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쯤에 읽었던 논문을 기억에 의존하여 쓰려니 – 출장 왔는데, 해당 논문이 실린 책을 안 들고 와서, 한 밤에 기억을 더듬어서 쓰려니 – 오류가 많을 듯 싶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서 건너뛴 부분도 많고, 숫자들은 하나도 되살릴 수 없어서 대충 스토리로 연결했습니다. 주말에 시간 되면 좀 수정해 볼까 하는데 무려 18페이지를 말로 풀었더니 더 보고 싶지도 않군요. 다시는 이렇게 긴 걸 다시 쓰지 않을 겁니다. 퇴근 후 하루 저녁을 꼬박 허비해 버렸습니다.
틀린 부분도 많겠지만, 공장 다니는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이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으면 세상 사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이 글을 쓰다가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고 생각하는 -물론 답은 없습니다- 국가 vs. 사회의 관계의 관계 설정 에 대해서 몇 장을 더 쓰려다가 더 보기도 싫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쓰고나니까 외환 고갈의 원인 중에 종금사가 해외에서 단기 차입을 해서, 동남아에 빌려줬다가 태국 바트화에서 야기된 외환위기로 회수를 못하고 국내 외환 시장에서 외화를 조달하다가 외환이 고갈된 부분을 누락했는데, 그냥 수정하기 귀찮아서 놔둡니다.
그리고, 무식한 소리가 글 안에 워낙 많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고 틀린 게 있어도 완전 말도 안되는 소리면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문제면 그냥 수정 안 하고 그냥 놔둘 생각입니다.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은 관련된 책을 사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1. 들어가며
1.1. IMF 사태의 의미 – 관리 자본주의의 붕괴와 그 이후의 각 경제 주체의 변화 –
국가가 전체 경제의 직접 개입하여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plann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계획 경제 혹은 관리 자본주의에 의해 산업화에 성공하고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약간의 세부 조정과 외부 환경의 변화는 있었지만 1960년대 이후 30년 넘게 이러한 기조 하에 있었다. 내 생각에 우리 나라 경제는 해방 이후 딱 두 번의 분기점을 가지는데, 하나는 위에서 언급하였고, 그 경제 성장 모델이 가진 모든 문제를 순식간에 보여준 1997년의 외환위기(이른바 IMF 사태)이다.
1997년 외환위기(이후 IMF 사태 혼용) 이후로 각 경제 주체의 대응 방식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차입에 의한 높은 부채 비율을 중심으로 투자, 성장, 매출 중심이던 기업은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지 않고 수익성 중심, 현금 흐름 중심으로 변했다. 또한, 기업의 회계가 믿을 만 해졌다. 가계는 더 이상 20%가 넘는 저축률은 꿈의 나라 소리이고 저축이 아닌 가계 부채가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종신 고용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고, 입시에서 의대와 교대가 부활한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고 대학생이 공부를 하게 된다.(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나를 포함하여 공부 안 하는 대학생이 허다했다.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하면 욕 먹겠지만, 그때는 누군가 나에게 너 그렇게 놀다가 대기업 간다라고 했다.)
정부는 planner로서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과거 성장을 위한 SOC 투자에 주력하기 보다 이제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우려가 생겨났으며, 이에 수반된 재정 부담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97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1997년 이후 체제가 남긴 흔적들 때문에 그 이전 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대응을 하며 조심하고 있으나, 새로운 체제를 찾아내고 있지는 못한 듯 싶다.
1.2.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들,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의 예시 – 성 역할과 양성 평등 –
IMF 사태가 남긴 한국 사회의 변화는 단순히 외환,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삶 전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그 가정에서의 역할과 사회 전체에서 양성 평등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자. (작년에 썼던 페북 글에서 퍼온다.)
IMF 이전까지 여성의 지속적인 고용 상태는 예외적인 것으로 크게 두 종류였다. 상류층 가정 혹은 일부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의 자아 실현의 도구였거나, 저소득층 여성의 낮은 급여 수준의 노동(식당일, 농사)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중위 계층의 여성 노동은 Job Market에서의 임금 노동자가 아닌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에 종사하였다. 지금의 50대 이상들이 살던 고도성장기에는 명목 소득은 낮았을지 모르겠지만, 중산층 사무직 남성의 소득으로 여성들이 전업 주부로 육아에 힘 쓰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고도 성장 사회를 거친 후 IMF가 터지자 가정에서 가부장적 권위는 약화되었고, 여성은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득을 창출해야 하는 주체가 되었고, 역설적으로 여권은 신장되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 보다 IMF라는 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가정에까지 영향을 주어 성적 차별은 비약적으로 철폐되어 갔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적어도 중산층 가정에서 더 이상 딸을 예비 주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초에 논문을 읽으면서 이러한 노동 시장에서의 변화와 성평등이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에 언급한 논문에서 그것이 실증적으로 분석되었나 보다. 과거에는 중산층 남성의 외벌이 vs. 저소득층의 맞벌이로 가계 단위의 지니 계수 상에서 소득불균형이 적었다.
이제 중산층도 맞벌이에 나섬에 따라 중산층 맞벌이 vs. 저소득층 맞벌이의 소득의 구조가 되어 버렸다. -물론 가사 노동은 명목 소득으로 안 잡혀서 보정해주어야 하는 건 맞지만, 어차피 가사 노동은 GDP, GNI에 안 잡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다. –
이것은 흥미로운 딜레마를 낳는다. 양성평등의 신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활발히 한다. 그리고, 대략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짝을 이루어 결혼을 하게 되면, 이는 소득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하나의 평등이 다른 측면의 평등을 저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남녀가 만나 부자 남자는 가난한 여자와, 가난한 남자는 부자 여자와 짝을 이루면 소득 불균형은 양성 평등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Short Term에서 그것이 가능할 리가 있는가? (이성 접촉의 빈도, 가치관 등등을 볼 때 자신과 소득 +- 일정 범위에 있는 상대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걸 가지고 개인의 애정의 자유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은 세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신에게 코트디부아르에 가서 결혼을 하라는 것처럼 애당초 그다지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양성 평등과 소득의 평등을 저해하는 딜레마는 세상사의 문제들이 가지는 어려움을 살짝 엿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흥미롭다. 선거에 나오는 누구들처럼 조물주처럼 세상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고, 그저 눈에 닥치는 대로 하나 하나 자세히 관찰하며 조금씩 풀어내는 수 밖에 없다.
