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 근처 있는 전통시장인 상계시장에 다녀왔다. 전통시장 현대화 작업 덕분인지 예상보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간판은 같은 디자인의 새 것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길도 넓고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쾌적함의 근본 원인이 손님이 없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손님이 정말 없었다.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도 이들 점포들이 먹고 살수 있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전통시장 살리기에 3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고, 대형마트의 입점과 휴일 개장을 규제하는 등 많은 정책을 실시했는데, 왜 전통시장의 상황은 이리 어려워지는 것일까? 실제로 2001년 40조 원에 이르던 전통시장 매출은 2013년 20조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그러는 동안 전통시장 개수는 1,500 여 개로 큰 변화가 없으니, 전통시장 상인들의 개별 수입이 반토막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기피하는가에 대해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1위가 상품이 다양하지 않아서, 품질이 떨어져서, 가격이 비싸서 등의 응답이 나온다. 그런데 과연 이게 소비자가 전통시장을 기피하는 진짜 이유인지 의문이 든다.
와이프에게 전통시장을 왜 가려하냐고 묻자 이런 답들이 나왔다. 일단 집에서 가까워서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품질이 좋단다. 마트보다 훨씬 좋은 과일, 채소 등을 살 수 있다. 가격도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다녀보니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과거 전통시장이 지녔던 많은 나쁜 이미지들은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서 산책겸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을 부각시킨다면 충분히 손님을 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보기가 끝날 때 쯤 전통시장의 문제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입한 물건이 너무 무겁다는 점이다. 대형 마트에서 당연하게 끌고 다니는 카트가 너무 절실했다. 성인 남성이 느끼는 부담이 이정도니 여성, 특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의 부담은 오죽하랴.
생각해보니 카트가 있어도 문제였다. 차를 끌고 왔다면 주차장이 있어야 하고, 주차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카트를 끌고 주차장으로 가는 연결성이 보장되기 어렵다. 많은 예산을 들여 전통시장에 주차장을 짓는다고 해서 대형마트와 같은 편리함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난 아이디어는 배달 서비스였다. 어차피 인근 주택가에서 도보로 오는 손님들이 많다면 배달 서비스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통시장 상인들이 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김에 어린이 놀이터나 쉽터를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젊은 주부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비용 배분 등의 문제로 인해 조합이 무난하게 운영되기 어렵긴 하겠지만…
적어도 서울시 안에 있는 전통시장의 문제는 이제 시설이나 나쁜 상관습과 같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불편함이 있고, 특히 홍보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크게 부족하지 않나 싶다.
전통시장 내 상점들도 잘 되는 곳은 매출이 계속 늘어난다.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 어떤 종류의 상점이든 장사가 되는 게 요즘 시대다. 전통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예산 지원이나, 대형마트 휴일 폐점과 같은 정책은 오히려 역풍을 맞기 쉽다. 장기적으로 전통시장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이런 정책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 대한 고민이 아닌가 싶다.
원문 : 마왕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