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당장 이 글에 달린 댓글만 해도 찬성, 반대, 동조는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섞여 있다. 고로 아마 추측컨데 국내에서는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들거나, 한국 3종 세트(아래 트윗 참조)가 관련된 담론의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본다. 정규직 때문에 비정규직이 힘들고 함부로 해고도 못해서 기업이 힘드니 중규직을 만들자는 판에 사실 이런 성격의 토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imaum0217 “한국형” “한국에서는 시기상조” “한국 실정상 무리”
— Kim9 (@hwkim_9) 2014년 12월 3일
대부분의 우려는 이러한 자율 휴가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근무 태만과 남용에 대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과도기가 존재해왔고 그 과도기에 대한 우려로 변화 자체를, 심지어 토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 말씀처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중고등학교에서 복장 두발 자유화를 실시한다고 치자. 아마 한동안은 난리도 아닐 거다. 소풍 전에만 옷을 사고 코디를 하고 방방 뛰는 게 아니라 매일같이 어른들이 보고 있으면 복장 터지는 일이 상당히 많이 일어날 거다. 행여나 자식이 외모에 신경 쓰느라 성적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님들 중에 상당수가 해당기관에 각종 압력을 넣거나 공청회를 열거나 피켓 들고 거리로 나가겠지.
그런데 과연 학생들이 365일 내내 저러고 살까.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게 반항아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고 싶으면 언제나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되면, 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이상한 선망은 점차 사라지는 게 정상이다. 365일 입고 다녀야 하는 옷에 과연 이전에 1년에 두 번 소풍가기 위해 새로 사던 옷과 같은 유별나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 정도의 돈을 쓰고, 그 정도의 정성을 들일까? 학생들이 과연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될 거라고 보시는가? (물론 드라마에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인물이 나온다고 그 드라마 보는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에게야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시절 엘리트 계급은 우민(+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각종 혼란을 경고했고, 통일 이전의 독일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바로 통일 후에 발생할 각종 혼란 및 경제적 부담이었다(실제로 통일 후 서독이 부담한 비용은 약 1조 5000억 유로, 한화로는 1800조원에 달한다).
변화에 대한 극심한 염증을 가진 개인과 시스템은 과도기에 일어날 현상들을 하나 하나 근거로 내세우며 변화 그 자체를 반대하는데 이용한다. 이 기사의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이런 내용이 한국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을 때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생각해보니 사람과 시스템마다 다른, 변화와 과도기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모습들이 떠올라 꽤 흥미로웠다.
원문: The real reason unlimited vacation policies work by Mike Volpe (CMO of Hubspot)
대부분의 미국 회사에서 휴가는 ‘허가서’라는 가장 긴장되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휴가를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 누적되면 상사에게 요청을 해야 하고, 그래서 때로 이건 어른들의 휴가라기 보다는 5학년이 소풍을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전히 참 많은 회사들이 이러한 종래의 휴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HubSpot(필자가 CMO로 일하고 있는)은 이것이 구식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직원들이 일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일을 설계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미국 회사에서는 오직 13퍼센트의 직원들만이 일을 하느라 바쁘다(참고: Gallup). 직원들이 오후 5시에 문을 나서는 것만 기다리고 있을 때는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 유연성의 증진
오늘날 재능있는 인재들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해, 회사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걱정하는 데 쓰는 시간을 줄이고, 그들이 어떻게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현대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제한 없는 휴가 정책은 직원들이 9시부터 5시라는 근무 시간 중에도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직원들이 휴가를 학수고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우리는 몇 년 전 우리 엔지니어 중 한 명이 회사 전반에 걸친 큰 계획을 위해 끊임없이 야근을 했을 때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엔지니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마침내 목표점에 도달했고, 그는 이전에 요청했던 휴가를 허가 받기 위해 CEO인 Brian halligan를 찾아갔다.
