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BGM과 함께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만 원치 않는 분은 밑의 재생버튼에서 멈춤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BGM 정보: http://heartbrea.kr/animation/2807872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파-급. 에반게리온 서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최초로 폐막작에 선정되며 호평을 얻었고, 이에 따라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2008년 1월 24일에 개봉된 에반게리온 서는 전국 20개관 이하 개봉임에도 불구하고 첫 주 3만 8천명, 최종 관람객수 74,350을 기록하는 등 예상 이외의 관객몰이를 해서 일본 에바팬 사이에서도 꽤나 화제가 됐었다.
에반게리온 파 개봉은 에바 서의 예상하지 못했던 흥행수입 덕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09년 12월 3일 홍콩과 동시에(일본에선 09년 6월 27일) 개봉되었는데 전작인 서가 CGV 계열 극장에서만 한정 개봉했던 데 비해 파는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전작보다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게 되었다. 몇몇 극장에서는 서와 파를 동시에 상영하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한 타임을 제외하고는 영화가 끝나면 전철이 끊기는 4시간의 장정에도 불구하고 덕후들은 강했다(…) 객석은 만원.
그러나 막상 정식 개봉이 된 이후 첫 주 성적은 생각보다 부진했다. 전작보다 훨씬 늘어난 45개 상영관에서 모은 관객은 고작 35,540명. 말아먹은 포스터나 시험기간에 겹친 개봉시기 등 잘못된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때 같이 개봉했던 건 아바타(…)
결국 대부분의 극장에서 에바 파의 간판은 내려지고 개봉 3주차에는 서울 4개 극장으로 상영관이 축소되었다. 몇몇 오덕들은 이를 보고 공포를 느껴 Q가 개봉되지 않을거라 설레발을 치며 이대로 안 된다고 1인당 2번씩 보기 운동 같은 걸 펼치기도 했다. 몇몇 오덕은 3회 이상 관람하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5번 봤는데 혼자서 본 게 아니라 한 명씩 꼭 데려가서 같이 봤으니 최종 관람객 집계 중 10개는 내꺼(…) 아무튼 결국 최종 입장객은 64,955명.
하지만 그때도 차기작의 개봉 여부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파를 수입했던 아인스 M&M이라는 배급사가 후속편 모두를 일괄적으로 계약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냥 오덕들이 걱정했던 것은 상영관이 줄면 어쩌나 하는 정도.
일본에서 드디어 Q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예고편이 하나 하나 나오는 동안 우리는 에바 Q가 개봉되지 않을 거란 걱정은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설레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덕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극장판 4편 모두의 판권을 가지고 있었던 아인스 M&M 파산! 이 날 아인스 M&M의 주주들과 전국의 오덕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 한다고 한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다 드디어 개봉한 에반게리온 Q 그게 공개됐는데 왜 그걸 보질 못하니!
일본에 가서 보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 나중에 결국 DVD 나올테니 다운받아서 보면 된다는 쿨싘한 반응. 현지 분위기 보니 “사과해! 나의 에바는 그렇지 않아!”라는 분위기니 어차피 재미없는 거 보지도 않겠다는 맘에도 없는 반응 등등.
일본에선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등 정말로 이거 개봉하면 돈이 될테니 분명 어떤 배급사건 욕심이 날 거고 개봉은 될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다들 에바를 극장에서 정식판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점차 희망을 잃고 포기하고 있었다.
에바 Q 4월 개봉설
그러다 해가 지난 2013년 1월 9일 오늘 갑자기 “아울러 일본영화 <러브레터>(2월 중)와 뤽 베송의 <레옹>(3월 중)의 재개봉이 예정되어 있으며 <에반게리온:Q>의 경우 이변이 없는 한 2013년 4월에나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라는 관계자에게 직접 들었다는 떡밥이 투척되었고.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았던 에바 빠들은 열광했다.