1.3. 이 글의 목적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IMF 사태가 이전 국가 주도의 산업화 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정도에 대해서는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순이 쌓여서 그러한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더 아쉬운 건 단기적으로 구제 금융을 갚고, 어쨌든 그 사태를 진정시키고 다시 성장의 트랙으로 돌아오게 만든 방법이 각각 어떤 것들이었고 어떤 영향을 우리 사회에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치 평가와는 별개로 사실 관계를 최대한 충실히 모으고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데이타를 모으려면 가설은 설정되어야 하니 가치가 개입되는 것 또한 한계이다) 이것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예전에 [이완용 평전]을 읽은 바 있는데 구한말의 정세를 아는데 꽤 도움이 되었는데 이걸 이완용 위인전으로 오인하여 서평에는 쌍욕만 가득하더라. 히틀러에 관한 연구서적이 독일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위인전이 아니라 평전이다. 역사의 문제적 인물에 대해 다루어 보는 건 필요하다.) 이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한 국가에서 가장 커다란 경제적 사건과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사건 조차 제대로 연구 되고 그 연구가 일반 사람들과 이해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있을 어떤 커다란 충격에 대비하는 데 있어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학자들이나 해당 필드에 계신 분들은 잘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중들의 공통된 인식은 부족한 듯 싶다. 밑에 썼던 조선업 관련 프로젝트 중에 같은 프로젝트 팀 분들에게 imf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아냐고 질문했다가, “금 모으기 운동 아님?” “빅딜?” “IT산업 아님?”이라는 답을 듣고, 경제관련이나 금융에서 일하지 않는 분들의 이해가 그러하구나라고 느꼈었다.
(솔직히 신용 카드 등을 이용하여 신용을 창출하고 미래 소득을 끌어다 써서 총수요를 늘린 거 아닌가 정도의 답을 원했음.) 당시에는 나름 바쁘고 힘든 프로젝트 중이었고 올해 초부터 여유가 생기면서 이에 대한 설명문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업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 개인의 과소비, YS 잘못, 단기 외환 관리 실패, OECD 가입, 금융 시장 개방과 종금사, 태국의 바트화 사태로 인한 날벼락 등은 다 나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지만, 원인은 간략하게만 다루고 넘어갈 예정이다.
이에 IMF 사태는 어떻게 극복되었고 그 극복 방법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위험 요소를 남겨놓았는지를 잠시 그 여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떠나보도록 하자.
1.4. 참고 문헌
주로 인용할 건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각 사회과학대학 교수님들이 쓰신 논문을 모은 [외환위기 10년 한국 사회 무엇이 달라졌나?(책 제목이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비슷할듯)]이고, 이중에 대학 때 은사이시자 현재 IMF 아시아 태평양 국장으로 계신 이창용 선생님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인용하여 설명할 예정이다. -사실상 이 논문의 대중적 요약 버전쯤 될 예정- 그 외의 다른 시각은 고려하지 않을 예정인데, 어차피 많이 알면 이렇게 무식한 글을 용감히 쓸 수 없기 때문이다.
2. IMF 사태의 원인
원인은 자세히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그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다루지 않겠으나 단기적으로 해결책과 관련된 직접적인 원인인 외환 고갈은 다루어 본다.
2.1. 금융 위기의 형태
경제 위기의 형태는 다양한 형태를 띄는데, 이러저러한 경우가 있지만 천재지변에 의해 실물이 지진이나 쓰나미로 훅 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금융 위기의 형태를 띄게 될 것이다. 금융 위기의 형태도 다양하겠지만, 결론은 만기에 돈을 못 갚아서 채무불이행과 파산으로 이어지거나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게 전부다. 한 마디로 현찰이 마른 거다.
그 현찰이 마르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양상이 다소 달라질 수 있기는 한데, 현찰이 마르면 현찰을 구하기 위해서(default나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자산을 투매하게 되고, 이것이 패닉으로 번지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현금 또는 안전 자산 성향에 의해 현찰은 더 마르게 되면서 디아블로, 크툴루, 바알 등등이 파티를 벌이려고 지옥문에서 머리를 비집고 나온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도 투자 은행들과 보험회사들, 은행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 되면서 현찰이 마르고, 자산을 투매하고, 위험도가 증가하면서 더욱 더 사줄 사람이 없어서 더 폭락하고 더 현찰이 필요해서 더더욱 투매하고 이런 게 경제 위기다. 금융 기관들이 현찰이 마르기 시작하면 기업이나 가계에 대한 대출의 연장을 거부하고 현찰을 회수하려고 들고, 산업과 가계로 번져 나가게 된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글로벌 금융 위기나 일본의 버블 붕괴나 우리 나라의 외환위기나 원인은 다 다르지만, 과정은 어차피 다 똑같다. 현찰이 마르니까 현찰을 확보하고자 하면서 실물이나 다른 금융 자산을 내던지면서 그 끝이 안 보인다는 공포심에서 패닉이 일어난다. 이때, 모두가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연준(중앙은행)이 등장하여 최종 대부자로서의 역할(은행의 은행)을 충실히 수행하여 현찰을 공급해 주거나 금리를 낮춰서 현찰의 가치를 떨어트려 주면 일단 위기는 진화된다.
(지난 번에 썼던 QE는 연준의 기준 금리가 0인 상황에서 쓴 이자율 하락 정책이고, 또한 현찰이 급하다고 현찰을 찍어나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억제하고 현찰을 공급한 방법이다.) 그런데, 현찰이 마른 주체가 가계나 기업, 금융기관이 아니라 정부라면? 사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2.2. 외환 위기의 발발 – 2중의 Mismatch –
그럼 IMF는 어쩌다가 현찰이 마르게 되었을까? 당시 금융 위기의 형태는 특이하게 외환 위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국내 통화가 마른게 아니라, 달러가 바닥나 버렸다. 여기에는 이중의 mismatch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mismatch는 일반적인 금융 위기에서 흔히 보이는 mismatch다. 가지고 있는 자산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장기 채권과 단기 채무의 결합이다. 받을 돈은 1.1억이 있고, 갚아야 할 돈은 1억이 있으니 전체 Balance상에는 문제가 없는데, 받을 돈은 6개월 후에 받을 수 있고, 줄 돈은 당장 내일 주어야 하는 경우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거나 장기 premium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참고1. 유동성의 개념 (경제학 전공자들 읽을 필요 없음)
자산은 보유 형태에 따라 유동성에 차이가 있다. 유동성이란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복잡하지만 당장 현찰에 얼마나 가까운지이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은 매각이 되어야 현금화 시킬 수 있고, 현금화 시켜야 빚을 갚던 다른 물건을 살 수 있으므로, 유동성 risk를 가진다. 대표적으로 현찰 10억과 도무지 팔리지는 않으나 시중 거래가가 10억으로 추정되는 강남의 아파트 사이를 보면 현찰이 유동성이 좋다.
