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스토리 콘텐츠, ‘막장’
“막장이 대세다.” 한국 스토리 콘텐츠 시장에 대한 최근 논의들은 ‘막장’에 주목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인 탄광,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을 뜻하던 ‘막장’은 21세기 한국의 문화콘텐츠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조금 다른 의미를 띄게 됐다.
요즘 주목 받고 있는 ‘막장’ 콘텐츠란, 일반적인 삶에서는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자극적이고 우연적이며 때론 황당하기까지 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콘텐츠를 말한다. 깊은 사랑 끝에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알고 보니 어릴 때 생이별한 남매였다든가, 주인공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아내의 얼굴에 점 하나만 찍으면 생판 남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한국 문화콘텐츠의 ‘막장’이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비현실적인 배경은 애교다. 그들은 나이 서른에 이미 실장님, 대표님 직함을 가지고 있거나(물론 한국에선 재벌기업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긴 하나), 아예 그냥 대놓고 재벌 3세거나, 한류 슈퍼스타거나, 심지어 외계인일 때도 있다. 한 술 더 떠 이런 어마무시한 남자들이 평범한 여주인공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한다. 현실에서는 이들이 서로 얼굴 마주하고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막장 콘텐츠의 속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1. 비현실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이 연달아 등장한다.
2. 보는 사람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설정이 갖춰져 있다.
이런 막장 콘텐츠의 유행을 일시적이거나, 혹은 한국에 국한된 ‘김치병’으로 낮춰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경우를 놓고 보면, 한국의 막장 드라마는 일본과 중국, 대만을 넘어 동남아에까지 그 ‘마수’를 뻗쳐, 중국 시어머니가 한국의 혼수문화를 언급했다는 괴담까지 낳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막장 스토리 콘텐츠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일종의 ‘보편 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대체 무엇이 ‘막장’ 콘텐츠를 그토록 사랑받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감정의 배출구 역할
‘화병’이라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너도 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런 병명은 사실 의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학계에서는 ‘Hwabyeong’이란 용어로 한국형 문화 의존 증후군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이지만, 한국인들은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될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장애’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을 화병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반증이다.
화가 꽉 막히는 ‘울화’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스트레스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고 유유자적 사는 것, 그래서 화가 쌓일 만한 일 자체를 막는 원천봉쇄가 그 첫 번째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거다. 못한다, 그냥.
두 번째는 일단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감정을 시원하게 배출해 버리는 방법이 있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쉽다. 엉엉 울어버려도 되고,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에게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번 하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대상에게 욕을 퍼부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다소나마 가슴이 후련해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보통 억울한 일,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란 가까운 관계나 권력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키는 대로 욕을 하다 보면 제대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가, 당연히 힘들다. 더구나 그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상급자라면? 몸 잘 사려야 한다. 집 나가면 타향이요, 회사 나서면 시베리아다. 그리고 요즘은 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특히 더 어려운데, 인터넷 등 매체 때문에 사회 관계망이나 이미지 관리가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까딱하다간 ‘인생은 실전이야’라는 진리를 깨우치게 될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게 막장 콘텐츠다. 더 이상 직접적 감정 표출이 어려운 현대인들, 이 불쌍한 영혼들로 하여금 가슴 속에 쌓인 억하심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막장은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아니, 이야기 전개가 탱탱볼처럼 멋대로 흘러갈 뿐인데 뭐가 그리 거창하냐고?
막장 콘텐츠에서는 불합리하고, 부정한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 선량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인물과 사건들을 보며, 사람들은 마음껏 그 인물과 상황을 욕할 수 있다. 만들어진 이야기에 대해 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발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우려도 없고, 내상도 상대적으로 덜 하다. 보는 사람들은 막장 콘텐츠의 극한 상황을 소비하면서, 가공의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고 욕을 하며 그 스트레스를 푼다. 그렇게 가짜 스트레스를 배출할 때, 실제 스트레스도 슬쩍 얹어서 내보낼 수 있다면 효용성은 커진다.
막장 콘텐츠는 이런 방식으로 ‘대리 카타르시스’를 통해 소비자를 사로잡는다. 더구나 거기에 이상적인 남자 주인공과의 연애라는 판타지까지 더불어 제공하니 금상첨화가 아니랴!
욕설과 콘텐츠, 그들이 만날 때
광고 영상은 그런 자사 콘텐츠의 특징을 정면으로 노리고 오히려 뒤집는 의도로 짜여 있었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에서 영상 속 인물들은 ‘어머 X팔’이라며 욕을 하고, 웹소설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감정 분출구’로서 막장 콘텐츠가 뭘 해야 하는지 캐치한 센스다.
도시에 갇힌 현대인, 특히 여성들이 막장으로 쌓이는 감정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다소간 슬픈 일일지 모른다. ‘반도’의 유구한 전통에서 여성은 주로 ‘참을 것’을 강요당해 왔고, 여전히 가족들로부터, 직장에서,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여자들은 딱히 하소연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막장을 찾는다. 막장 콘텐츠 속 가상의 인물들을 욕하고, 그 상황에 어이없어 하고, 판타지에 몸을 맡기며 조금이나마 시원함을 느낀다. 욕을 할 때만큼은 카타르시스는 평등할 수 있다.
대개 막장 콘텐츠는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막장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 역시 백안시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막장 콘텐츠가 남다른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다 쓸모가 다르듯이, 콘텐츠 역시 각각 다른 나름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 땅에 온다. 막장은 막장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욕설을 천하게 여기지만, 욕 없이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 X팔, 일단 좀 풀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