http://storify.com/Atsuhiro6/q
확실한 것은 없다. 정말 언론보도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관계자에게 직접’ 들었다 ‘카더라’는 것이지만, 에바가 듣보잡 애니도 아니고 뭐 요새 별별 희안한 인지도 없는 영화들도 개봉해주던데 설마 역대급 인지도의 에바를 개봉해주지 않을라고. 늦어지건 어쩌건 에바는 개봉할 거라는 게 내 의견(을 빙자한 소원)이다. 개봉된다면 좋겠지만, 개봉이 되지 않더라도 뭐 일단 떡밥이 던져졌으니 이번 기회에 에바를 한 번 추억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중2, 중2병, 그리고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중2가 되어 중2병에 걸려있던 95년이었다. 운명이란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찾아오는 것이라기보단 도둑이 담을 넘어들어오듯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만화책은 좋아했지만 딱히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명견 실버’ 정도밖에 챙겨보지 않았던 내가 에바를 본 건 그저 우연이었다. 놀러갔던 친구 집에서 그 녀석의 나이 많은 사촌형이 보여준 비디오 한 편.
뭔가 무지하게 암울한 분위기에서 로봇물인데 로봇물 같지 않던 기괴한 애니메이션. 상황설명도 심적 변화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심지어 인물 설명도 없이 그냥 막 넘어가던 불친절한 진행. 그리고 한 편의 대부분을 액션으로 채우던 기존에 알고 있던 애니메이션과 달리 액션은 정말 장식처럼 짧막하게 나오는 그런 애니메이션.
뭐가 나를 사로잡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이게 뭐야… 라면서 다음 편이 궁금해졌고, 그 이후로 에바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친구와 달리 나는 용감하게 중학생의 몸으로 용산던젼에 가서 비디오를 구해다 보기 시작했다.
글쎄… 보고 “우와!! 우와!!! 대박이다!” 이런 건 없었고, 그냥 어 시발 이게 뭐지 뭐야? 하는 와중에 ‘fly me to the moon’을 듣게 되는 패턴. 그저 궁금했다. 이건 뭐냐.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내가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못하는거냐. 이게 망작인거냐. 대체 사람들은 이 이상한 애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뭐 좀 알고 보면 대단한 애니고 막 그런거냐? 라던게 중2병 걸린 중2의 아츠히로였지.
주위 친구들은 이런 애니 왜 보냐면서 관심 없어 하던 초창기의 에바. 누군가와 에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다 나우누리를 알게 되고 PC통신 잉여가 되고 지금은 인터넷 잉여에 트잉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에바의 위상은 대단했다. 누구나 에바 쯤은 봐야 PC통신에서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었던, 에바를 보지 않고는 사람들과 사교활동을 할 수 있었던(…은 개뿔 제가 덕후라 그랬습니다.) 아무튼 유명한 TTL의 CF도 에바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것은 당시 에바 덕후들의 정론.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학교 시절을 보내가며 사춘기를 겪으며 봤던 에반게리온. 그 시리즈는 끝났지만 계속해서 내 안에 남아있었다.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수 많은 떡밥. 성경과 신화와 에반게리온이니. 무슨 심리학이니 뭐니. 거기서 나오는 병기들은 어떤 것들이니 운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에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을 못하겠다. 그리고 어떤 해석이 정론이며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누군가는 에바가 오타쿠 타도 애니라고 하고. 어떤 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애니라고 하고… 어떤 것이건 뭔 상관일까.
나에게 있어 에반게리온은 애초부터 그냥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것을 조금씩 시행착오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마치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여자를 처음 마주하고 사귀게 되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전혀 모르겠고 공포스럽기도 하다가.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안 것 같다가도. 한참 지나면 하나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결국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되는 그런 대상. 이해하고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이입해서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결론짓게 되는 그런.
10만 명이 에바를 보았다면 10만개의 에바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사춘기나 방황하던 감수성 넘치던 시절에는 무엇에건 자신을 이입하기 빗대기 마련. 나에게 있어서는 에반게리온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에바는 사유화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빗대어 살이 붙여진. 해석이나 이입의 여지가 있는 많은 여백에 자신 스스로가 써내려가는 자신만의 애니메이션. 어쩌면 에바를 보는 것은 에바를 써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에바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뭐 누구한테나 다 최고라고 할 순 없고.