아파트는 팔려야 돈이고, 10억 빚을 갚을 일이 있을 때 (계약 자체가 대물변제를 허락하는 소비대차 계약이 아닌 한) 아파트로 주면 안 된다. 유동성이 좋은 순서는 아래와 같다. 현금, 요구불예금(자유입출금 통장에 든 돈), 저축성예금(만기가 있는 적금이나 예금에 들어놓은 것), 채권(단기채권, 장기채권), 주식, 실물자산(공장의 기계나 부동산) 순이 된다.
우리 나라는 외화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외환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금사를 포함한 국내의 금융 기관들은 외국의 금융 기관들에게서 외화를 빌려와서 국내의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율은 7% 언저리를 육박하는 고성장 사회였고 (지금의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그러하다.) 당연히 명목 금리도 높았다.
반면 선진국의 금리는 이보다 낮았기 때문에, 환율만 안정된다면 외화를 빌려서 국내에서 대출을 하는 게 외국 은행들에 지불해야 할 금리와 국내 금리 사이의 스프레드를 이익으로 취할 수 있었다. 모든 구조가 과거와 같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외국의 금융 기관으로부터 단기 자금을 차입하여 기업들에게 장기로 대출을 해주었다. 대부분의 금융 상품은 장기 Premium이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내 돈이 오래 묶이면(유동성 리스크를 크게 가져가야 한다면) 그걸 보상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1년 만기로 돈을 빌려주면 연 이율 3%에 빌려준다고 할 때, 2년 만기로 빌려주면 연이율 3.2%는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예금을 드는 입장에서도 1년 정기적금의 이율이 3%이고 2년 만기 정기 예금의 금리도 3%면 누가 2년 짜리를 들겠나. 1년 짜리를 들고 다시 갱신하지. 그래서, 장기에는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여 실물 경제에 장기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충분히 단기로 조달된 자금이 갱신이 된다거나 단기 자금을 공급해 주려고 하는 곳이 충분하다면, 단기를 모아서 모아서 내 호갱들에게 장기로 주는 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게 금융의 본질이다.
십시일반 단기들을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모아서 평준화시키고, 남는 걸로 장기에 예대마진만큼을 더 붙여서 빌려주고 이익을 보는 것이 은행업이다. 그래서 단기를 가지고 장기에 빌려줬으니, 이런 리스크를 무릅쓰는 XX놈이라고 욕하지는 말자.
그럼 이 돈을 부도덕한 곳에 다 빼돌리거나 대출해 준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냥 그 이전까지의 대출로 보면 다 정상적이거나 큰 문제가 없는 대출이었다. 기업들은 그 대출을 가지고 투자를 했다. 고성장 사회였고, 먼저 깃발을 꽂으면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있었다. 그 대출들은 대부분 공장과 같은 기계 설비에 투자되었다.
즉, 유동성이 최악인 실물 자산의 형태로 존재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향후 사업을 잘 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기계 설비를 산 것이다. 기계 설비에 대한 금액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이자와 감가 상각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의 매출 이익이 발생해야 한다. 즉, 기계 값을 뽑는 건은 한참 후의 일이다. 따라서 대출을 장기로 가져가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까지 정리. 우리 나라는 높은 경제 성장률로 인하여 고금리였다. 종금사는 해외 금융 기관들로부터 단기로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와서, 국내의 기업들에게 장기로 대출을 해주었다. 국내 기업들은 고성장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여 일본에서 기계를 사오고, 공장을 지었다.
아무런 변동이 없다면 이 구조가 계속 굴러갔을 것이다. 일본에서 사온 기계로 기업들은 수출을 하고 무역 수지가 개선되어 외화가 쌓였을 것이다. 해외 금융 기관에서 빌려온 단기 자금의 상환 기한이 되면, 국내 종금사들은 연장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기업에 대출을 해준 기간이 만료된 게 있으면 회수한 원화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해외 금융 기관에 상환하면 되었다.
그리고, 국내 금융 시장에 달러는 종금사로부터 받은 대출을 바탕으로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서 열심히 수출한 기업들이 거둔 무역수지 흑자로 들고 와서 원화로 바꿔간 달러들이었다. 이 구조는 특별히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태국 바트화 사태가 나면서 동남아 금융 위기로 해외 자본들이 패닉에 빠진 것이다. 바트화를 잘못 샀다가 망한 해외 자본들이 달러가 말라가면서, 전세계에 뿌려 놓은 현찰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 나라 종금사에게 빌려준 단기 자금도 회수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종금사들은 당연히 연장을 해줄거라 생각했는데, 만기가 다가오자 연장 없이 원금 상환을 요구한 것이다. 종금사들이 기업에 대출을 해준 것은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서 돈이 없는데 상환 요구를 받으니 난감해졌다. 이게 만기의 불일치다. 둘째 mismatch는 환의 불일치(currency mismatch)다. 종금사들이 그래도 가지고 있는 돈이 있기는 있어도 이게 달러가 아니라 원화이다.
대출을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대출을 했으니, 달러는 없다. 그럼 국내 외환 시장에 가서 원화를 주고 달러를 구해서 상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외환 시장에 달러가 별로 없다. 김사장님이 종금사에서 대출 받아서 일본에서 기계 살 때 이미 원화를 달러로 바꿔갔다.
한정된 달러를 해외 금융 기관에 상환할 달러를 구하기 위하여 원화를 주고 달러를 구하는 비용이 올라갔다. (원화 대비 달러 환율 상승) 이게 급격히 심해지다보니, 원화는 쓰레기가 되고 달러는 더욱 귀한 몸이 되어 미친듯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두 가지.