여기엔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 그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할 수 있지만, 허가가 없이는 그에게 단 하루의 휴가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것은 CEO인 Brian의 생각과 맞지 않았고, 우리는 그 때부터 제한 없는 휴가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드랍박스, 구글 문서 도구, Go To Meeting과 스마트폰은 아무런 지장없이 사람들이 어디서든, 언제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왔다. 그리고 회사들은 직원들이 사무실에 있는 날짜가 아니라 그들이 생산하는 결과로 평가함으로써 이 변화를 포용해야만 한다.
당신의 회사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무정책’ 정책의 핵심은 이 정책이 조직문화에 얼마나 적합하냐에 달려있다. 만약 당신이 알맞은 사람을 고용한다면, 제한 없는 휴가 정책은 프로젝트의 기한을 놓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등의 결과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인재들은 그들이 당신의 비전으로부터 동기부여 받는 한,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일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 받는 한 게으름 피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직원들의 휴식을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점은 직원들이 그들의 일과 삶 간의 균형에 있어 무한한 융통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미국 근로자들이 이미 올해 휴가철에 귀향길을 준비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제한 없는 휴가 정책을 가진 회사들은 이를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왜냐면 직원들은 저렴한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 일찍 떠나는 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고, 혼잡하고 붐비는 때를 피해 휴가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의 휴가와 삼일의 휴가 사이의 차이는 당신의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직원들에게는 중요하다. 이것은 더 적은 두통과 더 적은 스트레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보다 큰 고마움을 의미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제한 없는 휴가 정책이 마일리지 적립(여행)보다는 시간 관리(자신의 시간에 대한 자율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직원들은 여섯 달을 기다리는 대신 오후에 의사와의 진료 일정을 예약하고, 이른 아침에 그들이 사랑하는 요가 수업을 듣고, 또는 혼잡한 퇴근길을 피하기 위해 3시에 사무실에서 나섬으로써 이 정책에서 이득을 얻는다.
이렇게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나가는 게 휴가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직원들이 휴가를 가지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이런 재량권이 있을 때 직원들은 더 열심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생산적으로 일한다.
추수감사절에 받는 스트레스는 당신의 멋진 이모가 당신의 사생활을 캐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회사는 직원이 받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것이 아니라 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쓸모없는 요청서를 작성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 주: 해당글에 달린 댓글 몇 개를 아래에 함께 정리해둔다.
이건 한정적으로나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내 회사는 소규모의 로펌이고, 마감 기한을 맞추고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항상 충분한 직원들이 사무실에 있어야만 한다. 이게 현실이다.
→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그냥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 이성적으로 휴가를 계획할 것이다.
역시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게 장땡이다. (…)
이게 직원과 관리직, 그리고 직원과 직원사이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그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년에 50일의 휴가를 사용하고 어떤 사람들을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압박 때문에 12일의 휴가를 사용한다면? 만약 할당된 목표가 일년에 20일에서 25일의 휴가마저 못 누릴 만큼 과도한 것이라면?
→ 글쓴이 답변: 우리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연간 최소 2주에서 무제한으로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2주는 미국의 평균 휴가일수이다. 더블린과 시드니의 우리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적어도 3-4주의 휴가를 누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직원들이 언제나 그들이 원할 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도록 독려한다. 규칙을 설정하고 사무실 안의 모든 것을 관리감독하는 일은 당신이 당신의 직원들이 옳은 일을 할 것임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글쓴이의 또다른 댓글: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의 계약서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휴가를 누릴 수 있는지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압력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직장동료들, 고객들, 그리고 매니저 등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휴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이 모든 절차를 밟거나 매니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될 때, 직원들이 12월에 충분히 휴가를 갈 수 있는지 달력을 보며 매번 날짜를 헤아리지 않아도 될 때, 급히 집안에 일이 생겨서 휴가를 사용하느라 그들의 여름 휴가를 취소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동의하는 댓글.
만약 당신이 휴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할만큼 바쁘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적신호다. 이는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당신의 책임을 충분히 할양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거나, 또는 당신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당신의 지위가 당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는 것이거나)
원문: DAR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