에바를 볼 때는 사실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도망가고 싶을 때.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낄 때였다. 퇴행해버리고 싶을 때. 다시 중2가 되고 싶을 때. 에바를 볼 때마다 나는 중2로 돌아가곤 했다. 세상을 벗어나고 그냥 마취되고 싶을 때 보던 그런 애니메이션. 나의 마취제이며, 나의 동굴이었던 애니메이션. 힐링 애니.
성장의 신극장판
그리고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오고 난 이후. 개인적으론 상당히 힘들었던 시절에 에반게리온이 다시 재해석되어 신극장판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누구나 에바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면 기대할 수밖에 없던 그런 소식. 정말 세상 사는 게 힘들고 위안이 없던 그 시절 나는 다시금 에반게리온과 만나게 되었다. 사실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TV판과 다르게 붉은 색으로 표현된 바다를 보며 뭔가 이거 떡밥이 있겠는걸? 하는 정도의 생각만을 했었고. 그냥 예전과는 달라진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다시금 재해석된 전투씬을 보면서 눈이 즐거웠을 뿐.
그냥 재미 있었지만 딱 생각했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기대 그대로의 만족감을 주었던 서. 에바는 그때까지도 추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시간을 두고 개봉했던 파. 그때 나는 개인적으로는 한 세계의 껍질이 부숴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스토리와 엇나가서 막 나가는 뭐 그런 걸 다 떠나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신지의 인격 변화. 찌질함의 대명사. 남에게 소모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 채 성장하지 않았던 이카리 신지. 그러나 호오가 갈리지만 에바 파에서의 열혈 신지는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야나미를 돌려줘!
라는 대사. 세상이 어찌되건 좋고 에바가 어찌되건 좋다고. 아야나미만은 지켜내고 말겠다는 의지. 결국 사도에게 흡수된 아야나미를 꺼내고 껴안는 이 장면은 10년 동안 기다려온 장면이었다. 백만 레이빠들은 이 장면을 보고 간절히 원하는 건 이루어진다는.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고. 간절히 바라면 2D의 캐릭터도 현실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뭔 개소리야)
고작 한 편의 애니메이션일 뿐이지만, 그 동안 소극적이고 찌질했던 신지에게 이입했던 나는, 이 순간 드디어 중2를 벗어나고 중2병을 치유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도망가려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 관계조차 꺼리는, 자신 스스로를 증명해봤자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 시도조차 해보지 않던 그런 삶.
그 이전까지의 에바가 나에게 있어 말만 힐링이며 결국은 마취에 불가능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애니메이션으로 소비되었다면, 신극장판은 기존의 소중하던 나의 TV판을 아프게 부숴버리는, 메스로 살을 갈라 질환을 치료해내는 수술, 진정한 힐링으로 다가왔다 할 수 있다.
그런 신지에서 10년 뒤에 나온 또 다른 이카리 신지. 나는 에바 파를 보며 극장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로 DVD로 다시 볼 때도 몇 번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은 법이 없었다. 10년간 성장하지 못한, 사춘기에서 그대로 박제되었던 나의 세계를 깨어준 그런 신극장판. 한 시리즈의 재구성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세계의 재구성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다. 어떤 세대에게 에바란… 에바를 보는 건 자신을 보는 것이지.
그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것이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의 충돌. 세계관의 미묘한 변화에도 재구성되는 자신의 기억. 그리고 과거를 파괴하면서 시작되는 재창조. 나는 그렇기 때문에 에바 Q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대가 다른 누군가에게 에바Q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솔직히 반지의 제왕도 1편 안 보면 2,3편 보기 싫은데 26화의 TV+구극장판과 신극장판 2편을 모두 봐야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애니라니. 에바의 기억을 갖지 못한 어떤 이들에게 이는 범작도 되지 못할 졸작일런지도 모른다. 에바 꼭 보라고 설레발 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에바의 개봉(할 지 안 할지 모르지만)을 두고 숙연해짐을 느낀다. 어떤 식으로 나의 세계를 부수어줄지. 확실히 모르지만 나는 이제부터 다시 나의 중2때부터의 인생을 돌아보며 에바를 정주행할 생각이다.
에바를 보러간다? 아니. 나를 보러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