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서 사파리를 담당했던 Don Melton의 “Memories of Steve”라는 글이다. 가급적 원문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지만, 번역 실력이 미천해서 그러지 못했다. 영어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원문을 읽어보길 바란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필자의 존경과 그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 글은 The Loop Magazine에서 올해 2월 그의 생일에 처음 공개됐다. Jim Dalrymple은 발행을 위해, 초고를 짧게 편집하고 두 부분으로 나눴다 – 내가 이 결정을 꺼린건 아니었고, 덕분에 글을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Jim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수정되지 않은 초고를 포스팅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 글을 쓴 때는 작년 여름이었으니, 글을 읽을 때 이를 감안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지 않는다 할지라도, Jim의 잡지를 다운로드 받고 구독하길 바란다. Jim의 잡지는 꽤 나를 즐겁게 한다. 나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새로운 영화를 볼 계획이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한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를 읽을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건 내가, 그러한 노력들이 아무래도 스티브에 대한 기억들을 가치있게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건 아니다. 그건 단지 스티브 잡스에 대한 나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추억을 보호하기 위해 매우 신경을 많이 쓴다. 나는 나의 몇 안되는 순간적인 기억들이 다른 이의 해석으로 파편화되고 혼란스럽게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말을 미리 하는 것이 공정한 경고라고 본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에 내 기억 몇가지를 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기도 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를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스티브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그의 주변에 있을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책임지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의 디자인 보고 때였다. 확실히 다른 회의도 있긴 했지만, 나는 그의 집에 방문했던 적이 없고, 다른 이가 대화에 함께 참여하지 않을 때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 사적인 얘기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은 확실히 아니었다. 사실 그는 아마도 나를 항상 ‘사파리 가이(Safari Guy)’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한테 그건 괜찮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스티브 잡스가 누군가를 생각할 때는 그보다 더 나쁜 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티브는 내 본명도 알고 있었다. 애플이나 픽사 – 둘다 커다란 회사다 – 에 있는 누구라도 스티브가 이름을 알고 있다는건 명예로운 일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종종 무서운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게 교환 가치다.
나는 애플의 부흥기(Renaissance)에 애플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나는 이에 대해 Scott Forstall에게 감사한다. 나를 고용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를 스티브에게 소개해 준 것도 감사한다.
첫 만남
내가 스티브 잡스를 처음 만났던건 – 실제로 그냥 어쩌다가 본 것 – 애플에서가 아니었다. 그건 오리지널 NeXT 컴퓨터(NeXT. inc : 1985년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후 창립한 회사)와 NeXTSTEP 소프트웨어를 개발자들에게 공개하는 자리에서였다. NeXTSTEP은 후일 Mac OS X이 된다. 하루 종일 계속되는 컨퍼런스 였는데 –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잊어버렸다 – 때는 아마 1988년이었을 것이다.
스티브는 점심 시간에 우리를 잠재적인 NeXT 개발자들로 보고 연설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정오가 가까워졌을 때 매우 배가 고팠고, 이상하게 생긴 다이닝 홀에서 점심을 먹을만한 조용한 장소를 빨리 찾길 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리모트 테이블을 선택했다. (몰랐는데) 이 테이블의 바로 옆에 곧 강연대가 위치할 예정이었고, 곧 명예로운 연설자가 올 예정이었다.
스티브는 옆문에서 걸어나왔고 연단에 올라섰다. 나와 충분히 가까웠기에 일어섰고, 두 걸음 걸어가서 그와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멍청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 땐 확실히 그가 그렇게 자주 입던 때였다. 그가 청바지를 재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매우 직업적인 모습이었다. 진지해 보인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의 강렬한 태도와 주시하는 모습과도 잘 맞았다. 확실히 스티브는 우리에게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먹고 있었다. 우리중 몇몇은 아직 식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샌드위치 종이를 부시럭거리는 소리, 포크가 맞부딪치는 소리, 빨대 소리, 쩝쩝대는 불쾌한 소리들이 들렸다.