하나. 김사장이 일본에서 기계를 사는데 달러를 주고 샀으면 그만큼의 달러가 모자랄 걸 몰랐냐…..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다 알고 있었다. 외화를 주고 소비재를 사면 그냥 소비하고 끝난다. 하지만, 외화를 주고 기계 설비와 같은 생산재를 산다면? 이 기계의 감가상각을 뽑고도 남을만큼 생산해서 수출한다면 당연히 기계 값 보다 더 많은 외화가 들어온다.
여기에는 IMF를 관통하는 한 가지 함의가 들어있다. 단기 관점이 없이 장기 관점에서 경제를 운영했다. 장기적으로 투자는 좋은 것이고 투자 수요는 좋은 수요이다라는 관점이다. 경제의 세 주체가 총수요를 구성하는 바 가계의 소비(C), 기업의 투자(I), 정부의 재정 지출(G)이다. 이 가운데 I는 더 큰 부가가치 창출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너무도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계의 소비는 죄악시 했다. (그래서, 외환 수지가 안 맞으면 사치품 수입에 의한 소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외화 잔고가 팍팍 줄어가고 있으면 눈치 챘을 거 아니냐.
김사장님이 기계 사느라고 종금사에서 외국에서 빌려온 외환 100만불 중 90만불을 갖다 썼는데 김사장님이 수출해서 매년 10만 달러씩 달러를 들고 오면 외화가 말라가는 게 보이지 않나? 그렇기는 한데, 돈이 오가는 건 물품 대금과 같은 무역 수지만 있는게 아니라 자본 수지도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 물건을 사고 반대 급부로 외화를 물건 대급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의 차입금처럼 실물과 관계 없이 돈이 왔다갔다하는 자본수지가 있다. 한마디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주식 시장 같은 것에 투자하느라 들고 들어온 외화가 있어서 김사장님이 고갈시킨 외환 보유고를 정상치로 유지하게 해주었다.
2.3. 패닉의 시작
태국의 바트화 사태가 나면서 외국 금융 기관들이 종금사에 빌려준 단기 자금을 연장하지 않고, 상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종금사들은 기업에 빌려준 돈은 장기로 묶여 있어서 상환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웠고(만기의 mismatch), 설령 돈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달러로 상환해야 하는 관계로(currency mismatch) 달러 수요가 엄청나게 들었다.
우리 나라 금융 기관에 자금을 빌려준 외국 금융 기관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증시에 들어와서 투자를 하던 외국 금융 기관들도 태국에서 번진 위기가 동아시아까지 전파될 위험성과 태국 바트화 사태로 인한 본사의 현찰 부족을 해결하고자 주식을 팔고 달러로 환전해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맨 얼굴이 드러나면서 외환 보유고가 고갈되었다.
외국 금융 기관이 단기로 빌려준 달러는 김사장님이 일본에서 기계 사는데 썼고, 외국인 주식 투자자가 들고 와서 바꿔간 달러는 들고 온 돈 보다 더 많이 바꿔 가고(1억 달러 들고 왔는데, 주식 투자를 잘 해서 벌어들인 돈을 포함해서 환전해서 가려고 하니 1.5억 달러로 솟았다.) 달러를 쓴 곳만 있지 들어올 곳은 없다.
유일한 희망은 김사장님이 기계로 만든 제품이 수출이 엄청 잘 되어서 달러를 보따리로 싸들고 와야하는데, 당시 무역수지는 장기에 대한 낙관으로 기계류들을 엄청나게 수입하다보니, 김사장님이 기계 산 돈 보다 적었다.
왜 장기를 낙관했을까? 왜냐면 장기는 늘 경험적으로 옳았고, 투자는 도덕적으로도 좋은 거니까. 불나방 인생처럼 소비를 하는 건 영 도덕 관념에 맞지 않지만, 투자 그것도 신기루 같은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아닌 기계에 투자하는 거 아닌가. 경험적으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는 – 마치 버블 붕괴 이전에 일본의 부동산이 떨어진 적이 없던 것처럼 – 좋은 일이었다. 사업 잘 안되면 기계 팔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3. IMF 사태의 해결 방법 – 단기 처방
3.1. IMF의 처방
원인은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처방은 크게 보면 단기와 장기로 구분 되고 단기 처방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단기 처방은 먼저 고금리 정책이었다. 자, 외화가 마르면서 배째(모라토리움), 달러 좀 달러 좀 빌려주세요(구제 금융 신청), 니 돈이지만 못 가져가(정부의 강제적인 외환 통제) 세 가지 기로 밖에 없었다.
이 중에 첫번째와 세번째 방법은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이고 앞으로 자본 시장에서 한국은 같이 끼어서 놀지 못하게 된다. “너 지난 번에 화투칠 때 딸 때는 꼬박꼬박 가져가더니 니가 잃은 판에서는 화투판을 엎어 버리거나, 죽어도 내 돈은 못 준다고 하더라’는 걸 알게 된 누가 우리와 화투를 치려고 하겠는가.
이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여 말라버린 현찰을 보충하게 된다. 그런데, 각 국이 각출하여 조성한 IMF도 달러가 무한정 있는 건 아니고 우리 나라에 다 쏟아 부을 수도 없다.
당시 IMF 구제 금융의 조건(conditional loan)은 널리 알려져 있기로는 고금리와 정부의 재정 축소로 알려져 있고, 경제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은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그 비판이 어느 정도 정설로 굳어진 듯 싶다. 하지만, 내가 본 논문과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흔히 하는 비판은 IMF 영감탱이들이 외환위기라고는 남미 밖에 못 보다 보니, 남미에나 쓰일 고금리와 정부 재정 지출 축소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남미에서 돈이 마르기 시작하는 건 대체로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정부의 방만한 재정 지출로 인하여 가계, 기업, 정부의 세 경제 주체 가운데 정부의 현찰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촉발될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를 그대로 적용하여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금리 +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제어하기 위한 재정 긴축 처방을 쓰게 되는데, 이를 우리 나라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비판이다. 우리 나라는 재정 건전성이 좋으며, 외환 위기는 태국의 바트화 사태라는 천재 지변에 의해 발생하였을 뿐 펀더멘탈은 튼튼하여 유동성 위기만 지나가면 충분히 수출을 통해서 외화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비판이다.
3.1. 고금리 정책
그러나, 이는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일면만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 급한 현찰은 IMF가 공급했지만, 전체 외화 수요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랐다. 국내에서 환전하여 본국으로 달러를 들고 가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를 줄이거나 늦추기 위해서 당근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고금리였다.
