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열가지 방법
● 인용
1. 상대방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망설일 경우, 대의명분을 내세워 실행을 권고한다. 또한 비열한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행동을 하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상대방에게는 그의 마음에 들도록 명목(명분)을 내세워 실행을 권고한다.
2. 뜻은 좋지만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는 ‘뜻을 이루는 데에는 항상 실수나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 너무 완벽함에 얽메이지 않도록 권고한다.
3.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과시하는 상대에게는 같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다른 예를 들어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즉 상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면서 지혜와 능력을 더해주는 것이다.
4. 상대방으로 하여금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려면 분명한 명분을 내세워 상대에게도 개인적인 이익이 돌아감을 알려준다.
5. 위험하고 해로운 것을 말할 때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상대방에게 개인적으로 화를 미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낸다.
6. 상대방을 칭찬할 경우에는 직접 대놓고 하지 말고 상대방과 같은 행위를 하는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 칭찬하고 경고를 할 때에도 상대의 경우와 비슷한 예를 들어 경고한다.
7. 상대방이 저지른 부도덕한 일과 비슷한 일을 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관대하게 변명해 준다. 그리고 상대방과 똑같은 실패를 겪은 사람이 있으면 실패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8. 능력을 자부하는 상대방에게는 그 능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는다.
9. 결단과 용기를 자랑으로 삼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그 결점을 지적하여 화나게 하지 않는다.
10. 자신의 계획을 두고 훌륭하다고 자랑하는 상대방에게는 그에 대한 실패사례를 말하지 않는다.
● 생각
한비자는 상대방을 설득함에 있어 대단히 영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한다. 즉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점을 추켜세우고,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감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접근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한비자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시대적 상황에 공감이 간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애초에 군주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아무런 정책 입안도 먹혀들지 않던 불합리한 사정을 너무도 많이 보았던 그이기에, 어떻게든 군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런 테크닉을 써야만 한다는 고언(苦言)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한비자의 이러한 현실적인 충고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순진한 열정’만으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순진한 열정만 가진 뛰어난 인물들에게 경고하는 한비자의 고려를 엿볼 수 있다.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 – 역린
● 인용
1. 용을 잘 길들이면 탈 수도 있지만 그 목 밑에는 한 자 가량이나 되는 역린(逆鱗)이 있다.
2. 만약 그것을 건드리게 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만다.
3. 마찬가지로 군주에게도 이러한 역린이 있다.
4. 군주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그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군주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면 설득에 성공할 수 있다.
● 생각
한비자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인 ‘역린’. 이는 일종의 비유(메타포)로 보아야 할 단어다. 군주만 역린이 있으랴. 역린은 심리학에서 본다면 ‘핵심 컴플렉스(Core Complex)’로 치환할 수 있으리라.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던 과거가 있는 사람에게 ‘무식하기는…’ 취직 못한 청년에게 ‘아직도 놀아?’ 여드름 심한 사람에게 ‘너 여드름 엄청 심하다. 피부과 가봐!’
이런 말은, 자기는 아무리 관심과 애정으로 한 말 일지라도 듣는 사람으로선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다른 사람이 몰라주기를 바라는 것, 키나 외모 같은 신체적인 결점, 출신이나 학력 같이 밝히고 싶지 않은 약점, 결혼이나 취업 또는 성적 같이 남과 비교해 부족한 점, 지나간 과거의 실수들. 누구나 이런 부분 한 가지는 갖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그것이 상대방의 컴플렉스이고 불편해 하는 사실이라면 그냥 덮어주는 게 나을 것이다. 누구든 자기의 아픈 곳을 찔러대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상처가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中
직원들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한 박사장님
● 사례
T물산 박사장은 직원들이 야속해서 속이 쓰리다. 다른 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복지혜택을 주고 있으며, 회식도 자주 시켜주는 편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충성도는 별로 변함이 없다. 복지혜택도 예전 수준으로 환원시켜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도대체 고마운 줄을 모른단 말야.’ 박사장은 혀를 끌끌 찼다.