확실히 그는 우리가 조용해주기를 원했다. 그가 우리 스스로 조용해지길 바라며 몇번을 멈췄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경의와 외경, 그리고 아마도 몇몇은 두려움을 표하며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젠장, 방 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삼키는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아주 가까이 앉아있었기에, 나는 특히나 그걸 잘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망할 녀석이 그 시간에 그가 연설을 하도록 스케쥴을 잡은걸까? 멍청이다. 그가 나중에 발표할 수 있게 하는게 충분히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 날 스티브가 말한 내용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의 진지함과 확실한 인내심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애플에서 일을 시작하고
2001년 6월 애플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몇번의 캠퍼스 이벤트와 사내 회의에서 스티브를 봤고,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도 봤다. 당신도 사내 식당인 Caffè Macs에서 스티브를 몇 번이나 볼 수 있다. 그는 우리들과 똑같이 거기서 식사를 한다. 종종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앉아서 말이다.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난게 애플이 오리지널 아이팟을 발표하기 전인지 후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쿠퍼티노의 가을날이었고, 나는 내 사파리 팀의 첫 두명의 엔지니어들인 Ken Kocienda와 Richard Williamson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Caffè Macs의 이중문 중 하나의 바로 바깥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정확히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프로젝트” – 사무실 밖에서 우린 우리의 일을 그렇게 불렀다 – 에 대해서 말할 때면, 우린 항상 조용한 톤으로 매우 애매한 단어를 사용했다. 그 때엔 사파리가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극비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고 있을 때, Ken이 식당 앞 옥외 테라스의 반대편 끝에 위치한 테이블 근처에서 친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Bud Tribble이었다.
많은 성과들 중에서도 Bud는 오리지널 매킨토시 소프트웨어 팀을 이끈 일과 NeXT의 공동창업자로 유명하다. Richard는 몇해전 NeXT에서 일했었다. 또한 Bud는 지금은 없어진 Eazel에서 나를 고용했었다. 나와 Ken은 둘다 애플에 합류하기 전에 Eazel에서 일했었다. 사실 Bud는 내가 애플에서 Scott Forstall과 인터뷰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모두 그를 잘 알았다. Bud는 마침내 여섯 일곱 테이블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우리를 향해 등을 진 누군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Ken은 우리에게 이런식으로 말했었다.
“이봐, 저기에 Bud가 있어! 너희들 Bud 봤어?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Ken과 나는 Eazel이 문을 닫은 이후로 Bud를 못 본건 아니지만, 몇 달간 Bud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가 왜 애플을 방문했는지 생각해봤다. 추측하는것이 지루해지자, 결국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컵모양으로 손을 입에 대고 그를 불렀다.
“이봐, Bud! 거기있는 친구와 얘기가 끝나면 이쪽으로 와서 오랜만에 우리 좀 보자구!”
Bud는 우리를 봤고 – 잠깐 멈칫했다 -, “거기있는 친구”는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물론 그는 스티브 잡스였다. 나는 영원히 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 약간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채, 입술을 앙다물고 절반쯤 웃으면서, 눈썹을 찌푸리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니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절대 잊지 않겠어”
숨이 막혔다. 그나마 자리에 앉아 내 두명의 엔지니어들 앞에서 헛똑똑이(smartass)처럼 ‘난 이제 해고야’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 때 당시엔 그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Ken과 Richard는 스티브가 뒤를 돌아본 것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그러기 전까진 그들도 숨을 멈추고 있었던것 같지만 말이다.
미리 스포일러를 하겠다 : 나는 해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파리 프로젝트에서 9개월에서 10개월 정도의 기간을 일하는 동안, Scott Forstall은 우리가 사파리의 기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다양한 작동 상태들을 스티브와 함께 리뷰 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2002년 늦봄의 일이었다.
사파리(Safari)의 등장과 스티브
그 때쯤 사파리는 실제로 웹브라우징을 할 수 있는 진짜 어플리케이션이었다. 하지만 아직 사파리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 명명식은 그 해의 12월이 되어서야 있었다.
