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전 미국 뉴욕시장은 좋은 대학에 못 갈 거면 배관공이 되라고 조언했다.
블룸버그는 또 기술의 발달로 요즘 중산층 직업의 돈벌이가 예전만 못해졌지만 배관공 같은 직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펌에서도 이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분석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며 “과거엔 견습 변호사들이 책을 뒤져 만들던 자료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의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한국의 현실
선진국에서는 육체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는다. 미국 배관공, 캐나다 벌목공, 호주 용접공이 억대 연봉을 만진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뉴욕시 소속 배관공은 1년에 20만 달러(약 2.2억 원)를 번단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화이트 칼러 직종에 종사하다 선진국으로 이민가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육체노동자의 삶은 눈물겹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산업재해도 잦다. 노조에 보호받는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는 괜찮은 편이다. 안정성도 높고 보수도 높다. 현대 자동차와 현대 중공업 같이 괜찮은 작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는 왠만한 화이트칼라 관리자보다 처우가 좋다.
노조 가입률이 10%대인 한국의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에 있고, 배관공·목수 등 육체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직능별 노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배관공이 처한 현실은 주로 비정규직에 하도급에 의존하며 산업재해 노출 빈도도 높다. ‘진학 거품’을 비판하지만, 고졸의 대학 진학률이 78%인 원인은 고졸과 대졸 사이에 임금 격차가 극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기술자를 대우하고 ‘기름밥’을 값비싸게 쳐주는 문화가 형성되기 전에는 대학 진학만이 그나마 미래를 보장한다. – 바람머리 문소영의 블로그
마찬가지로 미국 배관공의 대우가 좋은 것은 노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는 배관공 노조가 있다. 역사도 깊고 정치적 영향력도 세다.
United Association이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의 37만명 배관공들이 연합한 노조가 있다. 12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 최대 노총 AFL-CIO 산하이고 사실상 단일 노조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항운노조 비슷한 느낌도 난다.)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미국 노조가 더 강성이다. 민주당과 연계된 정치적 힘도 우리나라 노조들과 비교 불가. – 새나의 창고
결론적으로 선진국에서도 노조나 직능 단체가 진입장벽을 마련해 주는 직종이 대우가 좋다. 선진국과 한국 모두 노조의 보호받는 노동자의 처우가 좋고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단지 선진국의 노동 환경이 전반적으로 양호할 뿐이다.
기술 진보로 인해, 어차피 육체 노동자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육체 노동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기술발전으로 생산직 업무는 물론이고 사무직 업무까지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자동화로 인력이 대체되면서 단순 반복 노동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이미 기술적 진보가 실업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느린 회복과 높은 실업률의 근본적인 이유가 금융위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최근의 실업문제가 기술적 진보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있어 점점 더 적은 수의 노동자가 필요할 것이다” 고도화된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기계는 평균적인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은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 부엉이 블로그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는 점점 낮아진다. 노조와 규제를 통해 노동 인력의 대체를 다소 늦출 수 있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진 못 한다. 러다이트(Luddite)는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의 위험에 반대해 기계를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다.
단기적으로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조, 장기적으로는 지식산업을 위한 교육이 필요
배관공이 되라는 블룸버그의 조언은 공허하다. 배관공의 고임금은 노조를 진입장벽에 의존하고 있다. 노조가 배관공의 공급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배관공들은 ‘지대’를 누린다. 뒤집어 말하면 시민들은 배관공에게 필요 이상의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노조가 없어지면 배관공의 임금은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다.
선진국에서 노조 가입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술에 의한 인력 대체 현상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노조 가입률 하락은 앞으로도 지속 될 것이다.
나도 노동이 대접받는 사회를 바란다.하지만 노동(특히 단순 육체노동) 가치의 하락은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노조 가입률을 높이면 노조원의 삶은 보호할 수 있지만 비노조원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노동의 가치 자체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한 쪽이 가치 이상의 이득을 누리면 다른 쪽을 억압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결국 교육으로 귀결한다. 진부하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 기술에 쉽게 대체되지 않는 지식 노동자, 숙련 노동자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진학률은 높지만 정말 인적자본의 증가에 기여했는지 의문이 많다. 하위권 대학 졸업자가 고졸자보다 소득이 많지도 않다. 교육투자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실정이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 중에서 대졸자 수의 증가는 임금불평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인 경우 대졸자 수의 증가는 대졸자의 임금 프리미엄을 낮추고 이에 따라서 임금불평등도 낮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졸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임금불평등이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는 교육의 확대가 성장과 더불어 소득분배의 개선을 가져오는 포괄적 성장의 동력이 더 이상 아님을 시사한다. – 채훈아빠의 블로그
어떻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잘 안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노동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 육체 노동을 권할 순 없다.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현실은 언제나 어렵다.
출처: 이기원의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