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 명멸해간 단체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해방 공간에서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던 각종 단체들의 가입 인원들을 합치면 총 인구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지만 제법 그럴 듯해 보이다가도 역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래성같은 단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 실로 악마적으로, 그리고 깊숙하고도 굵직하게 우리 현대사에 남은 단체가 있다. 그 이름에서는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고 탄내가 가시지 않는다.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평양의 기독교 청년들, 남한으로 넘어오다
조선 팔도 가운데 기독교 교세가 가장 강한 도는 어디였을까? 평안도였다. 장준하 선생같은 사람은 선천 사람 태반이 예배당에 가는 기독교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거니와 평안남도는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았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서의 전통이 유구했다.
그런데 이 평양에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하고 “상직자 1명은 1개 사단과 맞먹는다.”는 레닌의 주장을 신봉하는 소련군이 진주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부 조직을 갖춰 나간다. 여기서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북한 당국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불문한 기독교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일찍이 조선 팔도 기질에 대한 평에서 ‘맹호출림’이라는 표현을 득한 바 있는 평안도 사람들의 부아를 뒤집어 놓았다.
수많은 북한 청년들, 그 중에서도 기독교 청년들이 빈손으로 38선을 넘어 왔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주먹과 공산당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밖에 없는 이 청년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평안도 출신들 뿐 아니라 황해도, 함경도 등 이북에서 살다가 넘어온 사람들도 몰렸다. 이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북청년회’의 깃발을 들어올린다. 서북청년단의 공식 명칭은 서북 청년회였다.
가장 비기독교적인 학살을 자행한 기독교인들
그들이 하는 일은 사실 경찰이나 군대가 하기 힘든, 지저분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으면서 동시에 그 적개심을 빨갱이에게 털어놓는 일이었다.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제주도에 보내진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에서 실컷 제주도 사투리를 쓰다가 자꾸 과거 얘기가 나오자 정색을 하고 평안도 사투리로 “이제 그만 하라마 ”를 부르짖던 ‘이모부’가 등장하는데 바로 그가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였다. 정규군이나 경찰이 아니기에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현지 조달하라’는 명령에 따라 충실한다.
자신들에게 보급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한 섬의 지방 관청 총무부장을 두들겨 패 죽여 버린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을 사탄에 대한 그것과 동일시헸다. 사람의 가슴에 죽창을 박으면서도 ‘하나님!’을 부르짖었고 사람을 태우면서 찬송가를 불렀다. 그들이 빨갱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있었다. 워낙 사람들을 많이 죽이다보니 쓸려들어온 우익 인사도 용서가 없이 죽였던 것이다.
영화 <지슬>에서 “우리 오마니도 빨갱이 손에 갔소.”하면서 할머니를 불태워 죽이는 모습의 평안도 사투리 군인은 바로 그들의 대변일 뿐이다.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그들은 가장 비기독교적으로 사람을 학살했고 열정적인 신앙으로 십계명을 어겼다.
새누리당으로부터 우파 좀비라 불린 그들의 후예
그들이 역사 속에 그 깃발을 올린 날 하나 돌아보고 싶은 것은 그들이 지녔던 ‘적개심’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서다. 대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닌 증오고 믿음에 의거한 행동 아닌 배신이다. 서북청년단은 자신들이 박해받고 배신당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증오를 합리화했고 그를 반공과 결부시켜 나아갈 바를 삼았고 그 나아가는 길에 널린 모든 방해물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애국으로, 신앙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증오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만개된 증오의 열매의 씨앗 가운데에는 그들이 뿌린 것도 많았다. 오늘도 우리는 일베에서 그들의 정신적 후예를 본다. 그런데 하나 돌아볼 것은 그들을 증오하는 감정에는 그들을 닮은 것이 없을까이다. 대개 잔인함에 대한 가책을 삭감하는 것은 정의감이고 이성과 합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무기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북청년단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이 1946년 11월 30일 그 피에 물들 깃발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전 어느 또라이들이 이 피비린내나는 단체의 이름을 ‘재건’했다. 또라이라고 감히 부르는 이유는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들어보자.
“서북청년단 재건위, 자폭 방법도 참 요란하다. 과대망상증 환자들이라 자기 역량에도 맞지 않는 이름을 갖다붙였다…….좌파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극우 망상증 환자들, 우파 내에서 척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종북도 척결 대상이지만 극우도 척결 대상이다. 좌좀(좌파좀비)이란 말이 있다.서북청년단 재건위는 우좀(우파좀비)이다. ”
피처 이미지: 김충희 화백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