Scott은 나에게 스티브와의 첫 미팅과 이후에 있을 보고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내가 첫번째 미팅을 망쳐버린다면 스티브와의 두번째 미팅은 없을거라는 것도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Scott의 말을 매우 신중하게 들었고 그가 해준 최고의 조언들을 명심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당연한 조언들이었다. 적어도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몇가지는 내가 그 이전엔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확실하게 하자. 스티브는 변덕스러운 귀신이나 만화에 나오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는 단지 아주아주 바쁠뿐이다. 그는 쉽게 겁먹거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혹은 말하고 있는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세요”라고 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았던것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다른 임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좋은 인상을 가진 임원들과 비교해도 말이다. 스티브는 탁월함을 기대했다. 그건 그가 매우 자주 탁월함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무언가가 제대로 됐을 때를 알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를 분명히 했다. 이 행동을 과하게 비판적이라고 잘못 해석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시간을 절약해줬다. 종종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스티브와 함께라면 디자인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과정이었다.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와 함께 몇몇의 세션들을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인내를 단순히 미덕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스티브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무슨일을 하고 있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아서는 안되고, 없는 대답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만약 답을 모른다면, 그냥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얘기해 주면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관리를 하는” 누구에게라도 좋은 조언이다.
스티브에게 무언가의 데모를 보여줄 땐, 스스로 페이스를 맞춰야 한다. 만약 스티브가 “그만”이라고 말하면, 거기서 바로 멈추는 것이다. 하던 것을 멈추고 기다려라. 그리고 그가 화면을 쳐다보는 동안은 마우스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선 안된다. 그랬다가는 틀림없이 죽는다. 만약 그가 데모 기기를 쓰고자 한다면, 오~ 맙소사… 그렇게 하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만약 소프트웨어가 충돌하면,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냥 그런 일이 다시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확실히 말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항상 평온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 이런.
어쨌든, 그 외에 Scott은 스티브가 나를 시험할 거라고 얘기해 줬다. 그가 나를 조금 밀어붙여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볼 거라는 뜻이었다. 투수가 높고 어려운 공을 타자의 몸쪽 가까이로 투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재밌는 일이다.
사실 나는 스티브와의 첫 미팅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사과한다. 긴장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장담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다시 (미팅에) 초대받았다. 그러니 그렇게 나쁘게 미팅을 망친 건 확실히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많지 않았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뒤따라 있었던 보고들 중에 한번은 – 아마 두번째 미팅이었을 것이다 – 스티브가 나를 지목했다. 스티브는 얼굴을 보면서 질문을 했다. 사실 나는 그게 그가 나에게 한 첫번째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사파리의 북마크 유저 인터페이스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 때엔 모든 북마크가 하나의 별개 모달리스(modeless) 윈도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건 별로 아름답지 않았지만 기능을 추가하기엔 쉬웠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창 사이를 전환하는 복잡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맥 브라우저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브라우저들의 솔루션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나를 직접적으로 바라보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그의 레이저 같은 집중력으로 질문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우리가 데모로 보여준 것이 우리가 작업 해온거라는걸 생각하면, – 혹은 엄밀히 말하자면 내 엔지니어들이 한 일이다 – 나는 속은거다. 이 세상 나머지 모든 것들이 스티브의 얼굴 주변에서 흐릿해지면서 사리지는것 같았고, 그 순간 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또한 무너지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전 사실 윈도우용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북마크를 웹 컨텐츠와 같은 창에서 보여주는 방식이요. 다만 그걸 사이드바에 넣은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이드바보다 더 나은 솔루션이 있을것 같은데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내 설득력 없는 바보 같은 답변에 짜증을 내는 대신,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다시 한번 타석에 세웠다. 왜냐하면 윈도우가 돌아가는 기기가 근처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사파리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스크린샷을 찾아내면서 또 다른 속구를 피해냈다. 점수를 얻은 거다! 나는 이제 메이저 리그에서 뛰게 됐다.