● 한비자의 가르침
한비자는 외저설 좌상 편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서로 남을 위한다고 여기면 책망을 하게 되나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잘 되어 간다.”
아울러 다음 두 가지 예를 든다. 첫번째 예는 부모, 자식 간에 관한 것이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원망한다. 반대로 자식이 장성하고 어른이 되어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가 이에 대해 노여워하고 꾸짖는다. 자식과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원망하고 꾸짖게 되는 것은, 모두 상대방을 위해서 무언가를 베풀어 준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을 뿐,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예는 일꾼을 써서 농사를 짓는 땅주인 이야기다. 일꾼을 사서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을 경우, 주인은 자기 돈을 써서 일꾼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품삯을 주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일꾼들을 잘 대해주면 그들이 밭을 갈 때 깊이 갈 것이며, 김을 맬 때 완전하게 할 것이다. 일꾼이 있는 힘을 다하여 애써 김매고 밭두둑과 논길을 정리하는 것 역시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면 주인이 주는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돈도 잘 벌 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는 결국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일을 시킬 때도, 궁극적으로 자신이 베푸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굳이 남을 원망하거나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말로 마무리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하거나 베풀어 줄 경우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마음으로 하면 먼 월(越)나라 사람과도 쉽게 부드러워 질 것이지만,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뭔가 은혜를 입힌다고 생각하면 부자 사이라도 서로 멀어지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대단한 통찰력이지 않은가?
의지만으로는 설득을 완성할 수 없다
● 인용
1. 군주와 소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에 불과하면서, 군주 가까이에서 총애받고 신임받는 자와 겨룬다면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없는 것이다.
2. 신참의 몸으로 오래도록 친숙한 자와 겨룬다면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없다.
3. 군주의 의향에 거슬리는 처지에서 군주의 호- 불호 정서를 같이 하는 자와 겨룬다면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없다.
4. 세력 없고 낮은 신분으로 세력 있고 귀한 신분과 겨룬다면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없다.
5. 오직 혼자만의 입을 가지고, 온 나라가 칭송하는 자와 겨룬다면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없다.
6. 이처럼 처음부터 조건상 결코 이길 승산이 없고 둘이 함께 존립할 수 없는 정세라면 그 진언을 하는 자가 어찌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없는 죄과를 거짓으로 씌울 수 있는 자는 공법(公法)으로 주살해 버릴 것이며, 죄과(罪果)를 씌울 수 없는 경우에는 자객의 칼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 한비자 고분(孤憤) 편 중에서 –
● 생각
한비자는 아무리 좋은 의도와 정책을 갖고 있어도 군주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면 결국은 외롭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한다. 진시황이 읽고 감탄해서, 반드시 한비자를 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 ’고분(孤憤)’이다. 고/ 분 / – ‘외롭게 분노하다’의 뜻이다.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좋은 뜻과 의지만 가지고 정치에 나갔다가 비참하게 버림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한비자는 외롭게 분노에 차서 외친다.
‘아마추어처럼 경거망동하지 말라. 당신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거악(巨惡)이다!’
한비자가 바라 본 인간의 본성
한비자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펼쳐갑니다.
1) 신하가 큰 권력을 잡게 되면 더 큰 권력을 잡으려 욕심을 내고,
2) 군주와 신하의 이익이 충돌하면 신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더 많이 챙기려 하고.
‘과연 사람을 꼭 그렇게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로만 봐야겠어?’라는 것이 한비자 비판가들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굳이 ‘사람 전체’ 차원이 아니라 ‘과연 나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익’보다는 ‘인의와 신뢰’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법이 없어도)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준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굳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빼놓고, ‘나’만을 시험대에 놓고 생각해 보는데 자신있게 대답 못하겠는걸요.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한비자는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는 책인 듯 합니다.
원문 : 조우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