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아들의 신상을 여겨서가 아닙니다.
덕수 영감은 시방 아들이 뭘 내놓으라고 시위를 했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소대장이 베트콩 총알에 맞아죽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불법시위라니? 으응? 으응?”
덕수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 소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으응? 그놈이 총파업을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덕수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김사장님 친아들처럼 하라닝개루, 생판 정규직이 어쩌고 파업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으응……? 오―사 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시위를 히여? 밥 안굶고 남으 나라 광부까지 해서 먹여살린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덕수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덕수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베트콩이 있너냐아? 희멀건 괴물같은 코쟁이들이 있더냐……? 소가 있대야 지리산 빨치산 것이요, 한강 다리는 없어지고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경찰이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김일성이 그 빨갱이 놈 막으려고 바다 건너에서 몇만을 파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밥도 안 굶어본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일이나 하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여 선 가권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착착 깎어 죽일 놈……! 민노총인지 뭐시깽인지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경찰더러 몽둥이로 패 쥑이라고 헐걸! 종북 빨갱이들 쏴죽이라 할거여…… 오냐, 그놈을 나중에 가게 권리금이나 물려줄까 히였더니, 오―냐, 적금을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좌익활동 하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 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앉아있던 영자와 달구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나랏님이 G7 회의까지 열어놓고 경제효과가 사백 오십조라는 마당에, 먹고 살 길이 읎어서 독일도 안 가고 베트콩 잡으러 가지도 않는 마당에,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뜩이나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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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채만식 – <태평천하>
*원저자의 요청으로 부분 편집되었습니다.
출처: 잉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