금리가 20%가 넘어가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 빼가려는 현찰의 유출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게 될 지도 모를 risk를 감안하여도 20%의 프리미엄이라면 충분히 모험을 걸어볼만 할 수도 있고, 전세계 각국의 신흥 시장에 들어가 있던 자금들 중에서 우리 나라에 묻어 두면 20% 이상의 보상을 받게 되니 다른 선진국이나 다른 안정된 이머징 마켓에서 돈을 빼가는 게 유리하도록 한 것이다.
즉, 고금리의 목적은 남미처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한정된 IMF 자금으로 패닉을 잠재울 수 없으니 시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외환 수요를 줄이는 방법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덕에 달러 가치와 높은 이자율을 노리고 외국 자본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던 돈들을 회수하고 달러로 바꿔서 본국으로 가져가지도 않고, 일부 여유가 있었던 투기 자본들은 오히려 우리나라에 달러를 집어 넣어서 신나게 국내 자산을 취득했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나 건물들은 100억 하던 게 60억으로 떨어져서 똥값이 되었고, 달러가 1달러당 2천원이 되었으니 예전에는 천만달러를 주고 사야했던 게 300만 달러만 있으면 사놓고 기다리는 방법을 취했다. 실물 자산 뿐만 아니라 선진국 금리가 3~4%였다면 40%까지 되는 이자율이었으니, 돈 빌려간 사람이 파산할 가능성을 고려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자금들은 새롭게 유입되거나 유출이 덜 됐다.
즉, 고금리는 경제 위기의 형태가 외환 부족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외환의 유출 속도를 늦추고, 투기적 자본이라도 국내에 유입시키는 목적으로 내려진 단기 처방이었다. 만약 외환위기 형태가 아니라, 가계 자산을 바탕으로 행한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국내 금융 기관들이 패닉에 빠졌다면 (마치 서브 프라임 사태처럼) 고금리 정책을 쓰지 않고 저금리와 유동성 추가 공급의 처방을 내렸을 것이다.
이를 정량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차트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수차례 언급했다시피 나는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으며 공장 다니면서 산업공학과 나온 사람들이 할 일인 기계 효율 높이고 뭐 그런 일을 하다보니, 자본 순유입/유출에 대한 자료를 어디서 구해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니 넘어간다.
3.2. 정부의 재정 긴축 vs. 재정 확대?
이 부분이 가장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다. IMF는 우리 나라 정부의 재정 지출을 제어하고 돈을 못 풀게 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 IMF가 요구했던 조건은 정부 재정의 균형이었고 (즉, 재정 적자 0%) 나중에 -1.5%의 정부 재정 적자를 용인해주었다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근거로 우리 나라는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지 않았는데, IMF 늙은이들이 남미만 처방하다, 개뿔도 우리 나라 실정에 대해서 모르고 신흥국들의 정부는 방만하다고 그냥 판단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 비판은 국제 회계 기준과 우리 나라의 회계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당시 IMF는 우리 나라 정부에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아주 폭넓은 정도의 재정 지출 확대를 용인해주었고, 사실 IMF 사태 극복의 핵심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정부는 돈을 뿌려주어야 한다.
지난 달에 내가 페북 타임라인에 내 스스로가 리버테리안이라고 글을 쓰면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이를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전략) 나는 리버테리안이다. 내가 관념하는 퇴행은 파시즘이고,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전체에서 개별로의 이행이다. 내가 생각하는 국가란 이렇다. 나는 개개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나가는 아버지로서 역할하는 도덕 국가로 국가를 관념하지 않고, 국가를 마을에 불이 났을 때 같은 긴급 사태에 대비하여 존재하는 소방서로 위기의 순간에 공공성을 발휘하는 위기 대응 센터로 관념한다. 그리고 이 위기의 순간에 국가가 뿌리는 건 물이 아니라 돈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대응 과정이나 IMF 사태 극복에서 보듯이. 국가가 직접 여러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가치를 실현하고 개개인의 삶을 보더듬어 주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어렸을 때와 달리 이런 국가관으로 변해감에 따라…
국가는 사회의 자율성이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며 위기 관리자로 올바르게 역할하기 위해서는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여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정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작년 말에 반나절만에 휘갈겨 써서 페북에도 공유한 우리 나라의 담세 구조에 대한 글에 잘 드러난다. –
위기의 순간이 아닌 평상 시에 개인의 자발적 결사체인 사회가 국가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점잖지 못한 것과 불법이 구별되어, 굳이 불법은 아니지만 점잖지 못한 것을 자제하도록 규범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혼인 중 외도 같은 게 불법이 아니라 점잖지 못한 것으로 멀쩡한 사람이면 자제하는. 이걸 불법으로 규정하여 굳이 국가가 사법 체계를 발동하여 경찰이 잡아 넣고 검찰이 기소하여 법원이 재판하고 교정 기관이 형 집행을 할 게 아니라.)
자, 정부 재정 지출을 균형 재정을 유지하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정부가 돈을 뿌릴 수 있었을까? 금융 위기로 인하여 오히려 세금을 걷어들인 건 더 적어졌는데, 어디서 돈이 나서 뿌릴 수 있을까? 세입은 오히려 줄었는데, 돈을 뿌리려면 적자 재정을 편성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럼 균형 재정이라는 말과 모순되지 않는가?
이것의 비밀은 바로 IMF가 요구한 균형 재정은 ‘협의의 정부 재정’의 균형을 의미하고 ‘광의의 정부 재정(관리대상 수지)’이 아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빚을 지면 협의의 정부 재정에 적자가 잡힌다. 하지만, 공기업을 설립하고 이 공기업이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빌려서 뿌리면 이건 협의의 정부 재정에는 영향을 안 미치고 광의의 정부 재정만 적자가 된다.
물론 공기업은 100% 정부의 출자이고, 채권은 정부 보증채로서 공기업이 안 갚으면 정부가 갚아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낸 빚이다. 당시 국제 기준이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부 재정은 광의의 정부 재정을 집계하나 당시에 우리 나라 재정 집계는 협의의 정부 재정에 한정해서 집계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내가 금융권에 있지 않아서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를 설립하고 이들이 정부가 100%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돈을 풀었다. 공기업 부채에는 영향을 주었으나 정부 재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물론 이에 대한 이자라던지 일부는 정부 재정에 반영되기는 하였다.)
