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실미도>가 최초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래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태극기 휘날리며> <아바타>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등 12편의 천만 관객 영화가 탄생했다. 천만 명이 관람하는 영화는 뭐가 다를까? 애초에 천만 영화를 기획한다고 해서 의도대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의 공통점 10가지를 꼽아봤다. (이 글은 영진위 전종혁 연구원의 분석을 참고했다.)
1. 방학에 개봉하라
한국영화의 최대 시장은 8월이다. 올해 3200만명이 8월에 극장을 찾았다. 극장은 가장 저렴한 피서지이자 가장 접근하기 쉬운 문화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8월 다음에는 1월 성적이 좋고 12월, 7월, 2월 순이다. 올해 가장 관객수가 적었던 4월에는 고작 900만명이었으니 8월에 비하면 3.5배 차이가 난다. 천만 관객 영화 12편 중 4편이 여름방학, 7편이 겨울방학에 맞춰 개봉했고, <광해>만 유일하게 추석 개봉작이다.
2. 명절 2주전에 개봉하라
비록 방학 시즌에 밀리긴 했지만 명절은 여전히 대목이다. 특히 설날엔 드라마, 추석엔 사극이 잘 된다. <광해>는 추석, <7번방의 선물> <겨울왕국>은 설날에 맞춰 개봉했다.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더 길어진 명절을 겨냥한다면 1주 전에 개봉하는 것보다 2주 전에 개봉하는 것이 유리하다. 추석 시즌을 노린 비슷한 사극이지만 <광해>가 천만을 넘은 데 반해 <관상>이 천만 영화가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를 개봉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광해>는 개봉 3주차에 추석을 맞으며 뒷심을 발휘한 반면 <관상>은 개봉 2주차에 이미 추석이 지나면서 3주차에는 흥행세가 주춤해졌다.
3. 첫 주말 1위를 차지하라
지금까지 첫 주말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된 경우는 없었다. <해운대>는 첫날부터 22일간 박스오피스 1위로 독주했고 그 뒤로는 1위를 <국가대표>에게 물려줬지만 결국 개봉 34일만에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반면 1주 뒤에 개봉한 <국가대표>는 <해운대>에 밀려 2위를 고수하다가 개봉 16일차에 1위로 올라서 그 뒤로 무려 28일간 1위를 지켰다. 그러나 <국가대표>의 최종 스코어는 800만 명에서 멈췄다.
4. ‘개싸가리’를 내라
개봉 2주차 관객 수가 첫 주말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을 때 “개싸가리가 났다”고 한다. 일본어에서 차용한 영화계 은어인데 많이 변형돼서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다. <괴물>은 개봉 첫 날 39만 명을 동원했는데 2주차 월요일에 45만 명으로 더 늘었다. <도둑들> 역시 첫 날 43만 명에서 2주차 월요일 49만 명으로 늘었다. <명량>과 <군도>를 비교해보면 ‘개싸가리’ 효과가 확연히 드러난다. <군도>는 개봉 둘째 주에 관객 수가 반토막 난 반면 <명량>은 둘째 주에도 관객 수가 줄지 않았다. 비슷하게 압도적인 오프닝 스코어로 시작한 두 영화의 최종 흥행 스코어가 엇갈린 지점이다.
5. 스크린수는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스크린수는 배급의 힘에서 나온다. 첫 주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많은 스크린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크린수가 많은 것이 꼭 천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좌석 점유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기미가 보이면 극장은 바로 스크린 수를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경우 개봉 당시 1154개의 스크린으로 사상 첫 1천 개 스크린을 넘어서며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최종 관객 수는 739만 명에 머물렀다. 개봉 첫 주말 1005개의 스크린을 잡은 <퍼시픽 림>은 2주차 좌석 점유율이 45%에서 13%로 30%포인트 가량 급락하면서 최종적으로 253만 명에 그쳤다.
6. 센 놈과 함께 붙어라
시장에서 단독으로 천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다. 대부분 쌍끌이로 흥행에 성공했다. <실미도>에겐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있었고, <해운대>에겐 <국가대표>가, <7번방의 선물>에겐 <베를린>이, <도둑들>에겐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겨울왕국>에겐 <수상한 그녀>가, <명량>에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있었다. 이렇다할 경쟁작이 없었던 영화는 <광해> <왕의 남자> <변호인> 뿐이었다. 극장가에 볼 만한 영화가 한 편 있을 때보다 여러 편 있을 때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천만 관객이라는 아웃라이어가 탄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7. 시대와 관객을 후킹하라
천만 영화의 이야기는 시대성을 갖고 있다. 10년 전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분단, 한국전쟁 등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됐고, 5년 전엔 <해운대> <아바타>처럼 물량으로 승부하는 영화가 먹혔다면, 최근엔 <광해> <변호인> <명량>처럼 리더십에서 교훈과 감동을 찾는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 천만 대중과 통하려면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재미와 유머가 있거나 혹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 또 천만 관객 영화 중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은 한 편도 없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8. 러닝타임은 2시간을 넘겨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제외하고 천만 영화의 공통점은 2시간이 안 되는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아바타>가 162분으로 가장 길고, <태극기 휘날리며> 148분, <실미도>가 135분에 달한다. 최근엔 <도둑들> 135분, <명량> 128분, <변호인> 127분으로 모두 2시간을 조금씩 넘고 있다. 가장 짧은 영화는 <괴물>과 <왕의 남자>로 모두 119분이었다. 상업영화에 가장 많은 100분 짜리 영화는 의외로 천만 관객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큰 스케일을 담기 위해 러닝타임이 길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반대로 대중이 같은 영화라면 짧은 영화보다는 조금 긴 영화를 대작이라 여기고 극장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9. 믿음직한 중년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라
천만 한국영화의 주연 배우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김윤석, 이병헌 등 중년 남자 배우가 대부분이다. 류승룡은 <7번방의 선물> <광해> <명량> 등 세 편의 천만 영화에 출연했고, 영화마다 감초 역할을 하는 오달수는 <괴물>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등 무려 네 편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다. 중년 남자 배우는 믿을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추고 있고, 관객 신뢰도가 높아 다양한 연령층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10. 커진 시장에 적응하라
한국 영화시장의 전체 관객 수가 매년 증가하면서 최근 들어서는 천만 영화의 탄생 빈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해마다 1편씩 나오던 천만 영화는 2년간 없다가 2009년에 두 편, 그리고 2012년부터 다시 매년 2편씩 등장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면서 천만 영화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졌는데 <실미도> 9.3% <태극기 휘날리며> 8.7% <괴물> 8.5% <해운대> 7.3% <아바타> 8.7%였던데 반해 최근작은 <도둑들> 6.7% <광해> 6.3% <7번방의 선물> 6% <변호인> 5.3%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전보다 천만 영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는 것은 조금 더 쉽게 천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장의 꾸준한 성장세가 유지된다면 천만 영화를 기획하고 예측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원문: 레이와이의 영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