일이 진행되면서
스티브와 함께 일하면서 얻게 되는 커다란 장점 중 하나는 이제 누군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너스였다. 스티브에게 한 몇번의 보고 이후에, 나는 사파리의 실시간 어플리케이션 데모를 스티브의 바로 옆에 앉아서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디자인 팀의 누군가가 스크린샷이나 코드가 없는 프로토타입을 매크로미디어 디렉터에서 데모를 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실제 어플리케이션으로도 데모를 했다. 하지만 Scott은 내가 라이브 코드를 데모로 보여주길 원했다. 왜냐하면 그는 불충분한 마무리(fragiel edges)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크래쉬도 피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내 엔지니어들 중 한 명인 John Sullivan에게 이 영광과 위험(doom)을 넘겨줬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할땐 나였다. 2002년 여름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사파리의 외관과 느낌에 진척을 보였다. 다시 한번 스티브와 사파리 메인 창의 행동유도성(affordances)를 리뷰할 때, 우리는 상태바에 집중했다.
스티브는 상태바를 좋아하지 않았고 상태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마우스를 위에 올려놓고 URL을 살펴본답니까?” 그는 그게 너무 긱(Geek)스러운 요소라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Scott과 나는 스티브가 상태바를 옵션으로 남겨두도록 확신시켰다. 디폴트로는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얘긴 우리가 새로운 문제를 갖게 됐다는 말과 같았다. 페이지가 로딩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보여줄 진행바를 어디에 놓아야 할까?
이전엔 진행바가 상태바 안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창의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놓아두는걸 포함한 멍청한 아이디어들에 대해 토론했다. 이 때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어와 다른 작은 어포던스(행동유도성)들이 진행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널리 쓰이기 전이라는걸 기억하자. 이발소의 간판 기둥 같은 파란색 아쿠아 막대가 있던 때였다.
방 안은 조용해졌다. 스티브와 데모 기기를 앞에 두고 사파리를 응시하며 옆에 함께 앉아 있었다. 갑자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페이지 주소 필드!”
방 안에 웃음이 돌았다. 내가 뒤따라 말했다. “이번 주 말까지 작동하는 버전을 보여드릴게요.” 당연히 내 엔지니어링 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방금 무언가를 스티브(Big Guy)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는 사소한 기능이었지만, 스티브와 함께 바이라인을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 기능을 고안한 것의 아이러니는 그 해 말에 내가 이 모든 기능을 없애버리려 시도 했다는 것이다. 아주 정확한 테스트들에서도 사파리가 다른 브라우저에 비해서 페이지를 더 빠르게 띄워줬는데, 눈 앞에 보이는 진행 바가 사용자로 하여금 느린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의 평판을 죽여 버리는 훌륭한 시각 효과였다.
우리는 이 기능을 없애버리는 대신, 진행바의 외양과 작동 방식을 바꿔버렸다. 이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한편, 날 슬프게 하기도 했다. 디자인 보고 회의를 하는 동안 몇번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볼 수 있는 스티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방안의 동료가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고 흐릿한 눈빛을 보여서 스티브가 리뷰를 중단하고 그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동료는 사과를 한 후, 그가 지난 밤 집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딸아이를 데리고 밤새 응급실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스티브는 눈에 띄게 걱정하며 나중에 보고를 하는게 더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동료는 그에게 고마워하며 아니라고 말했고, 우리는 보고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자 스티브는 그의 아이들 중 하나가 몇 주 전에 비슷한 사고를 겪었고, 그게 얼마나 자신을 놀라게 했는지를 말해줬다. 그는 그 직원에게 보고가 끝나고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때는 스티브 스스로가 다소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우리 모두에게 사과를 했었다. 그는 전날 밤을 샜다고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얼마전에 죽어서 스티브와 그의 가족은 새로운 강아지를 입양했다고 했다. (강아지로 인해) 며칠간 긴장을 한 그의 아내가 스티브에게 이젠 자신과 아이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당신이 동물을 돌볼 차례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엌 바닥에 앉아 아침까지 까다로운 작은 강아지가 조용하도록 돌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우리 중 몇몇이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는 그게 재밌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스티브의 이면
맞다. 스티브는 때때로 매우 강렬해 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이다. 그도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분들을 다룬다. 심지어 그걸 즐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일전에 2003년 맥월드 키노트 리허설에 대해서 썼던 적이 있다. 사파리가 공개된 이벤트였고, 스티브가 오픈한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새로운 애플 스토어의 첫 업데이트를 한 이벤트기도 했다.
