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커트 실링’이라는 이름에 대해 들어봤으리라.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김병현이 소속되어 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랜디 존슨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원투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2004년 보스턴을 우승시킬땐 기적의 리버스 스윕이 일어났던 ALCS 6차전에서 피묻은 양말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바로 그 선수다.
커트 실링은 예전부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데 있어 주저한 적이 없었다. 공화당 지지자로 유명한 실링은 또한 골수 기독교 신자로도 유명한데, 트위터 프로필에도 ‘크리스챤’이라는 단어를 빼지 않고 넣어뒀다.
11월 12일, 커트 실링은 트위터를 통해 ‘Evolution: Modern Myth’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을 링크했다.
아무리 미국이라 하더라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들은 있는 법. 몇몇 사람들은 반박하기 시작했고 트위터는 키보드워리어들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그 싸움질에, 키스 로라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키스 로는 현 ESPN의 시니어 베이스볼 라이터로 과거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프런트오피스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하버드 대학 졸업, 카네기 멜론에서 MBA를 따고 현 전미야구기자협회 소속으로 있는 사람이다. 트위터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인데 종종 그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들과도 키보드워리어짓을 해 안티도 꽤나 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키스 로는 직장 동료 실링 – 실링도 현재 소속이 ESPN이다. – 이 트위터를 통해 ‘양서류와 파리, 모기, 코끼리, 코뿔소, 인류, 뱀, 기타 등등 사이의 화석에 대한 링크를 달라’라는 트윗을 남긴 것을 보고 ‘수없이 많은 과도기적 화석이 있다 라면서 위키피디아의 List of transitional fossils의 링크를 트윗했다.
이어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Seriously, if someone says evolution is wrong because there aren’t fossils between monkeys and men, find a monkey and hit him with it; 진지 빨고, 만약 누군가가 멍키(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화석이 없다는 이유로 진화가 틀렸다고 말한다면, 멍키(멍키스패너)를 찾아서 그걸로 걜 한 대 쳐라.” 라는 트윗을 연이어 날렸다. 그 트윗에는 “과학 이야기 하지 말고 야구에나 집중하라”는 맨션이 날아왔는데 로는 “과학이 야구보다 훨씬 중요하다.”라는 맨션으로 거기에 답했다.
여기서 끝났더라면 국내 인터넷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키보드워리어질에 단지 유명인들이 참석한 해프닝 정도로 끝났을 것이고,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거다. 문제는 로가 ESPN에서 당분간 트위터를 하지 말라고 금지당했다는 것. 데드스핀에서는 도대체 왜 그런건지 ESPN에게 물어봤고, ESPN에선 ‘키스 로의 서스펜션은 이 일때문이 아니다.’ 라 대답했다. 그러나 그걸 누구더러 믿으라고… 덕분에 ESPN은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Evolving Species? Probably Not의 약자가 아니냐며 조롱받고 있다.
트위터 정지가 끝난 후, 11월 24일 키스 로는 ‘Eppur si muove.’라는 트윗과 함께 트위터의 세계로 귀환했다.
Eppur si muove. 영어로는 And yet it moves, 한국어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참고로 실링에게 많은 돈을 안겨 준 야구와 진화론을 연결시켰던 학자도 있다. 유명한 진화론자이자 야구팬인 故 스티브 제이 굴드는 1996년 풀하우스라는 저서를 통해 야구에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