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원을 개발하겠다며 MB 정부가 쏟아부은 국민혈세 태반이 휴지조각이 될 모양이다. 총투자액은 43조원. 회수된 건 고작 3조 6천억원에 불과하다. 경영이 부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 때문이다. 투자 결정 과정에 정부 실세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1달러짜리를 1조원에 샀다
황당한 거래도 있었다. 2009년 석유공사가 사들인 하베스트에너지. 애당초 제안액보다 2조원 정도의 ‘웃돈’을 주고 인수했다. 당장 실적을 내라는 MB 정부의 호통 때문이었다. ‘웃돈’ 2조원에는 하베스트에너지 자회사인 노스아틀랜틱 리파이닝(NARL) 인수금 1조원도 포함됐다.
하베스트에너지가 NARL을 끼워서 판 것이다. NARL은 연간 1000억원 적자를 내는 정유업체다. 섬에 있어 입지도 안 좋은데다 40년 이상 된 공장이라 설비 노후화도 심각하다. 1986년 NARL을 소유하고 있던 캐나다 국영석유회사가 이 회사를 단돈 1달러에 판 적이 있으니 1달러짜리를 1조원 주고 산 셈이다. 얼마 전 석유공사는 NARL을 매각했다. 그간 발생한 적자폭을 감안한다면 1조 수천억원을 날린 게 된다.
인수작업에 개입한 투자자문회사가 있다. 석유공사가 하베스트에너지 인수를 위해 선정한 해외투자자문사는 메릴린치 증권 서울지점. 지점장 김형찬은 은 MB의 ‘40년 집사’로 불리는 전 청와대 총비기획관 김백준의 아들이다. 메릴린치는 선정에 참여한 다른 업체보다 평가가 좋지 않았는데도 최종 자문사로 선정됐다.
4조 5천억짜리 인수 자문역은 MB 집사의 아들
1차, 2차 심사 모두 계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1차에서 10개 업체 중 5위, 2차에서는 4개 업체 중 3위에 그쳤다. 반면 심사위원들의 판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계량 평가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주관적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권력 실세를 배경으로 둔 덕분인가.
하베스트에너지 사업성에 대한 메릴린치의 평가는 장밋빛이었다. ▲중질유 처리 최적의 조건 ▲정제 제품 100% 시장 판매 ▲순이익 증가, 원료비 감소 ▲낮은 위험성, 높은 수익성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자문료 80억원을 챙겼다. 단돈 1달러짜리 하베스트에너지 자회사를 1조원에 사들이도록 유도한 곳이 MB 집사의 아들 김형찬 씨가 지점장으로 있는 메릴린치다.
김씨가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으로 발탁된 건 지난 2008년. 한국투자공사(KIC)가 메릴린치에 2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직후다. 당시 KIC가 메릴린치에 2조원을 투자하게 된 배후에 김씨의 아버지 김백준씨가 개입돼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김씨의 메릴린치 행과 KIC의 투자결정이 인과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냄새가 진동한다.
김형찬이 메릴린치로 영입된 배경
김백준씨는 금융전문가다. 고려대 상과대학(MB의 2년 선배)를 나와 외환은행에 입사해 현대종합금융을 거쳐 삼양종금 사장을 지냈다. MB와는 40년 지기로 줄곧 MB 곁을 지켜온 인물이다. 17대 대선에서 MB가 당선되자 세간에서는 ‘김백준에게 어떤 자리가 주어질까’가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였다.
메릴린치가 KIC에 투자 요청을 해온 건 2008년 1월. MB가 대통령직인수위를 꾸릴 때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15조원 이상 손실을 보게 된 메릴린치는 파산 위기에 몰려 있었다. 국내에도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메릴린치의 요청이 있자 정부가 움직였다. 당시 홍석주 KIC 사장과 재정경제부 조인강 심의관이 대통령직인수위 강만수 간사에게 투자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 이틀 뒤 KIC는 운영위원회를 개최한다. 투자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속전속결로 진행되면서 절차를 위반했다는 문제점, 경영권 확보 없는 단순 투자라서 부적합하다는 반론, 그리고 KIC가 운용 중인 외환보유고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내부 판단을 무시한 채 한차례 정회된 뒤 속개된 회의에서 불과 15분 만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한국투자공사 파산 위기 회사에 2조원 투자, MB 집사의 작품?
투자 결정이 있는 지 얼마 안 돼 MB 집사의 아들 김형찬씨가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으로 영입된다. 김씨 뿐 아니다. 관여했던 인물들 모두 승승장구한다. 강만수 인수위원은 MB정부 초대 기재부 장관이 됐고, 홍석주 KIC 사장은 제일모직 사외이사, 박제용 KIC 이사는 외환은행 수석부행장, 조인강 기재부 심의관은 세계은행 대리이사로 영전했다.
KIC 내부 직원들조차 ‘말도 안 되는 투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강력한 힘에 떠밀려 엄청난 돈이 메릴린치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권력형 비리란 얘기다. 우려했던 대로 투자 결정 8개월 뒤인 2008년 9월 메릴린치는 BOA(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매각된다. 이러면서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고 현재에도 1조원 이상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이 황당한 투자를 당시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가 주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KIC가 메릴린치에 투자하는데 걸림돌이 없도록 KIC의 투자제한 규정을 삭제했으며, 투자에 필요한 법률 자문료도 투자주체인 KIC가 아니라 재경부가 부담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재경부가 주도했다면 결국 MB 인수위가 지시했다는 얘기가 된다. 파산 위기 업체에 혈세를 투자했다는 것은 악질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돈의 종착지는? 먼지처럼 사라진 혈세 수조 원
이 돈의 종착지가 메릴린치가 아니라 제3의 회사이며 메릴린치는 ‘중간역할’을 했다는 풍문이 파다하다. KIC가 메릴린치에 투자하면 메릴린치는 이를 국내에 있는 어떤 회사에 투자하기로 하고 짜고 쳤다는 의혹이다. 돈의 종착지로 알려진 이 국내회사는 어디일까. MB의 형 이상득씨의 아들이 임원으로 있는 회사라는 의혹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메릴린치 의혹’을 정리해 보자. MB 인수위가 KIC에게 메릴린치 투자를 종용했고, 메릴린치는 짜여진 각본대로 이 투자금 일부를 국내 모 업체에 다시 투자했다. 이 과정에 MB 집사인 김백준씨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 투자 성공 대가로 아들 김형찬씨가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으로 발탁됐으며, 김 지점장은 이런 연줄을 이용해 하베스트에너지 인수에 뛰어들어 돈을 챙겼다. 이렇게 요약된다.
MB의 측근들과 인척들이 개입된 대규모 권력형 비리가 분명해 보인다. 제 돈 아니라고 펑펑 퍼주는 것도 부족해 제 멋대로 굴리다니. 국민혈세 수조 원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원문 : 사람과 세상 사이