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프랭크 브루니가 “Gray Hair and Silver Linings”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잔잔한 에세이입니다.
일찍이 공자님은 오십을 지천명(하늘의 뜻을 앎)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할 수 없는 것들,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버려야 하는 것들, 새로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깁니다.
나는 오십을 갓 넘은 중늙은이다. 약 2년 전 두 명의 낯선 사람들로부터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이후로 두 사람을 또 다시 만나보지는 못했다.
나는 한 외과병원의 대기실에서, 허리에 난 진홍색 종기를 도려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 종기는 노화의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인간의 몸은 나이가 들면서 원치 않는 것들을 다량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체중, 털, 반점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 단지 미관상 문제가 아니라 – 생존을 위해 꼭 도려내야 할 것들이 있다. 나는 두 개의 견갑골 사이에 조그만 종기를 하나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 제거하지 않을 경우 – 양성에서 악성으로 변해갈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내 맞은편에는 한 남성과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70대 아래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화 내용으로 미뤄볼 때 두 사람은 초면이며, 병치레에 관한 한 나보다 한참 고참인 것 같았다. 특히 두 사람은 암종(carcinoma) 치료를 위해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 것 같았다.
“테니스를 너무 많이 쳤나 봐요.”
여성이 자신의 목에 있는 수술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목은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어 있었다.
“난 그놈의 골프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진작에 모자를 썼어야 하는 건데.”
남성이 눈썹 위의 수술자국을 가리키며 응수했다. 여성은 스커트 자락을 살며시 올려 시뻘겋게 달궈진 종아리를 드러냈다. (시뻘건 자국 덕분에 그녀의 종아리를 보는 게 민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팔의 반점도 보여줬는데, 거기에도 수술자국이 있었다.
“난 정원을 손수 가꾸고 있어요.”
남성은 말했다. 그는 짐짓 활력 넘치는 – 심지어 자랑스러운 – 어조로 말하는 듯했다. 여성이 남성의 수술 자국을 만지는데도, 남성은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영화 『죠스』에서, 상어 사냥꾼들끼리 흉터를 서로 비교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단지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바다의 괴물’이 아니라 ‘인체의 배반자(the body’s betrayals)’였다.
외관상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종기는 크기가 줄어든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본다면 어떨까? 암세포를 추억거리로, 고통을 희롱거리로 만드는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그들의 문제는 실제로 증폭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종의 ‘자비’와 ‘기적’이 그들을 붙들어 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은 노년기의 황폐화를 이겨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은 달가울 리 없으며, 많은 하강을 수반한다. 정체불명의 종기, 약해지는 무릎, 흐릿한 시야, 대사장애(metabolic disorders)… 이 모든 것들이 ’40대와 50대는 차원이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야망의 소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희망이나 꿈이 이루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데, 50대가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50대가 되면 실수의 여지(margin for error)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20대, 아니 30대까지만 해도 세월을 낭비하거나, 사랑에 올인하거나, 옳은 것을 거부하고 틀리는 것을 추종하는 오기를 부릴 수 있다. 그래도 낭비한 시간을 만회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직도 많은 세월과 사랑과 ‘가지 않은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실수는 교훈이지만, 나이 들어서의 실수는 단지 수치일 뿐이다.
나이듦이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와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생이별하거나, 사별(死別)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50대쯤 되면, 이 같은 상실이 가속화된다. 게다가 상실감은 불쑥 찾아오거나 참혹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뭔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이 있다. 마치 약해져 가는 근육이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관점을 바꿔 생을 관조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태도를 유연하게 바꾸거나 기대치를 조정하게 된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지금껏 당신을 성가시게 생각했던 것들은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이가 들면 아집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당신을 고립시키던 알량한 자존심에 작별을 고하고, 운이 좋으면 당신의 하찮은 모습들을 벗어버릴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은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대응방법을 평가하여 최선의 것을 선택하게 된다.
구름 뒤에서 태양이 빛난다(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거나 전화위복(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이라는 격언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그런 진리를 몸소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쉰 번째 생일날 아침, 나는 병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조직검사 결과를 통보하는 전화였다. 내용인즉, ‘코에서 발견된 미세한 점(dot)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아마도 혹을 냉동처리한 후, 무슨 화학요법 크림인가를 바르게 될 것이다. 크림이 듣지 않으면 절제수술을 할 것이고… 어쩌면 여러 번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다 해변에 너무 자주 가고, 선탠 부스에 자주 들락거렸던 과거의 부주의한 이력 때문이리라.
난 괜찮다, 다행히 보험에 들어 있으니. 나는 모델도 아니고 잘생긴 얼굴도 아니니, 코에 기스가 좀 나면 어떤가!
나는 갑자기 2년 전 외과의 대기실에서 만난 남녀를 떠올렸다.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이후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지만, 나이 오십을 맞고 보니 더욱 생생히 떠올랐다. 그들은 나이듦의 미학을 내게 빠르고 확실하게 가르쳐 줬다. 그들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줬다.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도 기회와 접점(points of connection)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줬다.
나는 그들보다 병원 문을 먼저 나섰으므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그냥 끝났을 수도 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지금쯤 어디선가 휴가를 함께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보다 더 굼뜨게 행동할 수도 있고, 전보다 자외선 차단제를 더 두껍게 바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방법으로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출처: 양병찬 님의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