균형 재정이 아니라 IMF에서는 넓은 재정 적자를 용인해주었고, 다만 그 방식이 정부가 직접 돈을 뿌리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법인이나 사실상 한 몸인 공기업을 통해서 뿌리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IMF는 어느 정도의 재정 적자를 용인해주었던 것일까? 무려 -15%가 넘는 적자 재정 편성이었다.
이 돈을 가지고 두 개의 공기업은 먼저 모든 패닉의 중심에 있는 -미국의 글로벌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다- 금융 시장부터 안정시킨다. 대공황에서 보듯이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넘어가면 세상은 끝난다. 금융 기관이 망하기 직전이거나 망해서 대출을 회수하거나 예금을 떼어먹기 시작하면 산업과 가계 모두 그냥 끝장이 난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공기업은 은행과 각 금융 기관의 부실을 정리하고 금융 시장을 안정화 시킨다. 유동성을 공급해 줘서, 일단 심장박동을 유지해주었다. 은행들이 통폐합되고, 부실 채권이 인수되고 하는 과정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즉, 단기적으로는 신용 경색으로 인한 패닉을 잠재우기 위해서 -글로벌 금융 위기의 QE에서 보듯이- 먼저 금융에 돈을 쏴주어야 한다. 이 역할을 미국은 연준이 자산 매입으로 해주었고, 우리는 공기업을 설립하여 정부가 출자하고 채권 발행 시에 보증을 해줘서 실탄을 마련하고, 이걸 금융에다가 쏴주었다. 물론 공짜로 받은 건 아니고, 혹독한 구조 조정과 통폐합을 당하고 가지고 있는 실물 자산이나 채권을 내어놓기는 하였지만, 어쨌거나 현찰을 공급 받았다.
이때 정부가 뿌려준 돈은 아래와 같이 확인된다.
보시는 바와 같이 광의의 정부 재정은 1997~1999년까지 약 60조원의 재정 적자를 볼 정도로 퍼부어졌다. 물론 협의의 정부 재정은 이때도 거의 균형 재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에 내가 표시해 놓은 푸르스름한 삼각형의 면적이 당시 광의의 정부 재정 적자의 합인데, 1997~99년의 3년간 (97년 초반에는 별로 안 퍼부어졌을 테니 약 2년이 조금 넘는 사이에) 통합 재정 기준 38조, 관리 대상 수지 기준 58조의 재정 적자를 볼 정도로 팽창 정책을 썼다. 참고로 97년의 통합 재정 기준 우리 나라의 재정 규모는 100조였으니, 3년 사이에 58조의 적자를 편성했다는 건 연 평균 20%에 육박하는 재정 적자를 편성했다는 의미가 된다.
자, 이제 내가 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리버테리안 운운하면서 세상에 불이 났을 때 정부는 미국이던 우리 나라던 어디를 막론하고 물을 뿌리는 게 아니라 돈을 뿌리는 거라는 의미가 이해가 되는가. 이렇게 돈을 뿌릴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나라가 당시에 정부 보증채를 바탕으로 채권을 마구 발행해서 돈을 뿌릴 수 있었던 건 Game으로 따지자면 마지막 필살기인데, 이 필살기를 쓰려면 대외 신용도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 재정건전성이 있어야 한다.
즉, 똑바로 살아왔고 떼어먹을 놈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돈을 어디선가 빌려올 수(채권 발행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위의 그래프에서 보이듯 우리나라의 재정 수지는 남미와는 다르게 늘 좋았고,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저 디아블로가 방문했을 때 차만 대접하고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국가 부채를 직접 지식경제부에 접속해서 그려 보려고 했는데, 정작 중요한 1997년 이전 자료가 없어서 외화 위기 이후에 부채가 얼마나 급격히 늘어났는지는 확인할 수 있어서 1997년 이후로만 그려봄. 직접 그렸으니 건너 뛰지 말자. 아쉬운 건, 그 이전에 정부 재정 건전성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상대적으로 안 보인다.
물론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서 어떻게 굴린거고 채권을 발행하여 미래 세입을 댕겨오던 어쨌든 국가는 어차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세입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고통과 부담은 국민의 몫이고, 국가가 잘해서 IMF를 극복하고 국민은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국가의 세입은 국민의 몫이니 국가가 쏴준 돈은 다 결국엔 국민에게서 나온 돈이다.
4. IMF 사태의 해결 방법 – 중장기 처방
위의 처방으로 일단 지옥에서 올라온 디아블로가 차를 한 잔 마시기는 하였지만, 고주망태로 파티를 벌이지는 않았다. 당시 우리 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5%~-7% 사이인데, 나는 지옥의 기준을 -5% 경제 성장률로 대충 생각한다. 경제 성장률이 -5% 정도 되면 자살자가 속출하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나앉게 되고,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숫자다.
그러니, 예전보다 좀 성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생산을 줄이더라도, 나눠서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5% 성장으로 기존 대비 95% GDP가 되면 수많은 가장이 한강에 뛰어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깨져 나갈 때 성장률이 0% 정도였나 -1%였나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옥이라는 게 숫자화될 때 그 숫자는 그렇게 크지 않다.
이제 디아블로를 차만 대접하고 잠시 지옥문을 너머로 돌려 보냈으니, 이 사태를 일으킨 원흉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바로 은행과 종금사가 매개하기는 하였지만, 결국 외화를 가져다 쓴 건 김사장님이 일본에서 기계 살 때 지불했던 돈이다. 당시 총 수요 -그냥 GDP로 보면 된다.- 정부 재정의 비율은 20%가 안되었고, 민간의 소비도 (과소비가 문제라고 했지만, 민간 소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50% 미만이었고, 총 수요에서 다른 국가 대비 매우 높은 것은 기업의 투자로 총 수요 중 35%를 넘게 차지했다.
거의 묻지마 투자 수준으로 투자가 되었고, 투자는 장기적으로 return이 발생하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문제 의식도 적었다. 잘은 모르지만, 요즘 GDP를 보면 정부 재정 지출이 20%대일 것이고 기업의 투자 수요도 20%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지금 보다 1.5배 정도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지금 GDP 중에 기업이 24% 과거 IMF 전에는 36%라고 한다면 1.5배 인데, 한국은행 자료를 안 찾아봐서 모르겠다. 대충 맞을 거 같다.)