많은 기술과 경영계 학자(pundits)들이 우리의 소매점에 대한 노력이 커다란 실패로 끝날 거라고 써내려가고 있었다 – 또 다른 애플에 대한 똥멍청이 같은 예측이었다. 사실 스토어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성공했다. 스티브는 모든 이가 그걸 알기를 바랬다. 특히나 학자(pundit)들이 말이다.
이틀간의 리허설 동안, 나는 거의 텅 빈 발표장에서 무대로부터 세번째나 네번째 줄 쯤에 Ken Kocienda와 함께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발표장 한가운데 밝게 빛이 비추는 무대에서 Ken과 나는 스티브와 서포트 스태프들에게 충분히 보일만한 곳에 있었다. 사파리 데모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곳에 앉아 발표의 대가가 그의 마법을 부리는걸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첫날 리허설을 시작할 때 스티브가 물었다.
“Phil은 아직 안 왔나?”
우리의 마케팅 수장인 Phil Schiller를 말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본 후, 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우리 모두에게 그가 작은 장난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가 처음으로 그걸 보게 될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Phil이 나중에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게 좋을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는 애플 스토어 업데이트에 대한 슬라이드들을 나열하고 특별한 슬라이드 하나를 그 끝에 바로 추가했다.
그건. 정말. 엄청났다.
스티브, 그의 프레젠테이션
우리는 1분간 슬라이드를 보는 내내 모두가 웃었다. 잠시 동안 진정을 하고 키노트는 처음으로 다시 리셋됐다. 그때 Phil이 강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으니 아주 훌륭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스티브가 리허설을 시작했다. “Switcher” 광고 캠페인을 지나 애플 스토어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소매점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이 끝날 때쯤 그는 이런식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12월 한달에만 140만명이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해서 “그래서 우리를 의심하는 모든 미디어 관계자 분들에게…”
그리고 그의 특별 슬라이드를 공개했다 – 포스터 아트인데, 모두가 일전에 본 적이 있을 것이다. – 한 남자가 웃으면서 커다란 커피 머그컵을 들고 있고, 그 남자의 얼굴 옆에 말풍선으로 다음과 같은 텍스트가 있는 1940년대 스타일의 그림이다:
“시발 좀 닥쳐 한 잔 어떠십니까? (How about a nice cup of shut the fuck up)”
그리고 최고의 순간은 – 우리가 몰랐던 순간이다 – 스티브가 잠시 멈추고, 마케팅 부사장을 보며 무표정하게 “어떻게 생각하나, Phil? 좀 과한가?” Ken과 나는 웃다가 맥없이 주저앉아 바닥을 구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스티브가 Phil을 속이려고 한 그런 노력은 그가 장난을 하는데 훌륭한 센스를 가지고 있다는걸 뜻할 뿐만 아니라, 그가 Phil이 농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추측에 Phil은 잠시동안 패닉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이다.
스티브는 항상 청바지와 검은색 터틀넥을 입지는 않았다. 애플에서의 내 초기 시절, 1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베테랑 엔지니어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 뒤쪽으로 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 창문을 통해 Caffè Macs로 갈 수 있는 큰 길을 잘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창 밖을 보다가, 나는 Jony Ive와 함께 걷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느라 주의가 산만해졌다. 손짓은 익숙한데… 잠깐… 대체 뭐지? 나는 창 밖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사무실 주인인 엔지니어는 뒤돌아서 보고는 “그래, 저 복장을 보고 정말 여름이 왔다는 걸 알지 – 스티브가 반바지를 입으면 말이야.” 반팔에 앞에 단추도 있는 열대 분위기의 셔츠였다.
농담은 제쳐두고, 나는 처음에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캠퍼스에는 정기적으로 격자무늬 킬트를 입고 다니는 직원을 포함해서 항상 특이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몇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스코틀랜드인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에게 특별히 멋져 보이는건 아니지만, 멋진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무실의 다른 긱들보다 피부가 잘 타 있기는 했다.
