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고증에 대해 모른 척 하기로 했는데, 작가의 상상력을 고증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잠시 참견을 해보겠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판옥선 충파장면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참고로 저는 일부러 충파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충무공께서 사용하신 당파라는 용어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도 영화의 영향으로, 요즘은 배를 들이받아 부순다는 것으로 굳어져 버렸죠. 그래서 저는 당파와 구분하기 위해 충파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우선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이 정도 체급의 차이가 있었는데, 패전을 거듭한 왜군은 아타케부네를는 판옥선 체급으로 키웠고, 세키부네도 보다 크게 만들어서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래서 명량 해전에서는 저것보다 체급 차이가 줄어듭니다.
판옥선이 정면으로 세키부네의 용골(선체의 뼈대)을 들이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세키부네를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판옥선의 면이 세키부네의 점을 향해 들이받는다면요? 더구나 영화에서 아래처럼 과장을 했듯이 세키부네가 판옥선과 맞먹는 크기라면 더더욱 판옥선이 위험해지죠.
충파는 옆구리나 선미를 들이받는 것이지 정면의 용골을 들이받는 것이 아닙니다. 판타지물에 가까웠던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서도 그것만큼은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 함선의 3단 노선도 용골과 연결된 충각이 배 아래에 길게 나와 있기 때문에 충파가 가능한 것입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이렇게 설명해 줘도 심지어 왜군 함선은 ‘대나무!!!’로 만들어서 당연하다는 주장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만 제가 설명한 잡상식을 가져가시겠죠.
국방부와 이순신연구소의 기록
그래도 집요하게 어설픈 지식으로 가르치려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국방부와 이순신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당파니 충파니 하는 말은 배 옆구리를 들이받아서 배를 비틀어지게 해서 물이 새게 한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시했는데.. 해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논란거리도 아닌데, 영화가 참 많은 사람들 버려 놓습니다.
…조선 수군의 해전전술을 이야기할 때 범하는 오류 중의 대표적인 사례가 ‘당파전술(撞破戰術)’이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이 ‘당파전술’을 배를 부딪쳐 깨뜨리는 ‘충돌전술(Ramming Tactics)’로 이해했다. 다음은 옥포해전 뒤 이순신이 조정에 보낸 장계 내용인데 거기서 쓰인 당파(撞破)의 의미를 확인해 본다.
“좌부장 낙안 군수 신호는 왜대선 1척을 당파(撞破)하고, 우부장 보성 군수 김득광은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합해서 왜선 26척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맞혀 당파하고, 불태우니(銃筒放中撞破焚滅)> 넓은 바다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으며, 산으로 올라간 적도들은 숲 속으로 숨어 엎드려 기운이 꺾이지 않은 놈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총통으로 쏘아 맞혀 당파하고, 불태우니>라고 한 대목이다. 당파(撞破)가 배가 부딪치는 충돌의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당파전술은 충돌전술이 아니라 총통에서 대장군전·장군전·철환 등의 피사체를 쏘아 격파하는 총통포격전술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제 역사까지 인용해서 설명해도 부실한 인터넷 몇 줄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옆에 공간 있어요” 수준까지 보여주어야 하겠죠?
마침 루리웹 회원이 만든 판옥선과 (영화 명량 수준으로 과장된) 세키부네입니다.
정면충파 가능한가요? 올라타서 누르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런 말도 안되는 짓하다가 내 배에 균열이 가면 먼 바다에서 모두 죽는 판인데 그런 짓을 한다고요? 해전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