즉, 우리 나라 경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주도형 산업을 선별적으로 육성하였고,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산업의 -얼마전에 조선업에 대해서도 썼다시피- 투자를 하면 무조건 잘 될거라는 낙관이 지배하고 있었고 이것은 대우나 한보에서도 보듯이 무리한 차입과 방만한 경영을 불러왔다.
산업의 공급 과잉을 -over capacity-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고, 이러한 과도한 중복 투자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의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 IMF와 정부는 일단 금융 시장의 패닉을 잠재우는데 주력하고, 그 패닉을 잠재우고 나면 그 원인인 산업에 대한 개선을 진행하는 two track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결국 산업의 구조 조정은 불가피했다. 기업들은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여 부채 비율을 낮추고, 수익성이 담보 되지 않는 투자를 억제하여 과잉 투자와 고성장과 결별한다. 워크아웃을 실시하고, 산업 내에서도 중복 투자로 인한 공급 과잉과 over capacity를 막기 위해 정부 주도의 수익성을 낼 수 있는 합리적인 사이즈로 산업 내에서 합병을 하게 되는데, 이게 이른바 빅딜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왜 나를 중심으로 공급 과잉을 해소하지 않고, 내 껄 쟤한테 넘겨야 하냐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의견이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일리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내가 판단할 능력도 안목도 없고 전체적으로 산업의 구조 조정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제 김사장님과 김회장님은 더 이상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요즘 이게 뜬다며?’라는 판단으로 기계를 일본에서 사와서는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현금 흐름을 생각하고, 수익성을 판단해야 시대가 열린 것이다. 외형을 키우고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그 과실이 달콤하게 돌아오리…라는 세상은 가버렸다. 당연히 대부분의 고용을 책임져 주던 산업 특히 제조업이 이렇게 변해 버리니, 고용 시장도 개판 5분전이 되어 버렸고.
어쨌던 금융과 산업에 대한 정책을 바탕으로 단기/중기 패닉은 잠재웠고, 이후에는 높은 환율(위험이 높아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싸구려 원화)을 바탕으로 수출에서의 원가경쟁력이 향상되었고, 수출을 통해서 꾸준히 무역히 수지를 흑자를 누적시켰고, 결국 IMF에 조기에 상환하고 끝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5. IMF 사태가 남긴 위험 요소
채권 시장이 어떻게 활성 되었는지, – 국채가 발행되고 유통되려면 채권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하고, 금융 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금 조달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금융 시장이 형성되도록 정부가 주도하였고, 금융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 저렇게 투입된 공적 자금이 어떻게 debt to debt이 아니라 debt to equity로 정부가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주식 매각을 통해 회수되었다던지 하는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산업의 구조조정과 이에 필요한 자본을 정부가 다 조달할 수 없다보니, 사모펀드(PEF), 구조조정회사(CRC) 등이 자본 시장에서 허용되고 돌아가게 된 것 등등은 모두 다루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도 궁금하시면 각자 찾아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결론으로 도약한다.
5.1. 사회의 변화
과거에 고성장을 기반으로 한 게임의 룰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을 때 사회의 각 부분은 급격한 변동을 겪으며 깨져 나간다. 요즘 전세와 주택 시장에 관심이 생겨서 가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전세도 바로 IMF 이전의 경제 체제의 고성장 산업화에 최적화된 제도였다.
만성적 자금 부족과 고금리를 바탕으로 발달한 사금융으로 임대 수익이 아닌 자산 가치 상승(capital gain)을 추구하는 모델이었다. 이제 저성장과 cash flow가 중요해지고 자산 가치 상승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영향을 받는 제도이다.
외환도 마찬가지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서 1년 정부 재정에 준하는 1년 GDP의 약 30%에 육박하는 금액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현찰로 들고 있는 건 아니다) 3500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다른 나라 수준으로 적절히 줄일 경우에 경제성장률이 0.x% 높아질 수 있지만, 그런 Risk를 감당하기에 디아블로를 보고 너무 무서웠던 경험이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부채 비율을 낮추고 수익성 중심으로 돌고, cash flow 중심의 경영을 하고, 회계 투명성이 생겼고 다 좋은데, 이제 더 이상 risk taking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 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쓰고 동물적 감각 혹은 야성적 충동이라 읽는다.animal spirit)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것은 고용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고,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이러한 경제 체제의 transformation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양성 평등의 문제, 고용 시장에서의 양극화, 등등. 또 하나는 사회의 기존 제도들이 저렇게 급격히 깨져 나가게 되면서 사회안전망이 문제가 되었다.
예전에는 자식을 키워서 대학에 보내거나 상고/공고에 보내면 한 가족을 건사하고 다시 그 자식을 키워내고 부모를 봉양하는 안전망이 있었다. 또한, 몇 년 뼈빠지게 고생하면 집을 사서 주거 안정을 추구할 수 있거나 적어도 그런 희망을 품으며 살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마치 80년대 90년대가 태평성대처럼 써놨지만, 어쨌거나 이전 대비해서 살만해졌다는 의미 정도로 양해해주시길. –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걸 IMF 사태 1년을 겪으며 처절하게 느꼈다.
1960년대 이후 형성된 국가 주도의 수출을 통한 산업화와 고성장의 패러다임이 끝난 이후 그 이후에 사회의 각 분야는 다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산업의 구조 조정 등을 수행하면서 더 이상 아들이 아버지를 봉양할 수 없는 사회에 대비하여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동시에 하기 시작하는데, 고용 보험, 국민연금 등이 도입된다.
5.2. 위험요소
정부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입될 수 밖에 없었던 이 제도들의 문제는 이 제도들로 인하여 정부 재정건전성은 악화 일로로 치달을 것이라는 게 비교적 자명하다는데 있다.
언젠가 국민연금에 대해서 썼던 적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우리 나라가 어떠한 형태의 경제 위기가 오게 된다면 이를 돈을 뿌려서 패닉을 잠재워야 하는데, 정부가 뿌릴 돈이 없도록 재정을 고갈시킬 것은 비교적 자명하게도 국민연금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 운운하는데, 이건 국민 연금 개혁의 시발점일 뿐 국민 연금 규모에 비하면 미미하다.