애플에서의 내 후반기 나날들엔 스티브를 사파리 개발 초기에 비해서 덜 보게 됐다. 부분적으로는 주변 환경 때문이었고, 부분적으로는 내 선택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보고할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이 적었고, 내가 보고를 할 기회가 생기면, 스스로 하기보다는 부하 직원이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렇게 함으로서 덜 붐비는 보고를 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스티브를 경험해 볼 수 있게 해줬다. 나는 모든 영광을 탐욕스럽게 원하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그랬다면 모두가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이변
한번은 평소보다 오랫동안 스티브와 함께한 회의가 없었던 적이 있다. 사실은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를 사내식당에서도 보지 못했고, 캠퍼스를 걸어다니면서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나서 스티브와 함께 하는 디자인 보고에 참여하라는 얘길 들었다.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감정적으로 동요했다. 스티브는 마치 누군가의 할아버지처럼 말랐고, 건강하지 못한 낯빛으로 몹시 수척해보였다.
그의 행동은 불안정해보였다. 그는 피곤해보였고, 평상시와 같은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는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스티브가 아프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암에 대해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이전엔 그게 얼마나 그를 힘겹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심지어 그 디자인 보고의 주제도 기억나지 않는다. 보고가 끝났을 때, 나는 빠르게 회의실을 떠나 내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본 것이 나를 너무 강렬하게 괴롭혔다는걸 깨닫고는, 나는 내 사무실 대신에 Darin Adler의 사무실로 갔다. 나는 누군가에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매니저로서 그런 일을 누군가 나에게 보고하는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됐다. 하지만 나는 Darin을 수년간 알고 지냈고, 그가 놀라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 쯤 우리 둘은 최고의 경우를 바라면서 최악을 준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갔다.
한 달 후 나는 스티브가 간 이식 수술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안심했다. 그 얘기는 많은 사람들을 겁먹게 했지만, 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여전히 과거의 스티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봤을 때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들 대다수가 그가 우리와 좀 더 함께 하기를 바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스티브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리는 사파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건 그가 사임하기 전인 2011년의 초여름이었다. 스티브는 그 해 1월부터 또 다른 병가를 떠나 있었다. 다시 점점 더 말라고 더 약해져가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출근했다.
새로운 사파리 기능의 디자인 보고에서 사파리의 윈도우 버전이 주제로 떠올랐다. 스티브는 우리가 더 경쟁력 있게 잘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어했다. 이 때쯤에 나는 스티브 근처에 있는게 다소 편안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편안하게 그냥 무뎌진 상태로 있기로 – 이 무슨 정신나간 짓인가 – 결정했다.
게다가 애플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윈도우용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이건 엔지니어링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 나는 간절하게 광고를 필요로 했다. 구글이 그들의 홈페이지에 크롬의 다운로드 버튼을 박아넣고, 텔레비전, 지면, 웹에서 많은 광고 비용을 쓰면 윈도우용 사파리는 크롬과 경쟁할 수 없었다.
방 안에 함께 있었던 Scott Forstall은 날 지지해줬다. Scott을 훌륭한 보스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날 위해 사파리와 웹킷을 이끄는 Darin Adler가 프로모션이 필요한건 단지 윈도우용 사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첨언했다 – 맥 사파리도 광고로 인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작은 디자인 리뷰 회의실 안에 모였고 몇몇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스티브와 단지 몇 피트 정도 떨어진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 문제와 제안에 대해서 때때로 생각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는 실제로 이 문제를 고려했다. 그리고 그건 희망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티브는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끝내 그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결정은 전혀 가혹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대답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대답이 집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iOS, 아이폰, 아이패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맥이나 OS X조차 광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디어가 스티브와 같은 비전의 소유자(visionary)로 하여금 심사숙고 해볼만한 시간을 갖게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날이었다.
그의 부고, 그의 마지막 기억
몇 달 후, 나는 감기와 약기운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었고, 뉴스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는 달랐지만, Scott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스티브가 죽었다고 말해줬을 때는 꽤나 놀랐다. 전해야만 하는 말을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기에, Scott의 그 호의에 항상 크게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스티브가 집에서 그의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난 것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게 좋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부하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들이 괜찮아 한다는걸 확인한 후, 나는 그들에게 팀의 누구라도 하루간 쉬는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얘기해 줬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실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홀로 등을 기대고 누웠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잠시간이었지만 내가 이 남자를 알게 된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원문 : Yoon J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