를 단 이들이 쏟아낸 수준미달(음악계의 현실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혀 모르고 쓴)의 원색적인 비난을 보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신해철이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의 음악성까지 폄하한 극우 꼴통들과 도대체 다를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신해철 사건에서도, 이번 사건에서도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진영 논리의 병폐를 본다.
모든 현상을, 심지어 예술까지도 자신들의 정치 진영의 논리와 결탁시켜 사고하고 판단하는 이들이 이 사회의 정치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는 주범이다.
6. 대체 무엇이 대중을 위한 예술인가?
탁현민을 위시한 몇몇 이들은 정명훈의 음악, 나아가 클래식이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들에게는 민중가요와 노동요 정도가 서민적인 음악일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야말로 서민과 대중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규정시키는 뼛속까지 엘리트 주의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과연 예술의 전당에, 클래식 공연장에, 또 발레나 뮤지컬이 열리는 곳에 단 한 번이라도 가보고 저런 말을 지껄이는지 묻고 싶다.
지금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클래식이나 발레를 감상하는 시대가 또 언제 있었던가.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시향의 연주를 즐기면 더 이상 서민이나 대중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또한 그들이 말하는 서민이나 대중은 클래식이나 발레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없는 계층이라는 뜻인가. 서민과 대중을 들먹이는 지식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서민과 대중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탁현민이 참여했던 윤도현 밴드 콘서트의 티켓 가격은 10만원 전후를 오간다. 서울시향의 공연 티켓 중에는 그보다 비싼 것도 있지만 그보다 저렴한 것도 많다.
가격 비교로 탁현민과 그의 동조자들을 조롱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공연’, 나아가 ‘문화 예술’이 늘 저렴하고 무료여야만 서민과 대중을 위한 것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후진적이고 천박한가! 서민과 대중도 얼마든지 다양한 취미를 향유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문화 예술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7. 위대한 마에스트로를 보내며
이제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가까이서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를 보기 힘들어질 것 같다. 분명한 건 지난 시간 정명훈이 지휘하는 공연을 자주, 가까이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서울’은 내게 제법 괜찮은 도시로 여겨졌다.
앞으로는 프랑스나 독일, 네덜란드의 라디오에서 서울시향의 연주를 소개하며 틀어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따금 유럽의 유명 악단과 함께 내한해 지휘하는 그의 공연을 더 비싼 값을 주고 봐야 할 것 같다.
할 말은 끝이 없지만 이쯤에서 줄인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마에스트로의 공연을 자주 볼 수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