예전에 페북 타임라인에 썼던 걸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을 조세처럼 징수하여 운용하여 시장 수익률 이상을 연금 가입자에게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결국 연금의 수익률은 시장의 이윤율과 같아질 것이고, 이보다 높게 수급을 정해놓은 것은 연금의 발랜스를 깨트려 연기금이 고갈 될 거라 믿는다. 게다가, 연금 운용을 위한 공기업의 방대한 조직은 관리 비용을 증가시켜 연금의 고갈을 앞당길 거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마찬가지로 강제 징수하는 연금에 대한 저항을 상쇄하기 위하여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고 이 수익률과 연금 관리 조직의 운영 비용이 더해져 연금은 수급자가 늘어나게 되면 결국 고갈되고 정부가 세금으로 메운다.
이에 예외는 부과식으로 개인이 낸 것을 돌려주는 방식의 국가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2개 있는데 하나는 칠레이고 나머지 하나는 싱가포르이다. 칠레는 국가가 연기금을 직접 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민간 보험사가 운용한다. 가입자는 연금에 가입이 강제된다는 거나 개인과 회사가 반반씩 원천징수해서 불입한다는 건 우리나라와 같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아니라 교보생명이나 삼성생명에 연금 상품을 비교해서 가입하면 된다.
보험사들은 더 많은 수신을 하기 위해 경쟁하고 합리화하여 효율을 높인다. 뭔가 비슷한 게 생각나지 않는가? 맞다. 바로 우리나라 자동차보험과 유사하다. 자동차 보험을 반드시 가입해야 하고 최소로 가입해야 하는 범위는 정해져 있지만 국가가 직접 보험사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가입하고 불입하고 있다는 증명만 하면 된다.
싱가포르는 조금 더 노골적이다. 아주 단순하고 무리하게 도식화하자면, 각자 노후 대비용 정기저축을 강제로 든다. 그리고 매월 월급에서 개인과 회사가 이 정기적금에 불입한다. 수급이 개시되는 시점까지 강제로 해약도 안되고, 수급이 개시된 이후에도 일시불 지급이 안 된다.
이 두가지 모형은 모두 기금 고갈의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뿐이고 정부는 은행에 그러하듯 지불보증 정도만 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소득재분배를 연금의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자기가 낸 것을 돌려 받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민간의 경쟁을 통해서 수익률을 높이도록 자극을 하지만, 시장 수익률 이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연기금을 agent로 하여 직접 운용하거나 다른 민간사에 운용을 위탁하거나 하여 운용수수료를 늘리지도 않는다. 결국 연기금의 문제는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관점이 핵심이다. 내가 낸 만큼 되돌려 받는것이라면, 국가가 굳이 강하게 개입하여 직접 프로그램을 집행할 필요가 없이, 가입과 최소 납입 금액만 정해주면 된다.
아직은 수급 보다 납입이 많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명확하게 이것은 문제가 될 것이고 정부의 재정건전성의 폭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금융위기가 온다면 그 연결고리에 LH공사로 대변되는 부동산과 관련된 공기업 부채와 연기금은 필수 요소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자기가 낸 것 보다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모델은 장기적으로 유지가 가능하지 않은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더 내고 덜 받아서, 연기금 고갈을 막는다는데… 그렇게 할거면 사적 연금 대비 국민연금의 매력이 없어질 텐데, 이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연기금 풀어서 임대주택을 짓자는 둥, 외국 기업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자는 둥 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득해진다. 지금연기금도 2050년이후인가… 하여튼 몇 십년 후에 고갈된다. 하지만, 지금은 400조에 달하는 뭉칫돈이다보니 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정책 제안자들이 난무한다. LH공사에서 공공 임대주택을 지으면 한 채당 약 1억씩 손실이 발생한다.
한 채에 1억 넘게 들여서 지었는데 이에 대한 이자 수준인 월 20만원 남짓 임대료로 받으니, 금융비용도 못 건지고 원금 1억은 회수가 안된다. LH공사에서 공공임대주택 1만호 건설하면 1조 부채가 발생하고 100만호 건설하면 100조다. 국민연금을 여기다 집어 넣으면 연기금 수십조가 빵꾸난다. 결국 전체 국민의 노후보장을 희생하여 특정 계층의 주거안정을 추구하자는 소리가 된다.
결국 금융 위기든 외환위기든 어떠한 종류의 헬게이트가 열리면, 물을 뿌려야 하는데 국민연금으로 평소에 마을 공용의 식수로 용하고 있다는 소리다. 이걸 막으려면 개인 적립식으로 해서 낸만큼만 돌려주는 수 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고. 물론 최근 오석태님이 언급하신 바와 같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의하면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연기금으로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놓으면 수익률이 높아져서 오히려 연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거기에 마을의 불 끄는 돈을 판 돈으로 걸기엔 아직 좀 더 고민하고 검증해봐야 할 것 같다. 두서 없이 써서 결론을 내는 게 힘든데, 금 모으기 등등은 금액이 전체 외환 추가 확보하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미하였으나, 다만 변화관리로서 한 마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는 효과는 있었을 거라 생각함.
IMF는 단기적으로 고금리를 통한 외화 유출 속도의 지연 + 정부 재정 확대로 금융 패닉을 잠재우고 금융 기관의 파산을 막아서 극복했음. 중기적으로는 외환 고갈을 가져온 산업의 과잉 투자를 정리하는 구조 조정을 실시함. 장기적으로는 약한 원화를 바탕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여 수출을 많이 하여 외환을 확보하여 IMF에 상환하고 졸업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었고,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확대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국가 부채는 상승일로다. 아직까지 터지지는 않았으나, 국민연금이 고갈되어 정부 재정이 투입되면, 향후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 정부가 쓸 실탄이 없을 것이라 선제적으로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
끝.
읽은 지 1년은 된 논문을 머리 속에서 재구성하려고 하니, 잘 기억이 안 나서 건너뛴 부분도 많고, 숫자들은 하나도 되살릴 수 없어서 대충 스토리로 연결했습니다. 주말에 시간 되면 좀 수정해 볼까 하는데 무려 18 페이지를 말로 풀었더니 더 보고 싶지도 않군요.
사족 : IMF가 제공한 차관의 규모는 580억 달러인데, 금 모으기를 해서 외국에 금을 팔고 받은 금액은 22억 달러다. (4% 미만) 애시당초 금 모으기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 자체가 아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제 정책이라기 보다는 위기 때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변화 관리로서의 의미가 크다.
원문 : darrel76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