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유태인 변호사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닥치는 대로 자위행위를 하던 자신의 유년 시절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최근 번역 출간된 현대 미국소설의 거장 필립 로스의 1969년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의 줄거리다. 주인공 포트노이의 성에 대한 강박은 당시 성에 대해 개방적이던 시대 분위기에도 한때 미국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될 정도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로스는 성적 일탈의 원인으로 유년 시절의 압박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의 도덕성에 대한 강박이 되레 성도착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겉보기엔 완벽한 독신 뉴요커, 그러나 알고 보니 매일 포르노를 보며 수음에 탐닉하는 남자.
<노예 12년>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전작 <셰임>의 주인공이다. 남들이 보는 그와 진짜 그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생활을 가지고 있다.
성도착증은 곧잘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금지된 영역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개인의 성을 통해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영화들에선 성도착증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호기심의 소재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셰임> <돈 존> <님포매니악> 등 모두 유명 감독이 연출하고 스타 배우가 출연해 더 주목받기도 했다. 이 영화들에서 성도착증은 무한경쟁과 물질문명 속에 놓인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소재로 쓰였다.
성도착증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들
<셰임>에서 뉴요커 독신남을 연기한 배우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매그니토 역할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마이클 파스벤더다. 그는 겉으로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하는 남자다. 집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노트북으로 포르노를 보는데 심지어 회사 화장실에서까지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그는 콜걸은 만나지만 여자를 사귀지는 않는다. 책임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의 여동생(캐리 멀리건)은 오빠와 반대로 인간관계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관계중독증 환자다. 그녀는 집착 끝에 버림받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지만 뉴욕이라는 대도시는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감독은 일회성 소비사회가 되어버린 메가시티가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 묻는다.
<돈 존>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 조셉 고든레빗이 연출하고 직접 존 역할을 맡기까지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도발적으로 존이 자위행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포르노가 없으면 못 사는 야동중독자다. 심지어 강의실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야동을 본다.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면 백발백중인 매력남이기까지 한데 어떤 여자보다도 야동이 더 좋다. 중세 스페인에서 천 명의 여자를 꼬셨던 상상 속 난봉꾼 ‘돈 후안’이 현대사회에선 야동중독자로 부활한 것이다.
어느 날 매력녀(스칼렛 요한슨)가 나타나고 그는 야동 끊기에 도전한다. 그러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두 사람은 야동을 놓고 매번 다투는데 그때 그가 강의실에서 포르노를 보는 것을 눈치챈 여자(줄리안 무어)가 다가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히키코모리’와 각종 ‘본좌’들이 일상어가 된 시대, 골방에 틀어박힌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님포매니악>에는 여자 색정광이 등장한다. 아주 어릴 때 자신의 성기에서 센세이셔널한 느낌을 발견한 여자(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수많은 성적 경험 끝에 섹스의 비밀스런 묘약은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녀는 섹스중독자임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자신의 욕정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외친다.
현대사회에서 성도착증의 원인을 찾다
과거 영화 속 성도착증은 10대들의 호기심이나 악당의 성격장애를 묘사하는 장치로 주로 쓰였다. <아메리칸 파이> 같은 틴에이저 영화에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양들의 침묵> 같은 싸이코패스 영화에서 범인의 비뚤어진 욕구를 대변했다.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끝내 잡히지 않았던 범인은 여자 속옷을 논바닥에 펼쳐놓고 자위행위를 한 성도착자였고, <공공의 적>에서 패륜을 저지른 검사(이성재) 역시 샤워실에서 수음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최근 영화들의 경향은 조금 다르다. 성도착증을 무작정 터부시하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인간의 고독과 과도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현대사회의 물질 문명과 기술 종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성도착증을 그린다. 즉, 1인 가구 급증으로 인간 사이의 유대감이 약해지고, 무한 경쟁으로 정신이 피폐해지며, 또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성적 자극이 일상화된 환경이 성도착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무리 갈구해도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성에 대한 집착으로 해결하려 한다. 예전 인물들이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음을 했다면 요즘 영화의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비우기 위해 자위행위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는 춘향전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방자전>의 변학도(송새벽)일 것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공직에 올라봤자 별것 없다며 일찌감치 목표를 수정한다. 그리곤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 마을의 여자들을 하나씩 정복할 목표를 세운다. 예전 같으면 명백한 악당으로 그려졌을 성도착자 캐릭터지만, 이 영화에서 변학도는 악역이라기보단 ‘이상하지만 어딘지 귀여운 변태’로 현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원문 : 레이창의 영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